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움의 언어에 대하여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이따금씩 이유없이 춤을 추는 사람과 취하지 않은 이상 절대 춤추지 않는 사람. 나는 후자의 사람이다. 평소 춤추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집 다른 방에서 누군가 혼자 춤을 추고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사람.
어느날 친구 세진이 말했다. 자긴 집에서 혼자 춤을 추곤 한다고. 나만 모르던, 세상의 비밀을 알게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참지 못하고 물었다. "왜… 춤 춰?" 세진은 반문했다. "이유가… 필요해?" 그리곤 주로 기쁘고 신날 때 춤을 춘다고 덧붙였다. 당시 세진이 살던 집을 떠올렸다. 종종 놀러가 하룻밤 자고 왔던 작고 하얀 그 원룸에서 혼자 방방 뛰며 춤을 추는 세진이 머릿속에 재생됐다.
세진과 헤어지고 집에 돌아온 그날밤 처음으로 혼자 춤을 춰봤다. 낯설고 어색했지만 반가운 해방감이 들었다. 그러다 거울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의 움직임은 기대 이하로 해괴망측했다. 우스꽝스러운 자신을 견딜 정도의 흥은 내게 없었고 바로 춤을 멈췄다. 새삼 세진과 내가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 깨달았을 뿐이다.
얼마 뒤 세진과 친구들을 따라 펍에 놀러갔다. 그곳은 신나면 언제든 춤을 춰도 되는 곳이었다. 춤을 추지 않는 사람들이 절반 이상이었지만 애석하게도 내 친구들은 열렬히 몸을 흔드는 쪽이었다. 나는 취하기 전까지는 절대 춤을 추지 않는 사람이고 이제 겨우 한두 모금 입만 댄 상태였지만, 춤추는 친구들 사이 홀로 뻣뻣하게 서 있는 게 더 싫었기에 의연한 척 몸을 흔들었다.
춤을 추는 내내 나의 신경은 친구들에게 가 있었다. 친구들은 테크노인지 막춤인지 알 수 없을 자유로운 몸짓을 하고 있었다. 고개도 좌우로 흔들고 무릎도 한껏 굽혔다 피면서. 말 그대로 음악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어디서 배운 동작도, 힙하거나 유려한 춤도 아니었지만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 그 자체였다. 그날 나는 춤추는 친구들을 뒤로 하고, 손에 든 칵테일 한 잔을 다 비우기도 전에 먼저 집에 갔다.
몇 년 후 나는 또 한 번 시험에 들고 만다. 명상지도자이자 모험가가 된 대학 선배를 따라 간 템플스테이에서의 일이다. 108배, 걷기 명상 등 지극히 템플스테이스러운 활동을 이어가다 해가 진 캄캄한 밤, 모두들 대웅전에 모였다. 다 같이 춤을 출 거라고 했다. 신성하고 경건해야 할 대웅전에서 감히 춤을? 오늘 처음 본 사람들과? 아니, 초면이라 차라리 다행인 건가?
민망해 할 사람들을 위해 선생님은 대웅전의 조명을 어둡게 낮췄다. 누군가의 염원이 담긴 무수한 양초를 배경으로, 세 명의 거대한 부처님 불상이 우릴 내려다 보는 그곳에서 시끄러운 음악이 틀어졌다.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들에게 선생님은 몸소 춤 시범을 보이며 소리쳤다. "다른 사람은 신경쓰지 마요! 그냥 흔들어 제껴!"
이내 누군가는 신들린 듯 몸을 흔들고 누군가는 노래에 맞춰 검지손가락을 위아래로 찔러댔다. 뻗대는 게 싫었던 나도 얼른 몸을 흔들었다. 음악이나 춤에 몰입하기는 커녕, 누구보다 또렷한 정신으로. 그렇게 춤을 추고 있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번 템플스테이를 이끌어주신 고령의 스님이 들어온 것이다. 숭한 몸짓을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그게 스님이라는 사실에 나의 정신은 더욱 더 또렷해졌다.
