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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 휘서 Jul 16. 2020

호텔 같은 방에서 살아보고 싶다

패션 에디터에서 미니멀리스트로 가는 길


이사를 한 후 비우기를 시작했지만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마음먹기까지 2~3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이사 전에 버리지 못한 자질구레한 짐을 버렸다. 라면 두 박스 분량이 집 안에서 사라지자 기분이 좋았다. 버리지 못한 짐을 뒤늦게 해치운 느낌이라 자책감이 깔려있었지만 개운했다.


그 후 한두 달은 변화 없이 지냈다.

트인 가구가 많아 수납공간이 넉넉했던 오피스텔에서 가정집인 빌라로 오니 물건을 넣을 곳이 턱없이 부족한데도 무턱대고 가구를 사긴 싫었다. 한동안 집 안 여기저기에 박스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안방에도, 거실에도, 작은 방에도 물건이 가득 담긴 박스가 있어서 뭔가 정리가 되질 않았다. 물건에 맞춰 가구를 사 제치면 아마도 방마다 부피가 큰 가구가 들어차 답답해질 게 뻔했다.


때는 7월 중순의 한 여름, 집 안에서 움직이기만 해도 끈적끈적한 땀이 피부에 들러붙으니 정리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안방의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선풍기 바람을 하릴없이 쬐고 있다 한쪽의 박스 안 잡동사니에 물끄러미 시선이 닿았다.


‘내가 살고 싶은 방은 어떤 모습일까?’


지금의 상태가 아닌 것은 확실하게 안다. 그렇다면 내가 방에 들어섰을 때 가장 기분이 좋았던 때는 언제였을까?


문득 뇌리를 스쳐 간 장면,


‘그래, 여행지의 숙소에 처음 들어섰을 때네!’


머릿속에 그려진 광경은 오사카에서 머물렀던 한 부티크 호텔의 객실이었다. 카드키를 대고 ‘삑’ 하는 소리와 함께 묵직한 문을 안으로 밀쳤을 때의 첫인상.

환한 마룻바닥 위에 낮은 침대, 하얗게 펼쳐진 구김 없는 이불보와 베개, 그리고 차를 마실 있는 작은 탁자와 의자. TV 선반 위에는 리모컨뿐이다.

시야에 담기는 정갈한 방의 모습이다. 제일 먼저 그 객실이 떠올랐고 연이어 많은 여행지에서의 순간이 떠올랐다. 객실 문을 열었을 때를 떠올려보니 어김없이 환하게 기분이 좋았다. 왜 그랬을까?


여행이라는 상황을 제외하고 공간이 주는 특징을 떠올려본다.

‘그래, 어느 호텔이든 짐이 없었어.’

숙박의 형태가 어떻든 상관없었다. 꼭 필요한 가구만 존재할 뿐, 표면 위에 드러나는 물건이 거의 없다.

평소에 많은 물건에 둘러싸여 살다가 여행의 공간에 들어서면 우리는 0에서부터 시작한다. 짐을 풀기 전에는 자질구레한 물건이 존재하지 않는다.

시야가 닿는 곳에 물건이 없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쾌적함을 느끼는구나. 이전에는 생각해 보지 못한 점이었다. 최소한의 짐으로 떠난 여행에서도 우리는 잘 지내지 않는가. 때론 몇몇 물건은 괜히 챙겨 왔다고 번거로워하면서.

Photo by Paul Postema on Unsplash

숱한 경험을 떠올리자 그렇게 살고 싶어 졌다. 내가 꿈꾸는 침실은 그런 모습이었다. 꼭 있어야 할 가구와 물건만 있는 방, 몸과 마음이 잘 쉴 수 있도록 세팅된 방. 그러자면 방에서 많은 것을 몰아내야 했다. ‘방 한쪽을 채우고 있는 박스부터 비우자.’


그렇게 호텔 같은 방 만들기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정말 필요한 것만 남기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버려야 한다. 처음부터 착착 물건을 비우기는 쉽지 않지만 침실을 공략하지 못하면 다른 공간 또한 정복하기 힘들겠다 싶었다. 본격적인 버리기는 그때부터 탄력을 받았다.


'짐이 없는 호텔 같은 방.'

미련과 망설임이 들 때마다 내가 꿈꾸는 방의 최종 모습을 수시로 상상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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