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현실주의이론, 미어샤이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벌써 3년 가까이 되어 간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지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합리적인 결정'이라고 비난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기기 쉽지 않은 전쟁을 무모하게 감행했고, 더구나 전쟁 금지라는 국제규범을 위반했다는 점에서 비합리적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국제정치학계에서 현실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이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국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서해문집, 존 J. 미어샤이머, 서베스천 로사토 지음, 권지현 옮김, 2024년 7월)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비합리적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에 반기를 드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책의 공저자인 로사토 노터데임대 정치학 교수는 미어샤이머 교수의 제자다. 둘은 코로나 감염이 한창이던 시기를 활용해, 국가가 합리적 행위자라는 개념이 정치심리학자와 합리적 선택이론가들로부터 비판받는 것에 반론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이들 비평가들의 말이 옳다면 국가를 합리적 행위자라는 가설에 근거해 국제정치를 설명해온 현실주의 또는 자유주의 이론들이 설 땅이 없어질 것이라는 위기의식의 발로였다.
미어샤이머와 로사토는 국가가 합리적인 행위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우선 합리성이라는 무엇인지부터 검토한다. 이들은 합리성이란 신뢰할 수 있는 이론에 근거하고 있는가, 심의를 통해 결정을 하는가라는 두 가지 기준을 충족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즉, 두 가지를 만족하면 합리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런 기준에 따라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평가한다. 푸틴이 세력균형론이라는 신뢰할 수 있는 이론에 근거해 러시아의 생존을 위협하는 나토의 동진에 맞서 예방적 전쟁을 감행했고 이 과정에 정책 결정자들과 충분한 숙의를 거쳤으므로, 푸틴의 침공은 합리적 행위라고 말한다.
이들은 합리성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평가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결과가 실패로 끝났다고 행위가 비합리적이었다고 할 수 없고, 결과가 성공적이었다고 해서 행위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과정과 결과가 다른 것은 국제정치가 워낙 불확실성이 강한 세계라는 특성에 기인한다고, 이들은 말한다. 하지만 대체로 비합리적인 행위는 합리적 행위에 비해 결과에서 실패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고, 이들은 부연한다.
이들은, 국가는 최대 목표가 생존이고 항상 생존을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으므로 거의 모든 국가의 행위는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국가의 행위가 합리적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비합리적 정책 결정 사례로 알려진 10건의 결정을 검토했다. 냉전 이후 미국의 나토 확장 결정과 냉전 이후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 추구 결정 등 대전략 5건과 미국의 쿠바 미사일 위기 해결 결정과 소련의 체코 침공 결정 등 위기 대응 결정 5건이 분석 대상이다. 이들은 합리성 기준에 따라 이들 결정을 검토한 결과, 10건의 결정이 모두 합리적 결정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이들은 이와 함께 '제1차 세계대전 이전 독일의 위험 전략 결정'과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영국의 무책임 전략 결정'의 2개 대전략 결정과 '미국의 쿠바 침공 결정'과 '미국의 이라크 침공 결정'의 2개 위기 대응 결정이, 신뢰성 없는 이론이나 감정에 치우친 주장에 근거했고 심의가 부재한 결과물이었다고 판정했다. 즉, 이 네 건의 사례가 비합리적 정책 결정의 대표 사례라는 것이다. 이들은 4가지 사례를 통해, 국가가 비합리적 결정을 하는 것은 매우 드물지만, 이런 비합리적인 결정이 내려지는 데는 최종 결정자가 조력자가 아니라 지배자 노릇을 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4가지 사례에서 모두 최종 결정자가 이라크 침공 때 딕 체니처럼 결정 과정의 지배자로 군림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국가는 성공하든 실패하든 거의가 생존이라는 목표 합리성을 추구한다면서, 그렇지 않은 유일한 사례로 2차 세계대전 당시 패배가 확실해졌는데도 항복하지 않고 계속 싸움을 선택해 자멸한 독일 제3제국을 들었다.
이들은 에필로그에서 다음과 같은 말로 국가가 정책을 결정할 때 합리성과 윤리성을 혼동하는 것을 경계했다.
"합리적 정책 결정자는 다른 국가들을 다루기 위한 최선의 전략을 알아내려 노력할 뿐이다. 때로는 타당한 위협과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이것이 그리 고무적이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이 책을 덮으면서,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정책 결정자들은 국가 생존이라는 합리성보다 '자유'라는 윤리성에 너무 과도하고 맹목적적으로 집착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