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의 꽃과 열매를 원한다. 나는 사람에게서 어떤 향기 같은 것이 나에게로 풍겨오기를 바라며, 우리의 교제가 잘 익은 과일의 풍미를 띠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의 '착함'은 부분적이거나 일시적인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끊임없이 흘러넘치되 아무 비용도 들지 않고, 또 그가 깨닫지 못하는 것이어야 한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생각해 봅니다. 자본주의가 우리의 생각까지 깊숙이 침범한 시대에서 인간관계도 기브 앤 테이크 공식이 적용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저 문장을 보니 정말 진실한 인간관계는 그런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떠올렸어요. 정말 좋아서, 누군가와의 시간이 즐거워서 만나게 되니까요.
<월든>은 자연주의를 말할 때 떠올리는 대표적인 책인데요. 읽다 보니 자연뿐 아니라 돈, 학식, 명예, 집, 소유, 부, 인간관계, 독서.... 정말 많은 함의를 품고 있네요. 하루에 20~30 페이지씩 읽으니 깨닫는 바가 많습니다. 그의 방식대로 살 순 없지만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 찬찬히 사색하게 됩니다. 하버드대를 나온 초엘리트가 택한 다른 삶, 보통 노년에 깨닫는 인생의 진리를 20대 후반에 깨닫고 실천하는 모습이라니. 분명 비범한 데가 있죠. 생각의 원류가 동양의 사상, 불교의 가르침과도 맞닿아 있고요. 법정 스님이 왜 이 책을 아끼셨는지 서서히 알 것 같아요.
그리고 요즘 자주 느끼는 건데 제가 성장함에 따라 문해력이 늘어감을 깨닫습니다. "문해란 다양한 내용에 대한 글과 출판물을 사용하여 정의, 이해, 해석, 창작, 의사소통, 계산 등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유네스코에서 정의했다고 하는데요. 가독성도 비슷한 맥락이겠죠. 불과 1~2년 전만 해도 <월든>이 읽히지 않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워낙 유명한 책이라 도서관에서 찾아보았는데 이내 책장을 덮고 말았죠. 잘 읽히는 문체가 아니었고 크게 와닿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아, 아직은 읽을 때가 아니구나.' 하며 제자리에 돌려놓았죠. 그렇게 스쳐갔는데 이제야 책을 펼치니 와닿습니다. 물론 여전히 술술 읽히는 문체는 아니지만 담고 있는 가치관을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한것 같아요.
유행 문학을 제외하고서 어떤 책의 수준을 말할 때 섣불리 판단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취향의 문제를 넘어 제가 그 책을 읽어낼 수준이 되지 않아서 오판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작년에 구입했던 알베르트 망구엘의 <밤의 도서관>과 제이미 커츠의 <행복한 여행자로 사는 법>도 마찬가지였어요. 산 당시에는 읽히지도 않고 나랑은 맞지 않는 책이라고 느꼈어요. 그런데 올해 다시 책을 보니 놓쳤으면 참 아까웠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에게 좋은 책이더라고요. 몇 번 그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좋은 책을 알아보기 위해서 더 부지런히 읽으며 안목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목이 성장하는 만큼 좋은 책을 발견해 제 곁에 둘 가능성이 커지니까요. 그래서 오늘도 저는 책을 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