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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Oct 22. 2021

공관 행정직원 '호칭'의 어색함과 어려움

오사카총영사 시절 이야기

우리나라는 수평적인 호칭 또는 공적인 호칭이 잘 발달되지 않은 나라다. 사적인 관계에서는 선배- 후배 또는 형(누나, 언니)-동생으로 부르면 문제가 없지만, 공적으로 만나 일을 할 때 상대를 부르는 말이 매우 빈약하다. 그렇다고 나이에 관계없이 상대를 "~상"으로 부르는 일본처럼, 고참이나 선배를 "~씨"라고 부르면 "예의 없다"는 말을 듣게 된다. 내가 처음 입사해서 2년 정도 다녔던 <한국일보>는 그런 면에서 좀 특이했다. 부장, 국장 등 직위에 있는 고참이 아니면, 나이에 관계 없이 서로 "~형"이라고 부르는 특이한 관행이 있었다. 당시 이런 문화가 사회 전체로 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외교 공관에서도 호칭이 갈등이나 불화의 요인이 되는 경우가 있다. 국내에서 파견된 외교관들은 대사관에서는 대사, 공사, 공사참사관, 참사관, 1등 서기관, 2등 서기, 3등 서기관이란 대외 직명이 있고, 총영사관에서는 총영사, 부총영사, 영사, 부영사라는 대외직명이 있다. 그래서 그들 사이에서는 대외직명을 사용하면 큰 문제가 없다. 다만, 고참 외교관들이 후배에게 많이 쓰는 영어 "유(You)"라는 호칭은 귀에 거슬린다. 미국 사람이 상대를 "유"라고 자연스럽게 부르는 것과 뉘앙스가 매우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색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비칭으로 들리기도 한다. 국적불명도 문제지만 가장 결정적인 약점은 부하가 상사에게는 "유"라고 부를 수 없다는 점이다.


더욱 큰 문제는 현지 공관에 채용되어 일하고 있는 행정직원을, 국내에서 파견된 외교관들이 부를 때 생긴다. 특히, 나이가 어린 외교관이 나이 많은 행정직원을 "~씨"라고  부르면 그들의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사실 상대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닌데, 나이가 위인 사람이 부를 때와 나이가 적은 사람이 부를 때는 느낌이 당연히 다를 것이다. 또 부를 때의 어조나 태도에 따라 배려를 뜻하는지 비하를 뜻하는지가 즉각 나타나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도록 하기 힘든 면이 있다. 나는 주로 행정직원들의 이름 뒤에 "씨"를 붙여 부르는 호칭을 자주 썼다. 그것이 상대방을 배려하는 느낌을 주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상대방도 과연 그렇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불편을 해소한다는 차원에서, 외교부는 공관에서 일하는 일반직 행정직원을 입사 연수로 나눠 실무관(Assitant, 5년 미만), 선임 행정관(Senior assitant, 5년 이상-10년 미만), 책임 행정관(chief assitant)라고 부르도록 하고 있다. 전문 행정직원의 경우는 연구원 또는 전문관(Resercher), 선임 연구원(Senior resercher)라고 부르도록 지침을 주고 있다.


그런데 입사 연수에 따라 구분한 일반 행정직원의 호칭은 실질적으로 일을 하는 데 맞지 않을 뿐더러 외부 사람(특히 현지인)에게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공관에서 맡는 행정직원의 일과 직책이 꼭 입사 연수  순으로 정해지는 것도 아니다. 또 내부 구성원 중심의 이런 호칭은 현지 사회의 관행과도 달라 긴 설명이 필요하다. 다른 나라 공관의 행정직원은 영어로는 아타세( attacher), 일본어로는 담당관으로 쓰는 경우가 많았는데, 훨씬 개념이 잘 들어온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처럼 상하관계를 중시하는 사회와 문화에서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 호칭을 만들고 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문제가 조직의 인화를 깨뜨리고 업무능력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시대와 상황에 맞는 적당한 호칭을 연구해 사용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본다. 지금처럼 입사 연수에 따라 구분하는 호칭보다는 자기가 맡은 일을 안팎에 잘 설명할 수 있는 형태의 호칭을 찾는 것이 더욱 좋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호칭 뒤에 '님'을 남발하는 문화도 점차 없애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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