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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Sep 18. 2023

윤석열 정권 들어 더욱 소중한 정통언론 <뉴스타파>

이명박 시즌 2, 정통언론, 탐사보도, 저널리즘

윤석열 정권은 이명박 정권의 '시즌 2'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인물도 이명박 때 인물이 가득하고 정책도 그때의 판박이가 많다.


언뜻 떠오르는 인물만 봐도 한 손으로 세기 어려울 정도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해,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 최상목 경제수석 비서관 등등. 최근 들어선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과 유인촌 문화부 장관 내정자까지 이명박 정권 색깔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정책 쪽으로 눈을 돌려보면 방송과 신문을 정권의 도구로 만들려는 억압적인 언론 정책, 대화를 배제하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대북 정책, 노동자 등 약자를 배제하고 부자 감세 등 부자들을 위한 경제사회정책, 성적 지상주의의 교육정책이 그때와 구별하기 어렵다.


쉽게 말하면, 윤석열 정권은 이명박이 깔아 놓은 정책과 인물의 레일 위에 검찰 출신들이 올라탄 '이명박 플러스 검찰 정권'이라고 할 만하다. 


<뉴스타파, 포기하지 않는 눈>(책담,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 지음, 2017년 5월)이란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확신으로 굳어졌다. 이 책을 읽은 것은 윤석열 정권이 신학림-김만배 대장동 대담 보도 사건을 빌미로 뉴스타파를 본격적으로 탄압하기 훨씬 전이다.


이 책은 촛불혁명으로 문재인 정권이 탄생한 뒤인 2017년 5월, 이명박(2008년 2월~2013년 2월)-박근혜(2013년 2월~2017년 3월) 두 정권 시기에 '뉴스타파'가 탐사 보도한 4개의 기획 시리즈를 책으로 엮어 내놓은 것이다. 4개 시리즈의 제목은 'MB의 유산(보도 시기 2012년 8월 24일~2016년 10월 28일),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2013년 3월 1일~2016년 3월 11일), 내 세금은 어떻게 쓰이나(2013년 3월 1일~2015년 1월 27일), 원전 묵시록(2012년 5월 26일~2015년 12월 3일)이다. 4개의 시리즈가 책에서 그대로 1부, 2부, 3부, 4부로 돼 있다.


책 발간 시기로 미루어 짐작할 때, 두 보수 정권의 악행과 나쁜 유산을 촛불 정권에서는 청산하거나 답습하지 말라는 뜻을 담아 책을 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모두가 아는 대로 안타깝게도 그런 여망은 실현되지 못했다. 오히려 이명박-박근혜보다 더욱 열화한 보수 정권의 등장으로 도루묵이 됐다. 


대표적인 예가 4대강 사업이다. 지금도 4대강 사업으로 인한 녹조 피해가 발생하고 있지만, 4대강을 호수로 만든 댐은 굳건하게 버티고 있다. 문재인 정권 때 4대강 비판론이 무성했지만 기득권 세력의 반발로 손댈 엄두도 내지 못하고 넘어갔다. 이명박 시즌 2라고 불리는 윤 정권에서는 비판론마저 보이지 않고 잠잠하다. 뉴스타파에서 계속 4대강 문제를 추적하는 보도를 내고 있지만, 언제 4대강 찬양론이 나올지 모르는 형편이다. 


1부 '엠비의 유산'에서는 4대강 치수 사업을 가장한 채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벌인 이명박 전 대통령의 거짓말과 사업의 폐해, 이 전 대통령의 출신고인 동지상고 건설 세력의 이권 연루, 그리고 무모한 자원 외교의 문제를 파헤치고 있다.


