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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 휘서 Nov 22. 2020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몇 달 만에 단톡방에 메시지가 떴다.


"언니, 오랜만이야~ 잘 지내? 다름이 아니라 K 어머니가 돌아가셨대. 내일 H랑 오후에 기차로 내려가려고..."


놀라운 소식에 잠시 사고가 정지한 듯 멍했다. 곧 친구에게 예약한 기차 칸을 물었고 대화를 마치자마자 기차를 예매했다.


단톡방의 친구들은 대학 때 살던 하숙집 친구들로 몇 년 간 동고동락했던 사이이다. 자주는 못 봐도 일 년에 두 어번씩 보는데 연말을 향해 가는 시점에 이런 소식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서로의 어머니를 뵌 적이 거의 없는데 부고가 전해진 친구의 어머니는 모두 인사를 드린 적이 있어서 시간이 지났지만 기억 속에 남아있다.


친구의 마음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다 편지지 상자를 열었다. 작게나마 마음을 전할 방법은 언제나 글을 적는 것.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할 때 언제나 펜을 든다. 동네 친구였던 죽마고우와 200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던 것이 습관이 되어 친구들에게 편지를 자주 썼다. 그때 예쁜 편지지를 주기적으로 사모으던 습관이 이어져 요즘도 카드나 편지지를 가끔 다.


가까운 이가 경조사를 맞을 때 편지지 상자를 열어 어울리는 디자인을 고른다. 이번에는 무거운 마음으로 편지지와 카드를 하나씩 뒤적였다. 로맨틱한 감성, 밝은 분위기, 차가운 느낌 등을 하나씩 제외하니 몇 가지가 남았는데 문득 '아! 이 편지지가 제격이겠다.' 싶었다.


바로 약봉지 형식의 편지였다. 원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건네는 이벤트용으로 보였지만 아픔을 달랠 용도로도 적절해 보였다. 조그만 쪽지를 돌돌 말아 캡슐 알약에 넣어 한 첩씩 꺼낼 수 있는 형식이다. 음.. 가벼워 보일지는 않을까? 잠깐 걱정했지만 친구라면 좋은 의미로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이 편지는 쪽지식이라 마음을 담기에는 부족하니 하트가 크게 그려진 따뜻한 느낌의 편지지를 따로 골라 그곳에 긴 마음을 적기로 다.


편지지를 낙찰한 후 한동안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오후, 일을 끝내고 부랴부랴 짐을 챙겨 기차역으로 갔다.

먼저 와 있던 친구들이 반겨 준다. 언제 봐도 좋은 얼굴, 모두 조퇴를 하고 왔다고 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간이 받침대에 편지지를 꺼낸다. 친구가 너무 오래 아파하지 않고 서서히 괜찮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울컥해지는 마음을 가까스로 누르며 한 자 한 자 눌러 적는다. 편지를 마무리한 후 캡슐 편지지를 꺼내 들었다.


짧은 쪽지에 무엇을 쓸까? 잠깐 고민하다 친구가 마음이 너무 아플 때 하면 좋을 일들에 관해 썼다. '가까운 곳을 산책하며 잠시라도 자연을 마주 보기', '마음이 가라앉을 땐 펭수 보기' 등등.

돌돌 말린 쪽지를 캡슐에 넣어 한 첩씩 담을 수 있는 약 봉지 테마의 편지지.

두 개의 캡슐은 앞자리에 앉은 친구들에게 건넸다. 각자의 마음을 담은 마음 알약 6첩이 채워졌다.

 친구는 올해에 나온 씰을 준비했단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매년 팔았던 씰, 올해는 펭수 버전이라니. 펭수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건네는 귀여운 위로 방식이 될 터였다.


우리는 몇 시간을 달려 낯선 도시에 도착했고 모 병원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병원 입구의 테이블에서 못 온 친구들의 부의금을 챙기며 이름을 적었고 옷매무새를 단정히 한 뒤 친구와 친구 어머님을 뵈러 해당 호실로 올라갔다.


입구에서 친구를 부르자 상복을 입은 K가 우리를 맞았다. 얼굴을 보자마자 금세 눈시울이 붉어진 친구의 표정에 모두 눈가가 뜨거워졌다. 어떻게 왔냐고 어쩔 줄 모르는 친구를 안아준 후, 어머님을 뵈었다.


다 함께 묵념을 하고 가족과도 인사를 나눈 뒤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소식을 따로 전하질 않았는데 여기까지 와 준 친구들에게 놀라워하면서 대학 동창, 동아리 등 많은 이들이 왔다 갔다고 했다.


편지를 어서 전하라는 친구들의 성화에 꾹꾹 눌러쓴 말들을 건넸다. 웬 약봉지이지 하는 표정으로 봉지 속 약을 꺼내는 친구, 진짜 약이 아니라는 설명에 '잉?' 하며 살핀다.


"와~ 나는 보자마자 어, 약이 찌그러져 있으면 안 되는데, 펴야 하는데.. 했잖아. 하하"

유쾌하게 웃는 친구.


약사인 친구는 받자마자 직업의식이 발동했단다. 너를 위한 처방전이라는 말에 기발하다며 좋아했다.

'다행이다.'


또 다른 친구가 펭수 씰을 건네자, "와~~ 펭수네. 고맙다! 예쁘다.. 근데 이제 펭수를 잘 못 볼 것 같아. 엄마도 펭수를 좋아하셨거든."


거기까진 생각을 못했는데 순간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언젠가 펭수를 보며 예전처럼 깔깔 웃기를..!


우리는 이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친구 근황, 봄날 캠퍼스의 저녁, 하숙집의 원래 이름, 각자의 입주 시기 등등 이야기보따리를 한껏 풀어놓으며 간간이 웃었고 그리워했다.


1시간이 넘게 대화하며 웃고 떠들었고 방문객이 올 때마다 친구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 돌아왔다. 예전에는 장례식에 와서 떠들썩한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갔는데 오늘에서야 어렴풋이 깨달았다. 이곳에는 슬픔만 존재하면 안 되는 거였다. 떠난 사람을 추억하며 웃기도 하고 지난 기억을 소환하며 함께했던 순간을 기리는 자리였다. 우리는 친구가 울까봐 망자를 얘기할 순 없었지만 친구에게 망각의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다.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기분을 잠깐이라도 업 시키고 싶었다. 잠시라도 슬픔을 망각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모였다.


슬픔을 1/n만큼 나눠 가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 어떤 위안도 쉽지 않으리라는 걸 안다. 그저 곁에 잠시라도 있어주는 것, 우리의 반나절을 뚝 떼어 달려와 주는 것이 최선일 수밖에. 


친구는 앞으로 어떻게 살 지 가족과 하나씩 의논해 보겠다고 했다.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며칠의 휴식을 거쳐 평소대로 돌아올 거라고 했다. 본인 슬픔을 조금씩 치유해가며 늘 그렇듯 사람들의 아픔을 덜어주는 본분을 이어갈 테지.


부디 서서히 괜찮아지기를, 언제나 네 곁엔 너의 사람들이 있다는 걸 기억해.

그리고 아주 가끔은 오늘의 우리가 든든한 처방전이 되어 마음을 단단하게 지켜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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