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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Feb 19. 2024

일본신문의 실패에서 보는 한국신문의 미래

신문사, 방송사, 붕괴, 소비자 중심, 다품종, 저가격

신문사는 과연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신문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생각하면, 또 경제논리만 작용하는 상황이라면 신문사는 벌써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아직도 기신기신 목숨을 유지하며 숨을 쉬고 있다. 불가사의한 일이다.


하지만 신문사들이 예전만큼 위세를 과시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우선 신문을 보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줄었다. 예를 들어, 내가 사는 아파트는 70여 세대가 있다. 그런데 우편함에 신문이 꽂혀 있는 세대가 한곳도 없다.  자기 돈을 내고 신문을 구독하는 세대가 거의 없다는 얘기다. 


요즘 신문을 구독하는 곳은, 관공서와 기업 홍보실을 비롯해 자기 주머니 돈으로 구독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기관이나 회사들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기관이나 회사에 배달된 신문도 접힌 채 그대로 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신문뿐 아니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만난 한 언론학 교수의 말이다. 100여명이 듣는 수업 시간에 "어제 텔레비전 9시 뉴스를 본 사람이 있느냐"라고 물었더니 한 사람도 손을 들지 않았다고 했다. 나중에 휴대폰에서라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심지어 '9시 뉴스'라는 단어도 모르더라고 했다.


신문, 방송이 모두 이 지경이니, 지금의 신문사, 방송사는 '살아 있는 시체'라고 해도 과하지 않다. <신문사-파탄 난 비즈니스 모델>(신조신서, 가와치 다카시 지음, 2007년 3월)은 죽음에 몰린 일본 신문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마이니치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편집국 차장, 사장실장, 도쿄본사 부대표, 중부본사 대표 등 편집과 경영의 요직을 두루 경험한 저자의 일본 신문에 관한 생생하고 귀중한 보고서다. 거의 15년 전에 나온 책이어서 지금의 상황과 맞지 않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그가 제시하는 신문이 위기에 처한 이유와 돌파 방법은 아직도 유효성이 있다. 특히, 구한 말부터 지금까지 일본 신문의 관행과 구조를 베끼다시피 하며 성장해온 한국 신문계가 귀담아들을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그는 신문사가 위기에 처한 근본적인 원인을 경영활동과 언론활동의 불일치, 무리와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철저한 정보공개를 요구하면서 자신의 정보는 감추는 것이 대표적이다. 신문을 둘러싼 환경이 정보통신 중심으로 격변하고 있는데 예전부터 사용해온 부수 지상주의를 고집하면서 구태의연하게 천하를 호령하는 듯한 언론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 지금 신문사가 앓고 있는 중병이라는 것이다.


그는 굳이 하나를 꼽자면 '발행부수 지상주의'가 만악의 근원이라고 규탄한다. 부수가 많은 만큼 광고 수입을 많이 올릴 수 있다는 논리로, 출혈을 감수하며 부수 확장에 열을 올리는 무모함을 구체적인 통계를 제시하며 비판한다. 정보통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은 예전에는 이런 논리가 맞았지만, 정보통신이 발달한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는데도 신문업계가 상대를 의식해 이런 자승자박의 낡은 관행과 결별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금은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발행부수 지상주의가 예전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작은 신문사는 경비 절감을 위해 오히려 발행 부수는 적극적으로 줄이는 곳도 있다. 하지만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정부 광고를 발행부수공가기구(ABC)의 통계를 참고해 배정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발행부수 지상주의가 여전히 위세를 부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1등 신문, 2등 신문을 내세우는 신문사도 부수를 순위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저자는 이런 출혈적인 발행부수 지상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요미우리신문>과 <아사히신문>이 쌍벽을 이루는 신문 시장을 견제하는 제3극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마이니치를 중심으로 <산케이신문>, <주니치신문> 등이 손을 잡고 경영 합리화를 통한 신문시장 정상화를 꾀할 것을 제안했다.


아마 이런 제안은 현실적으로 수용되기도 힘들었겠지만, 지금 현실화된다고 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이미 일본 신문 시장 상황도 정보통신의 발달, 인터넷과 휴대폰의 활성화로 발행부수 지상주의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격변했기 때문이다.


그가 제시하는 신문 재생 방안 중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정보통신 시대에서 신문이 살아남는 방안이다. 시대의 변화를 감안할 때 이것이 더욱 현실적이라고 본다.


그는 한때 세계의 많은 신문사들이 시도했던 인터넷판 클릭 지상주의는 신문의 부수 지상주의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고, 다종다양한 분야에서 롱테일 판매를 주요한 무기로 삼는 포털과 싸움에서 도저히 당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어떤 시대가 돼도 신문사의 재산은, 누가 뭐라고 해도 자사의 기자가 세계적으로 신뢰할 만한 기사를 생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점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신문의 가치는 적확한 뉴스를 취재할 수 있는가, 뛰어난 분석을 할 수 있는가이지 종이에 인쇄하는지 전파로 내보내는지는 둘째라는 것이다. 그는 몇 사람이 읽느냐가 아니고 누가 읽느냐가 중요하다면서, 여기서 퇴조한 신문 기능의 복권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구체적으로 소비자 중심 발상, 다품종, 싼 가격을 들었다. 인터넷의 강점을 살려 소비자 개개인에 맞는 다양하고 품질 좋은 기사를 싼 가격에 발신하는 것밖에 신문사가 살길은 없다는 것이다. 소비자 중심 발상, 다품종, 싼 가격의 3가지를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가 큰 과제가 되겠지만, 인터넷과 동영상이 대세가 된 뉴스 시장에서 경청할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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