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애서의 숲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디터 휘서 May 10. 2021

구독자를 실제로 만난다는 것


"와~ 휘서님, 이렇게 생긴 분이셨군요! 어떤 분일까 궁금했어요."


"안녕하세요? 혹시 구독자 분이세요?"


"네넵, 브런치 글 보고 왔어요."


상상만 해 오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엊그제 진행한 에세이 독서모임에 브런치 구독자 중 한 분이 오셨다. 몇 년째 파트너(진행자)로 일하는 독서모임은 첫 모임 일주일 전에 단톡방이 열린다. 뒤늦게 초대한 한 분이 가입인사를 하면서 '5월 1일까지라 등록 못할 줄 알았는데 다행이네요.'라고 말씀하셨다. 순간, 어 '구독자 분인가?' 싶었다. 대략 그 날짜 즈음 마감이 될 것 같아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 안내를 덧붙였었다. 회사 홈페이지에는 없는 내용이니 공지를 본 이는 곧 구독자란 뜻. 그날 이후로 내심 설렜다.


코로나 2단계가 끝없이 이어지면서 연기와 취소를 반복하다 근 6개월 만에 열린 트레바리 에세이 모임은 4인 이하 모임으로 개편해 여러 방에서 토론을 나누는 걸로 조정되었다. 파트너인 나 또한 어느 방에 배정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처음 인사를 나눈 분이 그 구독자 분이었다.


모든 멤버가 출석하자, 3개의 방에서 각자 핸드폰으로 연결해 줌 zoom 회의 기능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이름과 하는 일, 이 클럽에 오게 된 계기 등을 말하며 처음 얼굴을 뵈었다.

대부분 글을 쓰고 싶어서 오신 분들이었고 기존 트레바리 멤버 반, 새로운 멤버 반 딱 50대 50의 비율. K님은 휘서님의 브런치를 구독하다가 독서모임 안내글을 보고 오셨다고 하셨다. 코로나 시기를 대부분 집에서 보내다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기회로 독서모임을 택하셨단다. 4년 간 15개가 넘는 클럽을 진행하며 수없이 첫인사를 나누었는데 구독자가 오신 것은 처음이다.


독서모임은 4개월마다 새 시즌을 맞는데 그때마다 인스타그램, 블로그, 브런치에 모임 공지를 알렸다. 글은 나의 근황이기도 했고 혹시나 결이 맞는 분이 있다면 모임에서 뵙길 바라는 온라인 구애 편지이기도 했다. 간혹 모임에 대해 여쭤보시는 분이 있지만 대부분 어려워하셨다. 지역도 천차만별일 테고, 시간과 책, 가입비까지 모든 요소가 맞아떨어져야 하이해는 하면서도 실망이 따라왔다. 아, 이런 적은 있었다. 에세이 멤버 스무 분 중 알고 보니 나와 이웃이거나 구독자인 분이 세 분이나 계셨다. 졸지에 소소한 유명인이 되었다. 4000여 명의 구독자 중 '문학', '책'의 공통분모가 엮이다 보니 이미 이웃이었던 거다. 그때는 모르고 오셨고 이번에는 안내글을 보고 오신 셈이니 의미가 남달랐다.


온라인 상에서 꾸준히 글을 발행하지만 가끔은 허공에 날리는 외침 같을 때가 있다. 구독자 숫자와 아이디로 드러날 뿐 어떤 분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왜 나를 구독하는지, 어떤 점이 끌리는지, 글이 당신에게 닿은 지점이 무엇인지 궁금하지만 알기 어렵다. 많은 이들이 이런 이유로 '좋아요'와 '댓글'에 집착하는지도 모른다. 콘텐츠를 발행한 후 알 수 있는 유일한 실체이기 때문이다. '좋아요'와 댓글을 통해 반응 속도를 포착하고 꼭 비례하진 않지만 콘텐츠의 질을 짐작하기도 한다. 꾸준히 글을 읽어주는 사람을 알아간다. 자주 보는 아이디를 통해 '아, 000님은 이런 콘텐츠 좋아하시지.', '오, 00님 오랜만에 오셨네.' 나름의 눈인사로 반가워한다.


