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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 휘서 Jul 17. 2020

미니멀라이프 3년 차, 중고 00의 진실

패션에디터에서 미니멀리스트로 변신 중


몇 개월의 비우기 과정에서 심심찮게 온라인 중고 사이트를 애용했다. 시작은 한 프로그램을 본 후부터 비롯되었다. 얼굴과 이름이 꽤 알려진 연예인이 중고 사이트를 통해 공기청정기를 구입하는 모습을 보고 내심 놀랐다. 직접 판매자와 통화를 하며 흥정까지 하는 모습이라니…!

‘와~ 연예인도 저렇게 중고를 사고 파는구나.’ 중고 거래라는 것이 소수 사람들의 전유물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막연히 어렵게 생각했던 생각이 사라지고 그때부터 안 쓰는 물건을 하나씩 판매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물건이 된다

 

중고 사이트에서 제일 먼저 판매한 물건은 향수였다. 취향이 변해서 더 이상 뿌리지 않거나 내 취향을 잘못짚은 선물 받은 향수가 대상이었다. 화장대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한 향수를 시범 삼아 올려 보았다. 2일이 지나지 않아 임자가 나타났고 첫 번째 향수는 송파구로 떠났다. 향수를 올릴 때마다 사고자 하는 사람이 늘 나타났다. 비록 나에게 사랑 받지 못했지만 누군가에게는 꼭 있어야 하는 나만의 향이었다. 자신이 늘 쓰던 향수를 저렴하게 구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문자를 보내왔다.

Photo by deanna alys on Unsplash

향수는 크기가 작아 거래하기도 편했다. 갖고 있던 향수 중 나의 시그니처 향수 하나만 남기고 모두 팔았다. 향수로 자신감을 얻은 후에는 고데기를 팔았다. 머리 스타일과 유행에 따라 구입하다 보니 몇 종류가 된 고데기 또한 지금 필요한 한 종류면 충분했다. 저렴하게 내놓았더니 즉각 반응이 왔다. 엄마가 홈쇼핑에서 구입한 1+1 고데기도 팔아드렸다. 모두 세 개의 고데기를 팔았는데 그중 두 번은 직거래였다. 한 번은 판매자의 남자 친구, 다른 한 번은 남편이 집 근처로 오셨다. 두 분 모두 선한 인상이었고 어떤 물건인지도 모른 채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는 얼른 물건을 받아갔다. 우연이 반복된 재밌는 기억이다.


생각보다 중고 거래가 할만하다는 것을 체득하자 판매 품목을 늘려갔다. 옷 보관용으로 대량 구매했던 압축팩, 캐나다에서 사 왔으나 집에 어울리지 않아 보관만 하던 그림, 한 두 번 입은 그리스 여신 스타일 원피스, 첫 파리 여행에서 샀던 강아지 모양 귀걸이, 겨울 홍콩 세일 시즌에 사 온 네이비 재킷, 한컷 추억 시리즈를 양산해 냈던 폴라로이드 카메라, 선물 받은 새 립스틱 등. 몇 년 동안 수십 개의 물건을 내보냈다.



중고 물건 판매 노하우를 익히다


다년간 물건을 판매하며 자연스레 나름의 방법을 터득했다. 몇 가지 소소한 판매 기술을 풀어놓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예약택배보다 편의점 택배가 저렴하다. 특히 2kg 안쪽 소형 택배가 그러하고 편의점 택배일지라도 인터넷에서 예약 후 가져가면 기계로 일일이 주소를 치지 않아도 되니 훨씬 편하다. 몇 백 원 할인을 받을 수 있는 건 작은 기쁨이다. 보통 무게로 요금을 책정하니 박스보다 비닐팩으로 포장을 하는 편을 추천한다.

중고 사이트에 가격을 올릴 때는 택포(택배 포함) 가격을 명시하는 것이 피차 편한 점도 알게 되었고 올릴 때는 사진 2~4장을 깔끔하게 찍어 등록하고 혹시라도 작은 하자나 오염된 부분이 있다면 미리 고지를 해야 뒤탈이 없다는 것도 경험을 통해 알았다.


한 번도 쓰지 않은 새 제품과 새것에 가깝지만 안 쓰던 물건, 선물 받았지만 내 취향이 아니던 숱한 물건이  주인을 찾아갔다. 물건을 문의하는 문자가 올 때마다 어찌나 설레는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잠자고 있던 물건을 꺼내 포장하고 택배를 부치러 가는 걸음걸음이 즐겁다. 좋은 기분이 몇 시간 동안 이어지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내 품에서 떠난 물건을 아쉬워하거나 다시 찾은 일은 단 한 번도 없다. 결국 없어도 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무방한 물건이었던 것이다.


좋은 추억이 깃들어 주저하는 물건이라면 보내기 전 사진을 찍어두자. 꼭 소유해야만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한 장의 사진을 보면서 사람과 시간에 얽힌 지난날을 떠올리는 것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추억을 저장하고 간혹 생각이 날 때면 비움 폴더에서 물건 사진을 클릭하면 된다. 처음에는 한두 번 사진을 보며 애틋해졌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잊힌다. 1년에 한두 번 클릭할 일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언젠가 쌓인 파일마저 번잡스러운 날이 오면 그때는 사진까지 지워버리면 그만이다.



