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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Jul 01. 2024

서평 : 누가, 무엇이 한일관계를 망쳤나?

<문재인 정권과 한일관계>, 아베 신조, 위안부, 강제동원

문재인 정권에서 윤석열 정권으로 교체되면서 가장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분야를 꼽자면 단연 외교정책이다. 그중에서도 대일정책 맨 선두에 있다. 이런 급변은 국내 갈등과 대립을 심화시켰고, 시키고 있다.


한국갤럽이 윤석열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2023년 5월에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대통령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의 이유 중 37%가 외교였다. 부정 평가에서도 32%가 외교를 꼽았다. 긍정과 부정 모두 1위였다. 그만큼 외교가 가장 논란거리였다는 얘기인데, 그중에서도 대일정책이 가장 큰 쟁점이었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2023년 8월 미국 캠프 데이비드의 한미일 3국 정상회담과 캠프 데이비드 공동성명으로 완성된 윤 정권의 대미·대일 추종 외교의 시발점이 바로 굴욕적인 대일 외교였다. 윤 정권이 강제동원 문제에서 일본 정부의 요구를 훨씬 뛰어넘는 양보를 하면서 한일 정권 간의 밀월 시대가 열리고, 이를 토대로 미국이 2차대전 이후 꿈꾸던 한미일 3국 군사동맹 체제가 실현됐다.


윤 정권의 대일정책의 급전환을 이해하려면, 바로 이전의 문재인 정권의 한일관계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와 한일관계>(주류성, 양기호 지음, 2024년 3월)문재인 정권의 한일관계와 정책을 총괄적으로 살펴본 책이다. 문 정권에서 대일정책을 자문·조언하고 실행했던 일본 전문가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가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했다.


책은 6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문재인 정부와 한일관계의 출발)에서 문 정권이 한일관계를 어떤 자세로 대했는지를 살폈고, 2장(한일 갈등의 기원으로서 대북정책)에서 한일관계의 악화가  과거사 문제뿐 아니라 대북 및 동북아 평화 정책을 둘러싼 한일 두 나라의 시각차에서 기인하고 있는 점을 분석했다. 3장(국제 쟁점으로서 위안부 문제의 확산)과 4장(한일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상호 인식의 격차)에서는 위안부 문제가 한일 사이의 쟁점에서 어떻게 국제 문제로 퍼져나갔으며,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관해 양국이 어떻게 왜 다른 생각을 품었는지를 분석했다.


5장(강제징용 쟁점과 한일관계의 구조변용)에서는, 위안부 문제보다도 훨씬 폭발력 있는 쟁점인 강제동원 문제가 한국 사법부의 판결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경위를 살폈다. 6장(윤석열 정부 대일정책의 한계와 실패)에서는 윤 정권이 이전의 문 정권에 견줘 180도 다르게 실시한 대일정책이 왜 실패했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를 들여다봤디.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문 정권 출범 초기인 2018년 1월부터 윤석열 정권 출범 2년 차인 2023년 6월까지  동아시아재단의 <정책논쟁>, 한국일본학회의 <일본학보>, 현대일본학회의 <일본연구논총> 등에 기고한 글을 일부 수정한 것이다.


저자는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대일정책은 투 트랙 접근이었다. 역사와 갈등 요인이 있지만 사회 문화와 경제 통상 등 미래 협력을 추구한다는 것이었다"라면서 "한일관계를 개선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노력은 일관되고 지속적인 것이었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아베 신조 정권은 이에 전혀 호응하지 않았다. 점차 대북정책에서 상호 인식의 불일치가 드러나고 과거사 쟁점이 불거지면서 아베 정권은 소극적인 대응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고, 북미 정상회담이 가시화되자 적극적인 방해 활동을 펼쳤다.


저강도의 한일 갈등이 고강도의 갈등으로 변한 것은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판결과 11월의 화해치유재단 해산이 계기가 됐다.  일본은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자, 부담 없이 한국에 대한 압박 카드를 꺼내들었다. 아베 정권은 2019년 7월 대한국 수출규제를 발표했고, 이에 맞서 문 정권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를 선언했다. 또 제주도 관함식의 일본 자위대 함정의 욱일기 논란, 한일 초계기 사태, 한국 안의 노 재팬 운동이 연달아 이어졌다.


문재인 정권 5년을 살펴볼 때 한일관계의 악화 책임이, 어느 정도 차이는 있지만 한일 양쪽 모두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과거사 문제의 원인 제공자가 일본제국주의였다는 점에서 한일관계 악화의 근원적 책임이 일본 쪽에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윤 정권은 이런 점을 싹 무시하고 문 정권이 역사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했기 때문에 한일관계가 파탄 났다면서, 한일관계 개선을 외교정책 전환의 가장 첫 과제로 내세웠다. 그런 급조된 인식이 일본 우파의 인식을 그대로 옮겨오는 통로가 됐다.


저자는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는 강제 징용 해법에서 크게 양보하면서 한일관계 개선과 한미일 안보협력에 성공했지만, 많은 한계와 실패를 드러내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피해자를 무시한 한국 정부의 일방적이고 무리한 강제동원 해법은 사법부의 제동에 걸려 파탄 났고, 역사를 버리고 한미일 동맹을 택한 전략은 대북·대중·대러 관계를 크게 악화시켰고, 한국의 동북아 외교에서 주도권 상실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윤 정권을 향해 "지속 가능한 한일관계를 위해 균형 잡힌 대일 외교를 전개해야 하며, 가치동맹에 매달리기보다는 국익과 평화의 관점에서 외교적 유연성을 확장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이런 제언에 귀를 기울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총선 후 정부와 대통령실을 개편하면서, 국가안보실은 그대로 놔둔 것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최근 윤 대통령이 차기 주일 대사로 친일 추종외교 정책을 조언해온 박철희 국립외교원장 내정한 것은, 윤 정권의 대일정책이 더욱더 대일 추종, 종속의 길로 깊숙이 빠져들어갈 것을 예고하는 신호라고 봐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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