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수색>, 뉴스타파, 봉지욱, 윤석열
윤석열 정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언론탄압 사건 둘만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바이든-날리면' 사건과 '김만배-신학림 대화 녹취 조작' 사건을 뽑겠다.
바이든-날리면 사건은 2022년 9월 윤석열이 미국을 방문해 조 바이든 대통령을 잠시 만난 뒤 '바이든 이 새끼'라는 막말을 한 뒤 벌어진 사건이다. 이것이 <MBC>를 비롯한 국내 언론에 보도되자, 대통령실은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한 것이라고 우겼다. 쉽게 말하면, 현대판 '지록위마' 사건이다.
이 시건은 단지 지록위마로만 그치지 않고 그 보도를 한 MBC를 탄압하는 사건으로 이어졌다. 이 사건 바로 뒤 윤석열의 해외 순방 때 대통령 전용기에 MBC 기자의 탑승을 거부했다. 이뿐 아니다. MBC는 그 뒤 수차례 열린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한 번도 질문권을 받지 못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때는 지상파방송으로는 유일하게 단전, 단수 대상이 됐다.
김만배-신학림 대화 녹취 조작 사건은, <뉴스타파> 탄압 사건으로 부르는 게 더 합당하다. 윤 정권은 김-신 두 사람의 녹취를 추려 방송한 뉴스타파 보도를 '대선개입 여론조작' 사건으로 대대적으로 악마화하며 뉴스타파를 말살하려고 했다. 이를 위해 대통령실을 비롯해 국민의힘, 방통위, 방심위, 문화관광체육부, 서울시청, 검찰 등 여권에서 가동할 수 있는 모든 물리력을 동원했다. 당시 국힘당의 김기현 대표는 "사형에 처할 국가반역죄",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희대의 대선 정치공작"이라고 바람을 잡았고, 검찰은 최정예 특수부 검사 10여명을 투입해 '대선개입 여론조작 특별수사팀'을 꾸려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다. 윤 정권이 벌인 언론 탄압의 절정이자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다.
<압수수색>(도서출판 뉴스타파, 김용진 한상진 봉지욱 지음, 2024년 10월)은 뉴스타파 탄압 사건으로 검찰에 의해 기소된 뉴스타파 기자들 3명이 수사 착수에서 재판까지 일어난 일을 기자의 비판적인 눈으로 기록한 책이다.
기자들이 사건을 보도할 때는 제3자의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게 보통이다. 검찰이 수사를 하는 사건의 경우에는 정보를 틀어쥐고 있는 검찰의 말에 크게 의존한다. 그래서 피의자의 얘기라든가 검찰이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는 내용은 보도에서 빠지기 쉽다.
하지만 이 책은 탐사보도를 주업으로 하는 기자들이 자신들이 당사자로서 당한 얘기를 직접 말한다는 점에서, 내용이 질적으로 다르다. 이 책 프롤로그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 탐사보도 기자는 가끔 잠입 취재나 위장 취재, ‘스팅 오퍼레이션(sting operation)’을 한다. 정상 취재 방법으로 밝히기 힘든 일을 알아내기 위한 특수 취재 기법이다. 그래서 윤석열 정치검찰의 압수수색과 기소는 기자인 우리에게 하늘이 내린 복이나 마찬가지다." (12쪽)
이 책이 의미와 재미를 겸비한 것은 의도치 않은 스팅오퍼레이션 취재가 자연스럽게 이뤄졌기 때문이리라. 관찰자 위치에 있는 기자들이 경험할 수 없는 수사의 전 과정을, 그리고 그 과정에 나타나는 문제점을 그들이 직접 보고 기록할 수 있었다.
또 하나는 이들의 주눅 들지 않음, 당당함이다. 이들은 한국 사회의 가장 무도한 권력인 검찰에 맞서 싸운다. 압수수색이면 압수수색, 조사면 조사, 재판이면 재판 가리지 않고 검찰의 무도함에 맞서며 그들의 모순과 허점을 까발린다. 이 책이 검찰 수사를 받는 피의자, 피고인이 쓴 책이면서도 밝은 기운을 내뿜는 이유다.
"그래서 윤석열 정치검찰의 압수수색과 기소는 기자인 우리에게 하늘이 내린 복이나 마찬가지다. 실제 범죄를 저질러 취재를 수행하기에는 우리의 간이 너무 작고 준법정신은 투철하다. 그런데 이런 기회를 주니 얼마나 좋은가."(13쪽)
이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모두 8장으로 구성돼 있다. 8장은 대체로 시간 순으로 짜여 있다. 제목을 훑어보면 공모, 침탈, 압색공화국, 망상, 디지털신공안, 중대범죄자, 출석, 기소이다. 그리고 맨 뒤에 특별부록이 붙어 있다. 수사와 그에 맞선 기자들의 대응이 이야기의 주내용이지만, 딱딱하지 않고 법정소설처럼 술술 읽힌다. 뉴스타파 사건의 전모를 알고 싶은 사람은 꼭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가 내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정권과 검찰이 작명한 사건 명인 '대선개입 여론조작' 사건을 '뉴스타파 대 검찰' 사건으로 부르자는 제안이다. 검찰은 사건에 대한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기도 전에 선입견 가득한 사건 명을 만들어 여론재판을 한다. 기자들도 그대로 검찰의 악의적인 작명을 따라 쓴다. 그래서 시민들은 보도가 될 때마다 '대선개입 여론조작'이라는 세뇌를 당한다. 미국은 다르다. 이런 선입견 가득한 사건 이름을 쓰지 않는다. 'ooo 대 ooo' 사건이라고 한다. 앞으로 한국도 논쟁적인 사건에는 이런 중립적인 이름을 써야 한다고 본다. 언론은 지금부터라도 이 사건의 이름을 '대선개입 여론조작' 사건이 아니라 '뉴스타파 대 검찰' 사건으로 불렀으면 한다.
둘째는 특별부록에 있는 '압수수색 대응 매뉴얼'이다. 한국은 검찰공화국이면서 압수수색공화국으로 불린다. 이 책에 따르면, 2023년에만 하루에 1253건의 압색이 이뤄졌다. 검찰이 청구하는 압색영장은 법원에서 99% 이상 발부된다. 압색을 받은 사람들은 휴대전화 하나 압수당함으로써 영혼까지 털린다. 검찰은 압색영장으로 획득한 정보를 불법, 탈법으로 저장하고 활용하면서 권력의 화수분으로 삼는다. 이 책은, 압색이 인권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주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들은 기자 중에서도 담이 매우 큰 사람들이고 나름 압색을 예상하고 대비했는데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그런 회한과 반성 때문인지 저자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압색에 잘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특별부록 1'로 붙여놨다. '압수수색영장은 누가 만드나요?' '압색영장에서 무엇을 확인해야 하나요?' '수사관이 제 휴대전화를 압수하더니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합니다.' '디지털포렌식이 끝나면 혐의와 관계없는 내 정보는 삭제해 주나요?' 등 20개의 실전 문답이다.
법령이 바뀌어 무분별한 압수수색에 제한이 가해지고 인권보호가 강화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그리되기 전까지는 가능한 범위에서 자기가 스스로 지킬 수밖에 없다. 슬픈 현실이지만, 이 매뉴얼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값어치를 충분하게 느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희망적인 것은 이런 책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압색공화국, 검찰공화국도 점차 힘을 잃어 가게 될 것이란 점이다.
이 책을 덮으면서 윤석열 파면 이후 나올 두 건의 재판( '바이든-날리면' 사건의 2심과 '뉴스타파 대 검찰(윤석열)'의 1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무척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