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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Oct 21. 2024

서평 : <반일 종족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

식민지근대화론, 이영훈, 안병직, 매국

내가 일본 오사카 총영사(2018.4~2021.6)로 근무할 당시, 한국에서 <반일 종족주의>(미래사, 이영훈 외 지음, 2019년 7월)라는 책이 나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이 책이 한국에서 나왔을 때만 해도 그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한국에서 책이 출판된 뒤 불과 4개월 뒤에 일본의 우파 잡지사인 <문예춘추>에서 같은 제목으로 일본어판을 내면서 비로소 알게 됐다. 


책 내용이 일본 사람들의 입맛에 꼭 맞았는지, 일본 우익들뿐 아니라 일본 사회 전체가 환호작약 하는 모습이 연일 뉴스를 탔다. 나도 이때 한국에서 책을 주문해 봤다. 책 목차부터 구역질이 났다.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가슴이 벌렁벌렁거렸다. 당시 이 책을 본 뒤 책 갈피에 적어놓은 말을 보니, "친일 종족주의자들의 넋두리"라고 휘갈겨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 책의 여섯 명의 저자 중 한 명인 김낙년 낙성대 연구소 소장을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에 임명했다. 독립운동을 부정하고 친일부역자를 옹호하는 김형석이란 자가 독립기념관장이 됐다는 소식과 함께 따라온 뉴스지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국학의 중장기 연구과제 발굴 및 한국학 연구 심화를 위한 토대 구축'을 목적으로 하는 국책 연구기관의 장에 일제의 조선 식민 지배가 한국의 근대화에 공헌했다고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주창자를 앉혔으니,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자는 말인지, 기가 찼다.


나는 김낙년의 한국학중앙연구원장 임명 소식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이제 한국은 윤석열 정권 등장과 함께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친일 종족주의'의 나라가 됐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런 허무맹랑한 책이 나왔을 때 제대로 격파를 하지 못한 것이 이런 사태를 몰고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이런 차에 도서관 서가를 배회하다가 <<반일 종족주의>의 오만과 거짓>(한겨레출판, 전강수 지음, 2020년 7월)을 발견했다. 이제까지 '반일 종족주의'에서 다룬 내용을 부분적으로 비판한 글이나 책은 더러 있었지만, 총체적이고 핵심적으로 비판을 가한 책으로는 이만한 책을 찾기 힘들 것이라고 본다.


이 책의 저자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경제금융부동산학과)는 '반일 종족주의'의 주요 저자들인 이영훈, 주익종과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동문수학한 사이이고 김낙년 과도 학연이 깊다. 현재 경제 분야 쪽에서 뉴라이트의 대부 노릇을 하는 안병직 교수의 제자들이다. 따라서 전 교수는 누구보다도 이영훈 등의 장단점을 잘 아는 사람이다.


저자들과 이런 특수 관계에 있는 전 교수는 반론서를 쓰겠다고 각오한 이유를, "책의 위험성을 직감하고, 학문적 검토를 하여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해두지 않으면 장차 큰 혼란이 초래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더욱이 이 책의 필자 대부분이 경제사 전공자이고 책의 중심 내용도 일제강점기 경제사 분야를 다루고 있는데, 이 책 속의 경제사 서술을 전반적으로 비판한 책이 없는 것을 보고 자신이 나섰다고 했다.


같은 안병직 사단의 일원으로 같이 공부하고 일제강점기 경제사 연구로 박사 학위까지 받았으니 더없는 비판자의 자격을 지녔다. 그는 이 비판서를 쓸 당시 미국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었는데 사실상 안식을 사실상 포기하고 집필에 몰두했다고 한다. 열정과 사명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책은 3부로 이뤄졌다. 1부에서는 <반일 종족주의>의 혐한론을 격파했다. 2부에서는 일제의 경제 수탈을 부정하는 주장을 조목조목 논박했는데,  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3부에서는 일본군'위안부'의 실상을 왜곡하고 있는 부분을 비판했다.


2부에서 전 교수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이영훈과 김낙년의 '토지 수탈이 없었다', '쌀 수탈도 없었다'라는 주장을, 통계와 논리로 동원해 비판했다. 김낙년이 강제적인 방법으로 쌀 수탈을 한 것은 없었다고  주장한 데 대해 강제적인 방법으로 쌀 수탈을 한 것은 없었지만 제도와 정책으로 쌀을 공출해 간 것은 더욱 교묘하고 구조적인 수탈이라고 반박했다. 또 일제가 총칼을 앞세워 토지를 강탈하지는 않았지만 토지제도와 지세 제도 정비를 통해, 즉 제도와 정책을 통한 토지 수탈 메커니즘을 확립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1부와 3부에서도 비판도 매섭다. 걸핏하면 '사료와 실증'을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이영훈이 '친일 종족주의'라는 핵심 개념의 규정이나 발생 시기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고 '부조적 수법'(여러 자료 가운데 자신의 주장에 맞는 것만 취사선택하는 수법)을 사용해, 거친 주장을 합리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곳곳에서 좁은 의미의 정의를 해놓고 그런 것이 발견되지 않았으니 없었다는 논리를 펴는 것도 준열하게 꼬집었다. 토지 조사에서는 '총칼을 들고' 수탈하는 것을, 쌀 수탈에서는 '강제적인 방법'으로 수탈하는 것만을, 위안부 문제에서는 '군경이 직접 강제로 잡아가는 것'만을. 수탈이나 강제라고 정의해 놓고 그런 것이 없으니 수탈도 강제도 없다고 하는데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이었던 아베 신조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군경의 직간접 관여를 인정한 고노 담화를 무시하고 '군경이 직접 위안부를 강제로 모집했다는 '협의의 강제'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바로 그들의 논리가 아베의 논리와 판박이임을 알 수 있다.


전 교수의 학술적 반박도 뛰어나지만, 통찰력도 눈부시다. 바로 이런 대목이다.


"<반일 종족주의> 필자들은 단순히 역사의 '거짓말'을 바로잡기 위해 책을 쓴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매우 확실한 정치적 목적이 있는 듯합니다. 극우세력이 장악한 일본과 보조를 맞출 수 있는 친일 보수 정권을 한국에서 창출하고, 이를 통해 공고한 한미일 삼각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선악의 기준은 분명합니다. 일본을 좋아하면 선, 일본을 싫어하면 악입니다. 일본을 우대하면 나라가 흥하고, 일본은 배척하면 나라가 망합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으로 하여금 일본을 싫어하게 만드는 역사 해석들을 골라내서 모조리 뒤집어버리는 엄청난 작업을 수행한 것이지요."(171쪽)


이 글은 쓴 시점이, 윤석열 정권이 탄생하기 훨씬 전인 2020년 7월이다. 지금 윤석열 정권 아래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몇 년 전에 정확하게 예견했다고 해도 손색없는 문장이지 않은가? 


아울러 이 책 서문(프롤로그)에는 이른바 한때 진보 성향의 경제학자들의 집단이었던 '안병직 사단'이 언제, 어떻게, 어떤 계기로 이념적으로 우경화하게 됐는지 소상하게 나온다. 궁금한 사람들은 찾아 읽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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