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디터 휘서 Jul 07. 2021

런던이 그리워져서



스멀스멀 런던이 그리워진다. 런던 워킹 유튜버도 찾아보고 현재 거주 중인 직장인 부부 유튜브도 구독 중이다. 가 닿지 못하는 세계를 눈으로 담는 중.


정세랑의 여행 에세이를 읽는데 지난 여행의 조각들이 마구 밀려와 그리워진다. 도시의 랜드마크 이야기가 나왔는데 런던 아이가 떠올랐다. 런던 아이 자체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지만 살던 동네에 있었고 매일 바라보는 환경이었다. 몇 백 명이 거주했던 기숙사에서 운 좋게도 런던 아이가 보이는 5A에 살았다. A~H 까지였나. 조금씩 다른 각도의 플랫이 존재했던 그곳에서 단 두 곳. 5A와 6A 플랫만이 통창의 주방에서 런던 아이가 꽤 크게 보였다. 다른 플랫에 놀러 갈 때마다 주차장 뷰나 맞은편 건물이 떡하니 가로막고 있는 걸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추첨되기 힘들다는 기숙사에 행운의 풍경까지 주어졌으니 얼마나 귀한 확률 일지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5A, 6명의 플랫 메이트들은 식사 때마다 런던 아이를 바라보는 행운을 누렸다. 아주 천천히 돌아가는 회전 관람차의 느긋한 속도는 식사 속도와 어울렸고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는 배경으로도 그만이었다.

해가 질 무렵 켜지는 관람차의 조명을 새벽녘까지 바라본 적도 많았고 계절마다 바뀌는 런던 아이의 색을 알아채는 발견의 기쁨도 컸다. 대개는 보라색이었는데 빨간색인 날도 파란색인 나날도 있었다. 언젠가는 반짝반짝 거리며 총천연색인 날도 있었는데 단 하루였던 걸 보면 특별한 날이거나 점검 중이었을 거라고 짐작하며 다들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장엄한 노을이 창을 물들이는 날에는 내내 바라만 보아도 행복했다.


주방이 넓었고 풍경도 근사했던 덕에 우리는 돌아가며 학교 친구들을 초대했고 기숙사 친구들을 불러들여 소소한 파티를 자주 했다. 각자 요리 한 가지씩을 준비해와 나눠먹었고 레시피를 공유하기도 했다. 우연히 만나 친해진 한국 친구, 다른 도시에서 유학 중인 대학교 친구를 초대해 한식을 해 먹였고 교통이 락 다운된 크리스마스 저녁에 같은 반 일본 친구들을 초대해 밤새 한국 드라마를 보며 칠면조 대신 푸짐한 닭요리와 싸구려 와인을 마셨다. 친구들의 부모님, 친척이 방문할 때면 각국의 음식이 총집합된 다국적 거한 저녁상이 차려졌고 4개 국어가 핑퐁처럼 오갔다.


문득 그 기숙사의 주방이 그리워진다. 여전히 런던 아이가 보일까? South Walk역에서 내리면 기숙사로 성큼성큼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걸음이 언제쯤 가능해질까? 열 달을 걷던 몸의 감각은 어딘가 깊숙이 숨겨져 있다 불현듯 깨어날 텐데.


런던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3~4년에 한 번씩  들렀다. 유럽에 갈 때마다 동선이 복잡해지더라도 꼭 끼워 넣는 모습을 보고 런던을 또 가냐고 엄마는 심드렁하셨지만 내게는 애틋함의 대상이니 어쩔 수 없었다. 몇 년에 한 번씩 잘 있나 확인하고픈 도시, 85% 즈음은 그대로일 거라 확신하지만 행여 15%넘게 달라졌을까봐 조바심이 난다.


늘 품고 사는 도시가 있다는 건 아련하고 설레는 일이다. 언제든 떠났던 자유가 예기치 못한 변수로 사라져 버린 요즘 한층 짙은 그리움을 안고 산다.

묻어둔 여행의 기억을 하나씩 글로 풀어놓으며 아쉬움을 달래는 수밖에. 나아질 거라는 믿음을 장착한 채 일상을 살아내는 수밖에.




매거진의 이전글 누군가에게 천사였던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