멀찌감치 우리를 지켜보던 스님은 다들 춤을 잘 못 추는 게 노래 때문인 것 같다며 스스로 DJ가 되셨다. 스님이 선곡한 첫 곡은 왁스의 '오빠’였다. "오빠! 나만 바라 봐! 바빠? 그렇게 바빠?" 이름 모를 오빠에게 자기만 바라볼 것을 강구하는, 내가 노랫 속 오빠라면 더욱 더 여자에게서 멀어질 것 같은, 까랑까랑한 고성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다음 선곡은 컨츄리꼬꼬 'Gimme! Gimme!’였다. 사랑을 달라고, 달라고, 달라고 왜인지 영어로 전하는 애절한 외침. 노랫말과 어울리지 않게 정신 없이 흥겹기만 한 멜로디. 그날 내내 경건한 가르침을 주셨던 스님께서 고른 음악이란 게 상기되며 웃음이 터져나올 때면 더 열심히 몸을 흔들어 제꼈다.
그날의 춤바람은 쿤달리니 명상이라는 것이었다. 자유로운 몸의 움직임을 통해 '나’라는 검열자를 잠시 내려놓고 자연스러운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 쿤달리니 명상에서 강조하는 건 몸의 움직임이 아니라 판단하지 않는 마음이다. 어떻게 보일까, 잘하고 있나, 나다운가, 같은 자의식을 내려놓는 것. 달리 말하자면, 자연스러움.
그건 내가 다시 태어나야만 가질 수 있는 무언가였다. 아니, 아마 다시 태어나도 불가능할지도. 나는 많은 것들에 능숙하지만 자연스러움에는 능숙하지 못하다. 자연스러움이란 능숙함이랑은 어떤 의미에서는 정반대다. 나의 능숙함은 나 자신을 늘 외부의 시선으로, 수십 수백 명을 대입한 실체 없는 대중의 시선으로 감시하며 쌓은 능력이기에.
몇 해가 지나고 나는 세진에게 'DANCE DANCE’란 글귀가 적힌 메시지 카드에 편지를 써 건넨다. 세진이 때때로 혼자 춤을 춘다는 것과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도 자유롭게 춤을 출 수 있는 사람임을 목격한 게 내게 하나의 지각변동 같은 일이었음을 고백하는 편지였다. 자신이 자연스러운지 아닌지도 구태여 따지지 않는 그 자연스러움이 낯설고도 부러웠다고.
우리의 겹지인들에게 묻는다면, 열이면 열 그녀보다 내가 훨씬 더 자유영혼에 가깝다고 답할 터였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보이지 않는 족쇄를 단단히 차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친구의 댄스로 그게 수면 위로 드러났을 뿐이다. 그녀의 춤과 나의 족쇄는 오래도록 내 맘에 남아있었다.
나만의 족쇄를 느끼며 지내던 어느 날, 우리집에서 하룻밤 자고 간 어느 친구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다. "너는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노랠 잘 부르더라." 신기함과 의아함이 섞인 친구의 발견이 나는 새삼스러웠다. "다들... 그러지 않아?"
꽂힌 노래가 있으면 발성을 달리해 100번은 반복해 부르고,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길 기다릴 때면 어깨까지 흔들며 흥얼거리고, 음악을 들으며 길을 걷다 나도 모르게 노래를 불러버려 다급히 목청을 줄이는 나. 음정이 틀리거나 가사를 잊어도 개의치 않는다. 주변에 누가 있든 없든 흥이 오르면 저절로 노래가 흘러나온다. 세진이 이유 없이 춤을 추듯 나는 이유 없이 노래한다.
힘들었던 하루를 서로에게 털어놓는 밤에 세진과 나는 이렇게 인사한다. "오늘 자기 전에 춤추고 자자!" 그날밤 세진의 선곡은 뭐였을까? 그게 뭐였든 꽤나 귀엽고 귀한 몸짓이었을 테다. 하루끝에 나홀로 벌이는 춤사위. 오로지 나를 위한 움직임. 세진과 인사 나눈 것과 다르게 나는 그날밤 춤을 추지 않았다. 대신 큰 소리로 노래 불렀다. 누구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춤을 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