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외무성, 아시아 먼로주의, 만몽 이권 사수, 대동아회의
일본은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에 패하기 직전, 마지막 발악으로 서구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차원에서 아시아 제국이 뭉치자고 외쳤다.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의 주창이다.
1943년 11월 5~6일 도쿄에서 열린 대동아회의와 거기서 채택된 대동아 공동선언이 대동아공영권의 상징이다. 이 회의에는 일제의 총리 도조 히데키, 중국 난징 정부의 왕조명 행정국장, 만주국 장경혜 국무총리, 필리핀의 호세 라우렐 대통령, 태국의 완와이타야콘 총리 대리 등 각국의 수뇌가 참석했다. 그리고 이 회의에서 미영으로부터 대동아 민족의 '해방'과 대동아권 외로 자원의 '개방'을 핵심 내용으로 한 대동아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하지만 화려한 겉 포장과 달리, 대동아공영권은 태평양전쟁에서 석유 부족, 수송력 부족, 항만 부족의 3중고에 몰려 패전 직전에 몰린 최후의 수단이었다. 그래서 당시 전쟁을 주도했던 육군, 해군의 군부 세력이 이 구상을 주도했다는 것이 통설이었다.
<외무관료들의 대동아공영권>(신조사, 구마모토 후미오 지음, 2025년 5월)은 군부 주도의 대동아공영권 제창설을 뒤집는 책이다. 일본 외교사 전공인 구마모토 고마자와대학 교수는 이 구상을 주도한 사람들은 군인이 아니라 외무성의 엘리트 관료들이었다고 말한다. 역대 외상을 지낸 사람들의 책이나 기록, 외무성 자료 등을 꼼꼼하게 추적하고 분석해, 이런 주장을 뒷받침했다. 이런 공로로 그는 아사히신문사가 주최하는 제25회 오사라기 지로 논단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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