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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출신 대학 총장의 솔직대담한 일본 비판

<사코 학장, 일본을 말한다>

by 오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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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외국적의 사람이 대학 총장이나 학장이 될 수 없다. 또 유별난 것은 옛 제국대학의 후신 대학의 우두머리만을 총장이라고 부르고, 나머지 학교는 공사립 또는 규모를 가리지 않고 모두 학장이라 한다.


일본에서 외국인이 대학 총장이나 학장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내가 오사카총영사로 있을 때 아라이 쇼고 나라현 지사로부터 듣고 알게 됐다. 부임 인사 차 만난 자리에서 아라이 지사는 이어녕씨를 나라현립대 학장으로 초빙하려고 하다가 국적조항 때문에 포기하고, 결국 명예학장으로 모셨다고 말해 줬다. 우리나라에서는 카이스트에 외국인 총장이 있었던 걸로 봐서 총장 자격에 국적이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 만화학과로 유명한 교토세이카대학의 우두머리가 아프리카 말리 출신의 우스비 사코 학장이다. 물론 귀화해 일본 국적자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게 말리 출신 일본인(말리언 재패니스)임을 밝힌다. 아픈 역사의 무게에 짓눌려 살고 있는 재일동포나 귀화한 동포에 견줘, 밝고 경쾌한 소수자(마이노리티)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내가 오사카에 부임한 2018년부터 학장을 맡기 시작했다. 이 학교는 총장을 교수들 투표로 뽑는 데, 1표 차이로 극적으로 학장이 됐다고 한다. 부임 뒤 각 대학을 순회 방문하는 중, 지인으로부터 "꽤 재미 있는 사람이 교토세이카대학의 학장이 됐는데 한 번 만나보면 좋을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찾아갔다. 그와 이렇게 인연이 되어 1년에 한두 차례 만나 이런저런 화제에 관해 자유롭게 얘기하는 사이가 됐다.


귀임을 앞두고 2월께 교토에서 그와 송별 점심을 했다. 그 자리에서 내가 일본어로 출판한 <총영사 일기>를 선물하려고 봉투를 만지는 순간, 먼저 가방에서 내 책을 꺼내 사인을 해달라고 했다. 나는 그렇지 않아도 사인본을 가지고 왔다면서 그 책은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라고 말했다. 그때 그가 다시 가방에서 주섬주섬 2권의 책을 꺼내더니 나한테 주었다. 그 중의 한 권이 <사코 학장, 일본을 말하다>(아사히신문출판, 2020년 7월)다. 또 한 권은 <아프리카인 학장, 교토수행중>(문예춘추, 2021)이다.


책 제목에 '일본을 말하다'라고 되어 있지만, 내용을 보면 '일본을 비판하다'라고 하는 것이 더욱 적절한 것 같다. 그는 제3자의 시각에서 일본의 이상한 점, 이해하기 어려운 관행을 거침없이 비판한다. 한국 사람이나 재일동포가 알면서도 쉬시하는 문제를 밖으로 끄집어내어 통렬하게 지적한다. 아마 역사적인 부담감이 없는 먼나라 출신이라는 점, 성격이 외향적이고 직선적이라는 점, 나름 일본에서 성공한 외국인이라는 자신감이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의 일본 비판은 겉핥기가 아니라 생활 밀착형이라는 점에서 무게가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논객이자 사상가인 우치다 다쓰루에 따르면, 사코 학장이 자기가 아는 한 일본어를 가장 자연스럽게 하는 외국인이라 한다. 실제 간사이 사투리도 자유자재로 능숙하게 구사한다. 그만큼 일본 사회를 깊숙히 알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런 점이 높게 평가됐는지, 최근에는 <아사이테레비>의 뉴스스테이션에 고정 코멘테이터로 출연하고 있다.


예를 들면, 그의 일본 대학의 행정에 대한 비판은 이런 것이다. 학생들이 교수의 인솔 아래 외국 여행을 가려면, 학교에 학생들의 안전에 책임을 지겠다는 서약서 같은 것을 내야 한다. 그러나 학생들이 개별적으로 가는 것은 학교가 관여할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서울에 불고기 먹으러 가고 싶은 학생들은 모두 00날 00시에 서울 00에서 만납시다"라고 약속하고 여행을 하고 오는 식이다. 그가 '눈 가리고 아옹' 식의 형식적인 대학 행정을 돌파하는 방식이다. 이 사례는 그가 나에게 직접 들려준 실화다. 그는 한국과 한국문화, 한국음식을 매우 좋아한다.


책에는 이런 사례도 나온다. 수업시간에 영화나 코스프레 얘기가 나오면 반드시 영화 오타쿠와 코스프레 오타쿠가 등장해 그건 이러저러하고 저건 저러이러하다는 얘기를 세세하게 하는 학생이 있다. 이를 보면서 그가 느끼는 것은 '노는 것까지 취미까지 그렇게 완벽하게 하면 언제 긴장을 해소하느냐'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이렇게 매사에 질식할 정도로 매진하는 것이 일본의 장점이 아니라 '일본인의 병'이라고 진단한다.


같은 소수자로서 재일한국인, 조선인이 기를 펴지 못하고 살게 하는 일본 사회의 문제도 날카롭게 꼬집는다. "재일한국인과 조선인은 민족 이름으로 공부할 수 있는데, 그녀는 일본 이름을 쓰고 있다. 복잡한 심정이었다. 그녀는 왜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지 않고 일본에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중략> 그녀가 당당히 코리안재패니스라고 할 수 없는 그런 사회의 문제점을 생각해 봤다."(101페이지)


학생들과 사제지간이라는 수직적, 형식적 관계가 아니라, 가족처럼 무엇이든지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수평적, 실질적 관계를 중시하고 추구하는 그의 교육자관은 일본에만 필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또 일본이라는 독특한 세계에서 마이너리티로서 구김 없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재일동포뿐 아니라 점차 늘어나는 한국 안의 소수자에게도 용기와 자극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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