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서평 : 일본의 대표적인 탐사보도 전문 기자 이야기

다치바나 다카시, 한국 미디어, 일본 미디어, 탐사저널리즘

by 오태규

한국의 미디어는 빠르고 화끈하다. 일본의 미디어는 느리고 답답하다. 한국 미디어는 정확성보다 방향성을 중시하고, 일본 미디어는 정반대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 미디어의 보도 성향에 대한 나 개인의 생각이다.

오사카총영사로 있을 때 일본의 한 중앙지 기자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인터뷰를 하고 나서 1달 여가 지난 뒤에야 기사가 나왔다. 한국 같으면 '언제 나오냐'라고 몇 번이고 물어봤겠지만, 기사가 나올 때까지 꾹 참고 기다렸다. 일본 미디어는 인터뷰를 한 뒤 보도하기까지 숙성 기간이 길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일본 미디어의 특성을 한 가지 더 말하자면, 관과 기자의 관계에서 관이 철저하게 갑이라는 점이다. 한국도 구조적으로는 정보를 쥐고 있는 관이 갑일지 모르지만, 기자와 관료의 관계에서는 압도적으로 기자의 목소리가 강하다. 기자가 관료를 일방적으로 추궁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기자가 가급적이면 관료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일본 미디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일간지가 아닌 잡지는 다르다. 잡지는 일간지가 알고도 쓰지 않고, 또 알려고 하지도 않는 사건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보도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본에서 특종은 일간지보다 잡지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막강한 위세를 과시했던 '서민 총리' 다나카 가쿠에이를 낙마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친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 - 그 금맥과 인맥>이란 잡지 기사다. 이 기사는 자유기고가 다치바나 다카시(1940년 5월~2021년 4월)가 월간지 <문예춘추> 1974년 11월 호에 쓴 탐사 보도 기사다. 다나카 총리는 이 기사의 여파로 총리에서 물러났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탐사저널리즘>(중앙 M&B, 황영식 지음, 2000년 11월)은 일본 탐사보도의 개척자이자 대표자인 다치바나의 활약상에 관해, <한국일보> 일본 특파원을 지낸 황영식 씨가 쓴 책이다. 저자가 다치바나의 활동을 독자적으로 분석해 평가한 것이라기보다 다치바나의 얘기와 일본 사람들의 평가를 수집해 짜깁기한 것이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다치바나가 추구한 탐사저널리즘이 무엇이고, 그가 어떤 자세로 취재하고 보도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됐다. 1장에서는 다치바나의 명성을 알리는 계기가 된 다나카 금맥 보도의 의미와 내용, 취재 방법을 살폈다. 2장에서는 재기를 노리는 다나카를 끝까지 추적 보도해 완전히 쓰러뜨리는 과정을 담았다. 바로 록히드 추문 사건과 관련한 보도 활동이다. 3장에서는 그의 관심이 정치 사회적인 비판에서 과학 분야로 확장되어 가는 모습을 다뤘다. 탐사보도 수법을 활용해, 인간과 인류의 미래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주는 '교양의 전도사'로 변신한 모습을 추적했다.

다치바나는 일본의 탐사보도의 선구자로 꼽힌다. 미국에서 탐사보도의 진가를 보여준 것이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보도라면, 일본에서는 다치바나의 다나카 금맥 보도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철저한 탐사보도 수법을 활용해, 다나카라는 거악과 맞서 싸웠고 그를 완전히 쓰러뜨렸다. <문예춘추>는 우익 성향의 잡지지만, 최대 20명의 기자를 지원하며 그의 취재를 지원했다. 다치바나는 우선 다나카와 관련한 자료를 모아 분석한 뒤 취재 계획을 세운 뒤 파고들었다. 그때 활용한 독특한 기법이 각 분야별로 연표를 만든 것이다. 그는 연표를 만들면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다치바나는 정계의 거물인 다나카를 몰락시킨 데 그치지 않고, <공산당 연구>라는 기사를 통해 일본 공산당의 치부도 적나라하게 들춰냈다. 철저한 자료조사를 통한 글이었기 때문에, 일본공산당의 맹 반발에도 불구하고 큰 타격을 주었다.

이후 그의 관심은 우주, 뇌사, 원숭이 등 과학의 세계로 확장되었다. 인간은 어디서 왔고 인간의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호기심을 쫓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과학 분야로 관심 영역이 넓어졌다.

그는 사람은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행위자로서 참가하는 자와 구경꾼으로 구경하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는데, 자신은 일류 구경꾼이 되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류 구경꾼이 된 비결로 어떤 일이 일어나면 현장으로 빨리 달려가 전체적인 모습을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곳을 확보하고, 그 현장에서 드라마의 절정이 끝났다고 판단되면 미련 없이 일어서 다시 가장 전망 좋은 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렇게 반복하면 전체에서 가장 재미있는 현장을 볼 수 있고, 전체에 지나치게 구애되거나 세부에 지나치게 구애되지 않는 일류 구경꾼이 될 수 있다고 설파했다.

그는 훌륭한 기자는 훌륭한 구경꾼이라고 말했다. 기자들이 귀담아들을 만한 주장이다.

그는 구경꾼으로서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현장만 중시한 것이 아니다. 그는 철저한 독서인이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소장한 책만도 4만 권이 훌쩍 넘었다. 저서가 무려 70권이 넘었고, 다양한 분야에서 창조적인 의견을 발표했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그를 '교양의 전도사', '지의 거인'이라고 불렀다.

참고로 그의 독서법, 즉 '다치바나 독서법'의 특징은 체계적이고 집중적으로 읽는 것이다. 일단 어떤 분야를 파고들겠다고 마음먹으면, 개론에서 각론, 그리고 최신의 이론을 담을 책을 한꺼번에 사서 읽었다.

그가 말하는 그의 독서법을 보면, 우선 돈을 넉넉하게 들고 책방에 간다. 그래야 망설이지 않고 책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서점에 들어가면 관련 서적이 있는 서가에서 책 제목을 훑는다. 다음으로 그 분야의 교과서 같은 입문서를 산다. 이때 주의할 점은 서로 다른 경향의 책을 고르는 것이다. 그다음 단계로 그 분야의 역사, 학설사, 사상사 같은 책을 산다. 협소한 골짜기에 빠져들지 않고 폭넓고도 균형 잡힌 시각을 얻기 위한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각론을 다룬 책을 산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하지만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신 정보는 책 속에 없기 때문에 잡지에 실린 논문을 읽고 전문가 인터뷰를 한다.

그가 후반기에 우주, 과학 분야로 관심을 확장했을 때 거의 이런 방식의 독서법을 활용했다. 결국 철저한 준비와 치열한 노력이 그를 일본 탐사저널리즘의 대표, '르네상스적인 지식인'으로 만들었다.

다치바나가 추구했던 탐사저널리즘은 벌써 반세기 전의 일이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활약하는 요즘 시대의 시각에서 보면 낡은 방식이라는 평가를 받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또는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기울였던 혼신의 노력과 학구열은 한국의 저널리스트에게도 커다란 귀감이 된다.

저자는 "다치바나의 작업을 국내, 특히 언론인들에게 소개하려는 생각은 많은 것을 일본 언론에서 베껴왔으면서도 정말 배워야 할 것은 배우지 못했다는 뒤늦은 자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금 한국에도 다치바나의 책이 상당히 많이 번역 출판돼 있다. 그를 더욱 깊게 알고 싶은 사람들은 찾아 읽어보길 권한다. 그의 저널리즘이 얼마나 단단하고 철저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명언> 당신과 타인 사이의 지름길은 겸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