Photo by Laura Chouette on Unsplash

실체를 알 수 없는 온라인상의 독자를 실물로 마주하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나 역시 SNS에서 얼굴 공개를 최소로 하고 특히 브런치에는 비공개 지수가 가장 높은 편. 그러니 나를 보자마자 '이런 느낌의 분이셨군요.' 하는 뉘앙스로 첫마디를 뱉으셨을 테지. 오로지 글로만 나를 알아온 분이라니.


토론의 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조심스레 여쭤 보았다.


"K님, 어떻게 제 글을 구독하셨어요? 알게 된 계기가 혹시 미니멀 라이프 글이었나요?"

"아뇨, 다음 메인이거나 브런치 추천글이었던 것 같은데.. '애티튜드'에 관한 글로 기억해요. 음.. 자세히 기억나진 않는데 와 닿아서 휘서님 브런치를 방문했고 여러 글을 클릭했."


어떤 글이었을까? 이제껏 브런치와 다음 메인에 약 30편의 글이 선정되었는데 미니멀 라이프 주제가 가장 많았기에 당연히 그 글 중 하나인 줄 알았다.


"어쨌든 여러 폴더의 글을 보다가 구독했어요. 패션을 하신 분이면 엄청 화려하고 이런 이미지인데 미니멀 라이프를 하시는 것도 넘 신기했고.. 한편으로는 책에 관한 글을 보면 이런 분야까지 읽으시고 .. 여러모로 의외의 부분이 많았어요."


그렇구나... 우연한 한 분이 내 글을 읽고 어떤 마음으로 '구독' 버튼을 누르는지 늘 궁금했다. 메인에 오르면 며칠 동안 수 만 명의 사람에게 노출되고 그중 소수의 사람이 '음.. 읽을 만하군. 이 사람 글 좀 더 볼까?' 하다가 어떤 부분이 와 닿아서, 일상에 도움이 된다고 느낄 때 비로소 독자가 된다고 막연히 그려왔다. K님의 설명을 들으니 상상하던 바와 비슷했고 반면 이렇게 글을 자세히 읽는 분이 있구나 싶은 마음에 흠칫했다. 어떤 이에게 어느 정도로 영향을 주는지 진폭을 알 없다. 하지만 자기의 시간을 들여 꼼꼼히 글을 읽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새로운 파문이 번져왔다.


오래전 보았던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연락이 잘 안 되던 남자에게서 커다란 곰인형과 꽃다발을 한 아름 받고서는 뛸 듯이 기뻐하는 손녀에게 혀를 끌끌 차며 소리를 꽥 지르던 할머니.


"들이는 돈과 물질을 보지 말고 너에게 쏟는 시간을 봐, 이것아."


그 말이 어린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연인 관계뿐 아니라 모든 인간사에도 적용된다는 생각이 든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나이가 들수록 연락하는 지인의 수가 줄어든다. '정말 내 사람이다'라고 손에 꼽을 수 있는 사람의 기준도 명확해진다.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일도, 부탁을 받는 일도 조심스럽고 어려워지는  실감한다. 이럴 땐 드라마 속 할머니의 개념이 유효할 때가 많다. 기꺼이 시간을 쪼개어 누군가에게 걸음을 옮기는 일, 도움이 될 만한 지인을 소개해 주고 여러 곳에 연락을 돌리는 일, 특별한 날을 챙기고 손편지를 쓰는 일... 시간과 정성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내 사람에게 간다.

독자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이유도 같다. 글을 읽는 것, 하트 누르는 것, 공감을 표시하며 감상을 남기는 . 누군가의 시간이 나에게 닿는 일이다.


어제 오후 그런  중 한 분을 만나 내내 감동이었다. 자기표현과 만족을 위한 글이 내 안에 머물지 않고 생명력을 얻으려면 독자가 있어야 한다.


글의 목적지가 어디일까? 활자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힘없이 걷던 안갯길에서 작고 환한 등불 하나를 만난 기분이다. 글에 더 진심을 담아야겠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K님의 시간이 유연하고 풍성해지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 시간을 시간으로 보답하는 이 가장 확실한 마음의 표현이지 않을까.






* 에디터 휘서와 함께하는 롯데백화점 5월의 독서 모임

문-산책 - 트레바리 (trevari.co.kr)

매거진의 이전글 트레바리 씀에세이-산책 모집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