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가 바꾼 역동의 세계사>, 맬서스의 덫, 영국, 산업혁명
산업혁명은 왜 영국에서 가장 먼저 일어났을까?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은 어떻게 흥했고 망했을까? 영국에서 브렉시트 투표가 가결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두 번이나 당선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크고 작은 역사 현상의 배후에는 '인구' 요소가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아무리 산업 기술이 발달했어도 인구 증가와 만나지 않았다면 산업혁명은 일어날 수 없었다. 대영제국도 해외 식민지에 파견할 정도로 충분한 인구가 없이는 건설할 수 없었다. 브렉시트는 외국인의 이주로 고통받는 노동 인구의 반발이 원인이 됐고, 트럼프의 당선은 유색 인종의 급증에 맞서 백인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백인 민족주의에 크게 힘입었다.
<인구가 보는 역동의 세계사-강대국을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미래의창, 폴 몰런드 지음, 2024년 5월)는 세계사의 변곡점마다 인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을 규명한 책이다. 세계사에서 주요한 역할을 해왔는데도 크게 주목받지 않았던 인구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저자인 폴 몰런드는 영국의 대표적인 인구통계학자이자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구통계학자의 한 명으로 꼽힌다. 그래서 그런지 인구가 역사의 국면마다 끼친 영향을 수많은 통계자료를 기초로 설명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영국이 한때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인구 덕분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상하수도가 개선되고 의료 보건 기술이 발전하고 물산이 풍부해지면서 영아사망률이 떨어지고 기대수명이 늘어났다.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영국은 수백만 명을 미국과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 내보냈고, 이를 통해 영어를 쓰는 인구의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왔다."
"독일과 프랑스가 (영국에) 뒤이어 산업혁명에 성공했으나 이들은 인구에서 영국에 밀렸다. 해외 주둔지에 보낼 만한 인구가 부족했고 현지인들을 누를 만한 머릿수가 되지 못했다.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것도 인구수에서 밀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연합군의 참호는 호주와 뉴질랜드, 미국에서 건너온 병사들로 지속적으로 채워진 반면, 독일은 그러지 못했다."
영국은 산업혁명 즈음에 물질적 환경, 영양, 주거지, 건강, 교육 환경이 크게 개선되면서 영아사망률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기대수명이 크게 늘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식량생산 능력에 인구 증가가 갇힌다는 '맬서스의 덫'을 돌파하고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이룩했다. 그리고 19세기 초를 기점으로 점차 이런 추세가 세계적을 퍼져 나갔다.
저자는 "이 책은 인구 물결에 대한 이야기로, 인류의 거대한 물결이 한 곳에서 고조되었다가 다른 곳으로 잦아드는 과정과 이러한 변화가 역사의 경로에 미친 영향을 다뤘다"라고 말했다. 영향은 엄청나지만 간과되거나 과소평가되는 부분이 있는데 이를 파헤치겠다는 게 이 책의 저술 목적이다. 한마디로 인구로 읽은 세계 흥망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주로 인용하는 핵심 통계는 세 가지다. 출생으로 인구를 더하는 출생률, 죽음으로 인구를 줄이는 사망률, 유입이나 유출로 인구 증감에 영향을 주는 이주다.
이런 통계를 추적해 어떤 지역이나 국가에서 분쟁이 격화될 것이라든가, 국력이 저하될 것인가를 판단할 수 있다.
저자는 한 사회의 중위 연령(한 사회의 인구를 나이순으로 죽 늘어놨을 때 정중앙 나이)이 높을수록 그 사회는 안정적이고 사건 사고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또 중위 연령이 낮을수록 범죄율이 높고 분쟁이 격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스위스는 평균 연령이 40대이기 때문에 평화롭지만 예멘에 사회 불안이 끊이지 않는다. 이것은 예멘의 평균연령이 20세 미만이라는 점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나는 요인도 젊은 팔레스타인 인구가 많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고 한다.
인구는 한쪽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200년 전에 급팽창했던 영국의 인구는 지금 크게 줄었고, 이제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경향을 답습하고 있다. 생활 환경의 개선으로 인구가 크게 늘었다가 교육의 발달로 인구 증가가 억제되는 선진국의 인구 패턴이 세계 각 지역, 국가에서 시간 차를 두고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에서는 맬서스 덫에서 벗어나는 1차 인구 전환이 한창이지만, 중국과 인도 등에서는 여성 교육의 활성화와 여성 노동의 증가로 출생률이 줄어드는 선진국 형의 2차 인구 전환이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장기적으로는 세계적으로 인구가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정체하거나 줄어드는 시기가 닥쳐올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수 세기 동안 세계는 굉장한 속도로 변화했다. 그리고 그 속도는 한층 더 빨라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대부분 기술 때문이기는 하지만 인구와도 관련이 있다. 기술과 인구는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역사는 예측을 허용하지 않지만, 인구 동향을 보면 한때 흰색(백인)이었던 세계가 갈수록 다양한 빛깔로 변화하고 있는 나라 내부에서 여파가 나타나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미국이 그렇고 독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국이 그렇다.
저자는 "미래에 어떤 일이 기다리든 한 가지 확실한 점이 있다"면서 과거에 그러했듯이 인구와 인류의 운명은 앞으로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을 것이라고 말한다. 즉, 각 지역과 국가마다 구체적인 사정은 다를지언정 출생과 사망, 결혼과 이주가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남아 있는 한 인구가 역사의 경로를 결정할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는 얘기다.
현재 한국의 출생률은 0.8명에서 또다시 감소하여 0.72명으로 집계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나라가 소멸하기 직전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처럼 급격한 인구의 감소, 그와 함께 일어나고 있는 급격한 고령화가 한국의 미래에 과연 어떤 영향을 줄까?
이 책을 읽고 나서, 한국이 중위 연령의 상승과 함께 스위스처럼 평화로운 사회가 될 것인지, 아니면 인구 급감으로 룩셈부르크처럼 개인은 부유하되 국가는 영향력이 미미한 존재로 전락할 것인지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어떤 미래가 펼쳐지든 인구 동향과 국가의 미래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앞으로 한국 사회가 인구 문제에 더욱 큰 관심을 갖고 건설적인 대응책을 모색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