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다큐멘터리, 내란, 윤석열
뉴스타파가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압수수색-내란의 시작>을 봤다. 4월 23일 개봉했는데, 하루 뒤인 24일 집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상영관을 겨우 수소문해 관람했다. 평일 낮 시간대의 상영인 탓인지 100여 명 규모의 좌석 중 끝날 때까지 나를 포함해 여섯 명만 덜렁 자리를 지켰다. 이 동네에서 여섯 명이나 그 시간에 함께 있다는 게 반가웠다.
그래도 영화가 끝난 뒤 50대 중년 부부가 나가면서 "재미있네" 하고 맞장구치는 걸 보니, 앞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관객도 꽤 늘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의외로 이 영화가 '일일 박스 오피스' 3위를 기록 중이었다. <야당>과 <승부>가 앞 서고, 바로 이 영화가 그 뒤를 따랐다. 앞의 두 영화는 극영화라는 점에서, 다큐 영화로서는 꽤 선전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이 영화의 원작인 <압수수색>을 이미 읽었다. 그래서 책 내용을 재확인하는 수준이겠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또 책을 어떻게 영화로 형상화했을까 하는 호기심을 안고 영화관에 들어갔다. 언론인으로서 적어도 언론 문제를 다룬 영화는 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무감도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영화를 직접 보니, 책과는 매우 다르게 이야기가 전개됐다. 책과 영화라는 매체의 치이에서 비롯한 면도 있겠지만, 가장 큰 차이는 책은 윤석열 내란 전에 나왔고 영화는 내란 수괴 체포까지 다루고 있다는 것에서 나왔다. 책에는 윤석열 내란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영화는 첫 장면이 여의도 국회의사당 상공으로 헬리콥터가 날아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책은 윤석열 정권의 뉴스타파 탄압·비판 언론 탄압이 주 내용을 이루지만, 영화는 자연스럽게 '뉴스타파 탄압이라는 창을 통해 보는 윤석열 정권 몰락사'가 됐다.
영화는 호흡이 매우 빨랐다. 김용진, 한상진, 봉지욱, 심인보, 박종석 기자의 증언과 뉴스 장면이 주요 소재여서 딱딱하고 지루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윤석열 정권의 탄생부터 몰락까지 과정이 '뉴스타파 탄압'이라는 실에 꿰어진 채 긴박하고 물 흐르듯이 전개된다. 이것은 전적으로 탐사보도의 일인자로 꼽히는 감독 겸 배우 김용진 씨의 재주와 능력에 기인한 것일 것이다.
몇몇 뭉클한 장면은 오래오래 여운을 남긴다. 특히, 한상진 기자가 두 차례 말을 잇지 못하고 눈시울을 짓는 장면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첫 번째는 검찰청 포렌식에 참여한 뒤 완전히 탈진한 채 청사 밖으로 나온 한 기자가 빗속에서 "이 싸움에서 꼭 이겨야 한다"라고 다짐하면서 결의를 다지는 장면이다. 또 다른 인터뷰 장면에서 "권력의 압박에 절대 굴복할 수 없다"라면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훔친다. 눈물로 젖은 그의 비장한 발언이 곧 뉴스타파의 결기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윤 정권과 검찰의 악랄하고 무자비한 폭압 속에서도 낙관적인 자세로 맞서는 그들의 모습은 자칫 무겁고 어두울 법한 영화 분위기를 밝고 희망차게 반전시킨다. 봉지욱 기자가 <압수수색> 책 출판기념회에서 "저는 윤석열이 임기를 못 채울 것이라고 봅니다"라고 확언하자, 청중들이 환호와 함께 박수를 친다. 또 김용진, 한상진, 봉지욱 기자가 승용차를 함께 타고 재판을 받으러 가면서 남산 터널을 지난다. 그때 대표인 김 기자가 "지금 깜깜한 터널을 지나고 있지만 곧 터널을 빠져나가듯이 밝은 날이 올 거야" 하고 예언처럼 말한다.
두 이야기는 모두 윤석열이 내란을 일으키기 전에 나온 말이다. 그 시점에서 확신이 없으면 함부로 내뱉을 수 없는 말이다. 그들이 무도한 윤석열의 폭정을 치열하게 취재하면서 그가 곧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걸 간파했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무당의 예언이 아니라 기자의 취재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영화에 나오는 뉴스타파 기자들은 이 시대의 기자들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잘 보여준다. 그들은 압수수색부터 재판까지 내내 핍박을 당할지언정 굽히지 않고 당당하게 맞선다. 검찰 출입 기자들 앞에서 "검찰의 말만 받아쓰지 말라"라고 호소하고, 검찰이 '대선 개입 여론조작 사건'이라고 명명한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사건을 '이제부터 뉴스타파 대 윤석열 사건으로 부르고자 한다'라고 선언한다. 월급쟁이로 전락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요즘 기자들이 새겨듣고 행동으로 옮겨야 할 대목이다.
어떤 평자는 이 영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을 그린 영화 <변호인>에 견줄 만한 감동을 준다고 말했다. 나도 그런 비슷한 감동을 느꼈다. 일종의 권선징악이 주는 희열이라고나 할까?
여기에 더해, 나는 이 영화가 그와는 차원이 또 다른 깊은 맛과 의미를 준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핵심인 언론을 탄압하는 권력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 말이다. 윤석열은 줄곧 자신에 비판적인 뉴스타파를 붕괴시키려고 온갖 권력을 다 동원했지만, 결국엔 자기 발등을 찍고 자멸했다. 거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뉴스타파, 즉 비판 언론이다. 이 영화는 민주주의에서 비판 언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우쳐 준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권력자와 언론인은 이 영화를 꼭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