물건의 순환으로 얻는 이득


그간 수십 개의 물건을 판매한 수익금이 100만 원을 훌쩍 넘는다. 푼돈이라도 모이기 시작하면 무시할 수 없는 쏠쏠한 금액으로 불어난다. 필요 없는 물건이 통장에 숫자로 차곡차곡 쌓이는 기쁨이 곁들여진다. 나는 이 금액으로 꼭 필요한 물건을 사는데 보태기도 하고 그대로 모아서 저축을 하기도 했다.


이런 소소한 즐거움에 한동안 신나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씁쓸한 뒷맛이 따라왔다. 이 물건을 애초에 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많은 공간을 차지할 일도, 이 물건을 되팔기 위해 사이트에 올리는 수고도, 판매를 위해 쏟는 시간을 들이지 않았겠지. 게다가 모든 중고 상품의 가격은 절대 정가와 동등할 수 없다. 미개봉 제품일지라도 중고일 뿐이다. 가격이 같다면 새 제품을 사는 편이 나을 테니.

한두 번 썼을 뿐인 상태 좋은 최상급 물건 또한 마찬가지다. 대체로 가격 경쟁력을 두어야 하므로 할인가에 올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한 마디로 제 값 못 받는다는 사실.

중고는 필연적으로 정가에 거래할 수 없다. 아무리 새제품이라도 가격 할인을 동반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지닌다. Photo by Artem Beliaikin on Unsplash


물건의 가치는 새 제품으로 매장에서 손님을 기다릴 때와는 달리 누군가에게 속하는 순간 하락한다. 유명 셀러브리티의 소장품인 경우와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오르는 희귀품은 예외겠지만 이는 전체 규모 대비 극소수이다.


판매자의 심리는 비슷하다. 버리거나 기부를 하는 것보다는 적은 가격이나마 파는 일이 경제적으로 나은 선택이다. 때론 살 때의 가격에 한참 못 미치더라도 눈물을 머금고 판매해야 한다. 충분히 잘 사용한 물건이라면 물건값만큼 가치를 느꼈을 테지만 중고로 나오는 물건은 반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처음에 이 물건을 사지 않았을 경우가 가장 경제성이 높다. 돈, 시간, 에너지, 자원 모든 측면에서 낭비인 셈.


한편 쓰지 않아서 파는 물건과 한때 그토록 갖고 싶어서 설레며 샀던 물건이 간혹 같은 운명에 처한다. 여행할 때 구매한 물건이 특히 그랬다. 한국보다 저렴한 가격, 한국에는 없는 디자인에 반했던 많은 옷과 액세서리였지만 결국 이들의 최종 목적지는 중고행이었다.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 명품이라 불리는 하이엔드 브랜드도 여럿 있었다. 캐리어에 고이 싸 들고 와 신나게 풀었던 기억이 스쳤다. 물론 잘 샀다고 생각하는 물건도 있지만 십여 년의 여행 기념품을 돌아보니 손에 꼽을 만큼 적다.


물건이 주는 설렘의 유효기간과 효용성은 생각보다 저조했다. 여행을 통해 만든 추억, 좋은 인연과 함께 했던 맛난 저녁 식사와 대화는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기쁨을 주지만 나의 소유물로 담아온 물건은 그렇지 않았다. 유행을 타거나 싫증의 대상이 되었다. 일상에서 사 들인 물건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내 품에 들어오기 전까지 한껏 욕망했던 감정이 막상 내 것이 되자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시들해졌다. 세월이 지날수록 물건 본연의 빛과 색을 잃어갔다. 결국 유한한 기쁨이었다.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내 보내기 시작하면 여러 가지 깨달음을 얻는다. 후회의 감정도, 소유를 향한 집착의 결말도 모두 물건을 매개로 내게 전해진다. 나에게서 멀어지는 물건을 보며 비싼 수업료를 치르지만 그보다 더 값진 가치가 찾아온다.

나는 비움을 통해 내게 정말 필요한 물건을 알아보는 눈과 물건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덤으로 얻었다. 앞으로 더 이상 비울 물건이 없어질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정말 더없이 홀가분한 감정이 들 때까지 비울 참이다. 번거로울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중고사이트도 주기적으로 들락거릴 예정. 언젠가 이곳을 들를 일이 없게 된다면 나는 완벽한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다는 반증이리라.


아, 한 가지 팁을 빼먹었다. 하루에도 수만 개가 넘는 물건이 거래되는 사이트다 보니 내 물건이 바로 임자를 만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어떨 땐 올린 지 한 달이 넘어 잊고 있던 옷을 문의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 번에 안 팔린다고 실망하지 말고, 며칠 시간 간격을 두고 두세 번 올려보시길(가격을 내려서 올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때는 안 팔렸던 물건이 이번에는 바로 반응이 올지도 모른다. ‘저 혹시 00 구매 가능한가요?' 반가운 알림음과 함께 말이다. 대신, 중고로 물건을 올리는 것은 결국 비우기 위한 과정이므로 무한정 기다리지 말고 기한을 두어야 한다. 일주일이면 일주일, 넉넉잡아 한 달. 이렇게 마감일을 정해두고 그때까지 팔리지 않으면 미련 없이 비울 것을 권한다. 계속 물건에 얽매이는 것보다 얼른 털어내고 시간과 공간을 다르게 활용하는 편이 현명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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