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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Oct 16. 2023

윤석열 정권은 왜 MBC를 죽이려 하나?

박성제, 언론탄압, 윤석열, 문화방송

박성제 전 <문화방송> 사장이 최근 펴낸 따끈따끈한 책 <MBC를 날리면>(창비, 박성제 지음, 2023년 10월)을 단숨에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가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박 전 사장이 재임에 실패하길 잘했다'라고 생각했다. 그가 재임에 성공했더라면 이런 책을 쓸 여유도 없었을 테고, 따라서 윤석열 정권이 왜 <문화방송>을 죽이려고 안달하는지도 이렇게 생생한 기록을 통해 접하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 전 사장이 연임에 실패한 것이 2023년 2월이고, 책이 나온 것은 10월이다. 현업에서 물러난 뒤 불과 8개월 만에 책이 나왔으니 원고 작성과 교열, 디자인, 인쇄 등의 절차를 감안할 때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오로지 책 만들기 작업에 매진한 듯하다. 그만큼 글이 거침없이 경쾌하게 흘러간다. 상황 묘사도 눈앞에 그림을 보는 듯 생생하다.   


부제 '언론인 박성제가 기록한 공영방송 수난사'가 말하듯이, 이 책은 이명박 정권 때 해직기자였던 그가 문화방송에 복직해 보도국장과 사장을 하면서 겪은 <문화방송>의 수난을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다.


"2022년 9월 22일 오전 9시 22분. 스마트폰 벨이 울렸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책머리부터 심상치 않다. 사장으로서 임원회의를 하고 있던 도중에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걸어온 전화였다. 이날은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뉴욕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을 잠시 만난 뒤 그 유명한 '바이든-날리면' 발언을 한 날이다. 전화가 온 때는 <문화방송>에서 그 보도가 나가기 전이었다.


문화방송 동기인 박 사장과 김 수석의 전화가 엇갈리는 와중에 <문화방송>을 비롯한 수많은 미디어가 이 비속어 파문을 보도했다. 그리고 보도로부터 16시간이 지난 뒤 대통령실은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는 '독창적인 청해력'을 과시하며, 그동안 눈엣가시로 여겨온 <문화방송>을 콕 짚어  죽이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윤 대통령은 9월 26일 귀국 뒤 첫 출근길 문답에서 "사실과 다른 보도로써 동맹을 훼손한다는 것은 국민을 굉장히 위협에 빠뜨리는 길이다. (···) 먼저 이 부분에 대한 진상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더 확실하게 밝혀져야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대통령이 직접 <문화방송> 죽이기에 칼을 빼든 것이다.


압권은 11월 9일, 대통령실이 아세안 순방을 나가면서 <문화방송> 기자를 대통령 전용기에 태우지 않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다. 박 사장은, 이 통보가 '스트레이트' 프로그램의 기자가 천공의 국정운영 개입과 관련해 대통령실에 질의서를 보낸 직후에 나왔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순방에서 돌아온 윤 대통령은 11월 18일 출근길 문답에서 "MBC에 대한 전용기 탑승 배제는 (MBC가) 우리 국가안보의 핵심 축인 동맹관계를 사실과 다른 '가짜뉴스'로 이간질하려고 아주 악의적인 행태를 보였기 때문에 대통령의 헌법수호 책임의 일환으로서 부득이한 조치였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직접 육성으로 <문화방송>에 대해 적대감을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여기서 요즘 비판언론 죽이기의 구실로 내세우고 있는 '가짜뉴스'라는 말이 등장한 것도, 요즘 윤 정권이 벌이는 '가짜뉴스 광란극'과 관련해  의미심장하다.


윤 대통령이 <문화방송> 죽이기의 주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은, 충격적이면서도 충격적이지 않다. 입만 열면 자유민주주의를 되뇌는 그가 민주주의의 핵심인 언론자유를 탄압하는 주범이라는 점에서는 충격이지만,  그동안 여권 주변에서 떠돌던 소문을 확인해 준 점에서는 그렇지도 않다.


실제 내가 가장 놀란 것은 박 사장의 대응이다. 일반적인 방송사의 사장이라면 대통령의 노기를 어떻게 달랠까 안절부절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박 사장은 달랐다. 바로 '뉴스데스크'를 통해 헌법소원 청구 방침을 밝히고, 한 달여 뒤인 12월 26일 'MBC 대표이사 박성제' 이름으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그 즈음 어느 날 그는 후배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공영방송 사장에게 제일 중요한 자질이 바른 저널리즘에 대한 신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목에 칼이 들어와도 버틸 수 있는 '배짱'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탄압에 헌법소원으로 맞서는 것이  바로 그가 말한 '배짱'일 것이다.


나는 보도국장 때 추락한 시청률을 최고로 끌어올리고 사장 때는 3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는 그의 성과를 높이 평가한다. 기자로서도 경영자로서도 손색이 없다는 것을 결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두 가지를 모두 합쳐도 그가 대통령의 협박에 헌법소원으로 맞선 배짱만큼은 못하다고 본다. 정권이 아무리 공영방송을 장악하고 무력화하려고 해도 이런 배짱 있는 사장이 있다면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것이고, 설사 정권의 의도가 통한다 하더라도 거기서 더욱 강한 저항의 싹이 틀 것이 틀림없다.


이 책 속에는 <문화방송>의 수난사만 기록돼 있는 건 아니다. 국민의 사랑을 잃은 방송이 어떤 노력을 통해 다시 사랑을 되찾았고, 변화하는 미디어의 흐름을 잘 읽으면서 경영 개선에 성공했는지도 나온다. 기자 출신이라도 경영인이 되면 저널리즘보다 경영 성과에 매달리기 쉬운데 경영인이 돼서도 '공영방송 사장은 저널리즘으로 평가받는다'는 신념을 유지한 것은, 5년 동안 해직기자로 지내면서 숙성된 언론관의 반영이리라.


그는 이명박 정권 때 언론장악 기술자로 일했던 이동관씨가 방통위원장이 되어 돌아온 것을, 이명박 때의 공영방송 장악 프로그램이 더욱 강화된 형태로 실시하겠다는 선전포고로 풀이했다. 총선을 앞두고 정부·여당이 자신들에 우호적인 언론 환경을 구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최종 목표인 민영화를 밀어붙일 것이라는 얘기다. 시민이 이런 정권의 치밀한 음모를 제대로 파악하고 대응을 해야 하는데,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한국방송>, <문화방송>의 구성원들이 언론자유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싸우는가에 좌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상황은 엄중하지만 희망을 끈을 놓지 않았다. 그의 희망이 지금 언론 탄압 국면에서 언론인들이 취할 정답일 것이다. 그는 책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썼다.


"바닥에서 올라간 MBC의 신뢰도 역시 구성원들의 노력을 집단지성이 인정해 준 덕분이다. 지금 MBC가 마주한 위기는 정권이 어떤 이유를 들이대도 '언론탄압'일뿐이라는 것을 많은 국민들이 알고 있다. MBC가 오직 국민만 바라본다면 이겨내지 못할 위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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