2부는 윤석열 대통령이 수사를 하면서 국민적 인기를 얻는 계기가 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다루고 있다. 뉴스타파 취재팀이 검찰 특별수사팀에 앞서 국정원 심리단이 운영하는 트위터 등을 분석해 대선 개입의 핵심부를 추적해 들어가는 모습은 경이롭다. 기자가 열의와 의지만 있으면 기자실에 출입하지 않아도, 권력 쪽의 정보 제공이 없어도 얼마든지 진실을 파헤칠 수 있다는 걸 뉴스타파 취재팀은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 나온 4개의 탐사 보도 중에서 가장 높게 평가하는 것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서슴없이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뽑겠다.


2부에는 윤 대통령의 검사 시절 활약상도 나온다.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은 지검장의 허락 없이 대선 개입 트위터 활동을 한 국정원 직원을 체포하고 압수 수색했다는 이유로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고 수사팀에서 배제된 뒤 한직으로 좌천됐다."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에서 당시 윤석열 검사와 이복현 검사가 맹활약한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윤석열 검사는 특검 수사4팀을 이끌며 삼성 이재용 부회장을 구속했고, 이복현 검사는 수사2팀에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구속하는 데 힘을 보탰다."(이상 226쪽)


당시의 윤 검사와 지금의 윤 대통령이 과연 같은 사람인지 헷갈린다. 그때 올바른 검사에서 지금 타락한 것인지, 그때 흉악한 마음을 감추고 정의의 사도로 가장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하여튼 몇 년 사이의 표변에 어리둥절할 뿐이다.


3부 '내 세금 어떻게 쓰이나'는 국민의 세금이 어떻게 낭비되고 있는지, 그런데도 국회의 예산 감시 기능은 얼마나 허술한지를 다루고 있다. 지금도 기자들이 꼭 읽고 세금 감시에 활용할 만한 내용이 가득하다. 특히 정부, 광역자치단체, 기초자치단체로부터 3중의 지원을 받는 새마을운동협회, 자유총연맹, 바르게살기협회 3대 관변단체의 보조금 실태는 충격적이다. 지금 윤 정권이 문제 삼고 있는 노동단체나 시민단체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이들 3단체가 대규모로 그것도 부실한 감시 속에서 지원을 받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윤 정권의 보조금 비판이 얼마나 초점을 잃은 것이고 정치적인 공세인지 알 수 있다. 부디 기자들은 정부의 입만 보지 말고 복마전 관변 3단체의 보조금 실태를 철저히 파헤쳐 봤으면 좋겠다.


4부 '원전 묵시록'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한국의 원전 실태는 어떤지 짚어본 내용이다. 이를 통해 한국의 원자력 이권 집단(이른바 '핵피아')이 사고를 은폐하고 부실 부품을 정품으로 위장해 납품 받아쓰는 부패, 한국수력원자력(주)의 직원과 업계, 그리고 원자력 학자들이 이권으로 얽혀 있는 실태를 폭로하고 있다. 심지어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이 전기세로 조성한 기금으로 언론에 원자력을 홍보하고 교과서 내용까지 친원전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는 얘기도 나온다.


특히, 윤 정권은 문재인 정권이 탈원전 정책으로 원자력 산업을 망쳤다고 공격하면서 역대 어느 정권보다 강한 친원전 정책을 펴고 있다. 문 정권 때 숨죽였던 원전 마피아가 극성을 부릴 좋은 환경이 됐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4부 원전 묵시록은 과거의 일이 아니고 현재 및 미래의 일이 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뉴스타파뿐 아니라 모든 언론이 눈을 부릅뜨고 그들을 감시해야 할 판이다.


뉴스타파가 역시 한국의 미디어 가운데 가장 본받을 만한 고품격·정통 미디어라는 걸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느꼈다. 모든 미디어가 뉴스타파가 될 수는 없겠지만, 뉴스타파의 본을 받으려고 조금이라도 노력한다면 한국의 저널리즘 수준이 한 단계 상승할 것이라고 본다.


뉴스타파의 힘은 1차적으로 저널리즘 원칙에 충실한 기자들에서 나오는 것이겠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는 광고·협찬을 받지 않겠습니다"라는 구호에서 엿볼 수 있듯이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물적 토대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본다.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있다'는 말을 뉴스타파의 활약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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