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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유경 Jun 04. 2019

[기생충] , '계획'과 '냄새'의 역설

봉준호감독 생각 더듬기


좋은 영화는 보고 나서 계속 잔상이 남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그런 의미에서 참 좋은 영화이다. 영화를 혼자 보고 왔는데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스포일할 까 봐 자제하고 있다가 관객들의 영화평을 읽으며 나의 관점에서 한마디 덧붙여야겠다 생각했다. 여러 관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나는 두 개의 짧은 단어를 통해 이 영화를 분석해 본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이 두 단어에 있다고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 단어가 바로 '계획'과 '냄새'이다.


영화는 막막한 가정형편을 헤쳐나가기 위해 아들 기우(최우식)가 세운 뒤틀린 계획(사기)에서 시작한다.


아버지 기택(송광호)은 '다 계획이 있었구나'라고 말하며 아들의 잘못된 시작을 방조한다.

뒤틀린 계획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순항을 하다가 계획에 없던 폭우가 쏟아진 어느 날 크게 뒤틀어져버린다.

아들 기우는 아버지에게 계획(대책)을 묻는다.

아버지는 '계획이 없는 것이 계획'이며 '무계획이 가장 좋은 계획'이라고 현실을 도피한다. 아들은 아버지에 비해 책임감 있고 현실을 타개하려는 의지가 있다. 자신으로 인해 야기된 일이라고 본인의 책임을 과하게 통감하며 이번에는 무모한 계획(음모)을 세운다. 이 무모한 계획은 계획과 다르게 전개되면서 위기가 고조되고 계획에 없던 아버지의  돌발적  행동으로 비극적 파국을 맞으며 절정에 이른다.

'무계획이 가장 좋은 계획'이라던 아버지 기택은 그의 말을 증명하듯 가장 안전한 대안을 찾고, 아들 기우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다시 한번 계획을 세운다. 이번 계획은  꿈을 꾼다는 말로 대체할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은 관객에게 묻는다.  이번에는 기우의 계획을 이룰 수 있을까? 기우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사회인가? 관객의 대답에 따라 이 영화는 희망적인 비극일 수도 있고, 절망적인 비극일 수도 있다.



냄새의 특징은 벽을 타고 넘어간다는 데 있다.

벽을 높이 쌓으면 보지 않을 수 있지만  냄새를  막을 수는 없다.

기택(송광호) 가족에게는 같은 냄새가 난다. 가난이 준 악취이다.

박사장(이선균)은 요즘 사회적 문제로 자주 등장하는 갑질을 하는 권력층 혹은 부자와는 다르다. 재벌과 차별화되는 첨단 벤처기업가로 재력, 샤프한 두뇌, 단란한 가족 등을 갖춘 도덕적인 신흥 부자 계층이다.  

박사장은 갑으로서 을을 착취하지 않으나 을과 격리되고 싶어 한다.

담장을 높게 치고 외부와 격리된 안락한 성을 구축한다.  

그 성안에 사는 사람들은 구김살 없이 착하다. 오염이 안되어 순수하다.

그러나 그 완벽해 보이는 성도 타고 들어오는 냄새를 막을 수는 없다.

성 밖의 악취는 스멀스멀 틈새로 들어와 성 안까지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처음부터 성 안의 안전과 안락을 위해 벽으로 차단하고, 성 밖의 일들을 모른 척 한 시도 자체가 불안했다. 인큐베이터 안에 들어있는 신생아처럼 약하고 위험했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내 눈 앞만 안전하다고 거실 탁자 밑, 지하실, 문 밖의 세상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박사장은 울타리를 치고 섞이고 싶어 하지 않지만 냄새는 완벽한 그의 세계에 침입해 들어와 결국 박사장을 쓰러트린다. 가해자가 아닌 '은인' 박사장을 찌르는 칼이 된다.


봉준호 감독은 또 묻는다. 과연 나와 관계없었으면 하는 사회의 어두운 그늘은 진정 나와 관계 없이 격리되어질 수 있는가?


역설적이게도 '냄새'를 차단하려 하지 않고 근원을 찾아서 해소하려 노력했다면 '계획'은 애초부터 시작 못되지 않았을까?







KBS 아나운서 오유경

전 KBSKWAVE편집인/ KBSAVE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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