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안고 병원에 갈 때마다 들었던 말이 있다.
“첫아이를 늦게 낳았네요?”
그 질문에 사실은 결혼을 늦게 했다고 굳이 말할 필요는 없었다. 가끔 왜 그렇게 결혼을 늦게 했느냐고 묻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딱히 할 말이 없다. 과거로부터 나의 삶을 찬찬히 살펴보면, 20대 후반에 ‘작가’로의 전업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보통 사람들처럼 직장생활을 하다가 스물아홉 살에 서울예술대학에 들어갔고, 졸업 후 늘 시간에 쫓기는 방송작가 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새 서른 중반이 돼있었다.
결혼을 앞두고 상견례를 하는 자리에서 엄마가 했던 첫마디가 아직도 생생하다.
“저는 얘가 결혼 안할 줄 알았어요.”
그때까지 결혼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엄마이기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말로는 열심히 결혼을 권했지만, 엄마의 마음 한쪽엔 딸들 중 하나쯤 결혼 안하고 살아도 괜찮다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속마음이 있었던 모양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해가 된다. 스물두 살에 결혼해 아이 여섯을 키우며 전업주부로 살아온 엄마는 ‘여자의 인생에 결혼이 미치는 영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테니까.
결혼을 일부러 늦게 한 건 아니지만 결혼을 꺼렸던 이유는 있다. 혼자 놀기 좋아하는 자아 강한 성격과 마음이 답답할 땐 어디로든 떠나야하는 역마살! 결혼 후 감당해야할 가사노동이나 시댁과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나는 이런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았고, 남자친구는 결혼 후에도 언제든 여행을 가도 된다는 확약 하에 남편이 되었다. 스페인으로 장기 여행을 떠났다 돌아온 후에 소개팅으로 만난 남편은 나의 성향을 잘 알고 있었고, 그의 성격도 누군가를 구속하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긴 고민 끝에 용기를 내었던 것 같다.
사실 결혼 후에 나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시댁의 제사나 가족모임에 참석하는 등 챙겨야할 것들이 늘어나긴 했지만,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남편은 오전에 나가 밤늦게 귀가했다. 하루 두 끼를 식당에서 해결하니 남편을 위해 저녁식사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됐다. 남편이 쉬는 날을 제외하면 나는 둘이 살지만 혼자 살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냈다. 혼자 밥 먹고, 일하고, 영화를 보거나 카페에 가고, 사람들을 만났다. 가끔은 ‘결혼했는데 이게 뭐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싱글 같은 날들이었다.
그.런.데. 임신과 출산 후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아기를 가진 후 남편의 장점들은 모두 단점이 되었다. 늦은 귀가, 갑자기 일이 생겨도 레스토랑에 매여 마음 편히 불러낼 수 없었다. 무엇보다 입덧으로 먹고 싶은 게 있어도 혼자 알아서 먹어야했다. 그래도 뱃속에 아기를 굶길 수는 없으니, 혼자서 부지런히 식당을 찾아다녔다. 가끔은 배 불룩한 임산부가 혼자 밥 먹는 모습을 측은하게 바라보는 식당 아주머니들을 만나기도 했다. 출산 후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남편이 돌아오는 늦은 밤까지 아기를 돌보는 일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시댁이나 친정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형편에서 아기를 혼자 돌보는 일은 정말 만만치 않았다.
결혼 전에 생각했던 유부녀는 일상을 적당히 구속하는 남편이 있고 시댁을 챙겨야하는 여자였던 것 같다. 하지만 아기를 낳고 나서 깨달은 사실 하나! 세상의 여자는 싱글과 유부녀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낳은 여자’와 ‘그렇지 않은 여자’로 나뉜다는 것이다.
아기를 낳기 전까지 나의 삶은 싱글과 큰 차이가 없었고,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가 알콩달콩 신혼처럼 사는 경우를 보면 대개 아이가 없다. 유부녀가 된다는 건 한 남자에게 내 미래를 거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아기엄마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그 역할을 수용할 의사가 있다는 것이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