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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Feb 12. 2024

트럼프의 선전선동술을 해부한다

거짓말의 기술, 마키야벨리, 미국대선

8년 전(2016년) 세계를 경악시켰던 두 가지 사건(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중 브렉시트가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트럼프의 당선이 미국 안팎에서 어떤 풍파를 불러왔는지는 많은 사람의 기억에 선명하다.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더욱 격화했고, 미국 이기주의는 더욱 강해졌다. 미국 안에서 이민 혐오와 인종주의가 기승을 부렸고, 미국 밖에서는 국제협조주의가 퇴조하고 각자도생주의가 활개를 쳤다. 한반도에서는 미군 주둔비 대폭 인상과 같은 고액 청구서가 날아온 반면, 오랫동안 고착상태에 있던 한반도 문제가 극적으로 해결될 조짐도 잠시 있었다. 


올해 11월 열리는 미국 대선에서 '제2기 트럼프 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점차 고조되는 가운데 '제2기 트럼프' 시대가 제1기와 어떻게 다를지에 대한 궁금증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이단아 트럼프에 대한 혐오가 비등한 속에서도, 그가 '세계 대통령'이라고도 불리는 미국 대통령을 두 번이나 탐하는 상황은 어떻게 조성됐을까? <거짓말의 기술>(21세기북스, 마셀 다네시 지음, 김재경 옮김, 2023년 7월)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때, 그리고 대통령이 돼서 어떤 거짓말을 구사하며 사람들을 홀리고 세상을 움직여왔는지를 탐구한 책이다.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언어인류학 및 기호학 교수이자 의사소통이론 프로그램의 총책임자인 저자가 거짓말쟁이 트럼프의 기술을 조목조목 분석했다. 이 책에 나온 거짓말 기술들은 트럼프가 11월 선거에서 재선하는 과정, 또는 집권할 경우에 사용할 것이 확실하니, 미리 공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종의 예방주사로 말이다.


저자는 먼저 거짓말을 '하얀 거짓말'과 '까만 거짓말'로 구분한다. 하얀 거짓말은 잠재적 해악을 피하려는 의도를 가진 반면, 까만 거짓말은 악의적으로 상대를 속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까만 거짓말, 즉 위선, 기만, 계략, 사기, 속임수, 배신, 음모론 등 거짓말쟁이 군주가 정치적 힘을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거짓말쟁이 군주의 일반적 특성을 말하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트럼프의 거짓말, 선전술을 파헤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저자는 “부도덕한 사업가(트럼프)가 우연히도 정치가가 되었고 그 정치가가 거짓말쟁이임이 분명해 보이는데, 어째서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기꺼이 그의 말을 신뢰하면서 열띤 지지를 보내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갖고 역사를 크게 뒤흔들었던 거짓말쟁이들의 비밀을 추적해간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오이디푸스 왕으로부터 시작해 거짓말과 권력의 결합술을 처음 제시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대중을 통제하는 기술과 빅브라더의 행태를 통찰한 조지 오웰의 <1984> 등의 다양한 문헌과, 무솔리니, 히틀러 등 역사 속 거짓말쟁이 지도자를 분석함으로써 트럼프가 구사하는 '거짓말의 기술'을 해부한다.


저자는 '대안 사실'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획득한 허풍, 날조와 조작으로 역사를 호도하는 '작화', 온라인 세계에서 횡행하는 '가짜뉴스', 다른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고 인식을 왜곡하는 '가스라이팅' 등 트럼프가 구사했던 거짓말의 기술을 장을 나누어 상세하게 서술한다.


특히 온라인 토크쇼가 가짜뉴스 음모론을 퍼뜨리는 데 매우 효과적인 노릇을 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요약했다. 비용이 싸고 진위 구별이 어려우며, 소셜미디어 사용자가 이념적으로 양극단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짜뉴스를 퇴치하겠다고 대책도 분석도 없이 나대는 윤석열 정부 관계자들이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는 내용이다.


저자는 트럼프의 허황되고 조리 없는 말이 실수나 교양의 부족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산된 전략적 행위라고 말한다. 그는 트럼프의 수많은 기행과 발언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멕시코 장벽'과 '기후 위기는 가짜'를 꼽는다.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겠다는 공약은, 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침입자 서사'를 불러일으켜 자신만이 그들을 침입자로부터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강화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또 '기후 위기는 가짜'라는 주장도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해 과학적 분석이나 이성적 반론을 반사적으로 튕겨내도록 하려는 목적에서 나온 목적 타라는 것이다. 이러니 사람들이 아무리 트럼프의 말을 논박하려고 해도 번번이 실패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트럼프는 쿠데타나 물리적 전투를 통해서가 아니라 언어 전쟁을 통해 권력을 쥐었다"면서 거짓말의 위력을 경계했다. 특히 온라인, 정보통신기술이 급속히 발달한 현대에서는 거짓말 기술의 위력이 과거와는 달리 빠른 시간 안에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나치즘, 파시즘, 공산주의 같은 '정신 통제' 실험이 모두 실패했다는 사실은 마키아벨리즘이 언젠가 진실과 정직 앞에 무릎을 꿇고 말 것임을 암시한다"면서 진실의 힘을 굳게 믿는다. 거짓말의 기술이 정확히 무엇이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함으로써, 거짓말쟁이의 가면을 벗기고 균형 잡힌 인식을 되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진실만이 거짓과 혐오 발언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해독제다.  진실만이 우리의 정신을 플라톤의 동굴에서 데리고 나와 자유롭게 만들어준다. 우리가 거짓말쟁이에게 반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가 악랄한 거짓말쟁이라고 당당히 외치는 것이다. 진실이 아무리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더라도 말이다."


그의 이런 절규가 11월의 승부에 어떤 작용을 할지 알 수 없지만, 트럼프와 트럼프 현상을 이해하고 대처하는 하나의 단서를 제공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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