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첫 키스, 첫 만남…수많은 첫 경험은 우리에게 약간의 두려움과 함께 설렘을 준다. 첫 임신, 첫 출산도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지만, 막달이 가까워질수록 두려움의 크기가 훨씬 커진다는 차이점이 있다. 어느 시트콤에서 유행했던 ‘화장을 책으로 배웠어요’라는 말처럼 첫 출산을 앞둔 여자가 출산에 대비할 방법은 관련 서적을 뒤적이는 것이 가장 흔한 방법이다. 물론 주변의 자매나 친구들을 통해 출산의 비화를 듣긴 하지만, 가진통과 진진통을 구분하는 방법, 진통이 올 때 취하면 좋은 자세, 통증을 줄여주는 호흡법 등은 임산부를 대상으로 한 병원의 교육프로그램이나 보건소의 출산 교육이 가장 유용했다.
나 역시 보건소의 출산 교육과 병원에서 실시하는 프로그램을 남편과 함께 들었다. 물론 남편이 함께 자리한 것은 처음 딱 한번이 고작이지만, 남편이 출산에 대해 손톱만큼의 지식이라도 알게 되었다는 것이 심리적으로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이론과 실제는 언제나 다른 법! 출산 당일 남편과 나는 책으로 배운 지식은 기억조차 나지 않았고 얼결에 아기를 낳았다. 정말 얼결에!
진통이 시작된 날은 나의 음력 생일이었다. 동생과 만나서 뷔페에서 거하게 저녁을 먹고 운동 삼아 집까지 걸어왔다. 퇴근한 남편과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를 열심히 시청하고 있을 때 배가 쌀쌀 아파왔다. 예정일이 아직 일주일이나 남아있었고, 첫 아이는 예정일보다 늦게 태어난다는 주변의 말만 믿은 채 나는 저녁을 과식한 탓에 배가 아픈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렇다고 약을 먹을 순 없으니 매실차를 한잔 진하게 타서 마시고 누웠는데 느낌이 좀 이상했다. 그때 문득, 진통은 생리통보다 더 기분 나쁘게 배가 아프다는 언니의 말이 생각났다.
‘정말 진통인가?’
남편에게 아무래도 진통인 것 같다고 말했더니 “그래? 그럼 병원엔 언제 가야되나?” 대수롭지 않게 답하고는 피곤한지 침대에 누웠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다. 나는 배를 움켜쥐고 출산가방을 확인하고,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새벽을 보냈다. 배가 아팠다가 안 아팠다가, 배운 이론대로라면 진통이 맞는 것 같은데, 진통의 간격이 문제였다. 5분 간격으로 진통이 오면 진진통이니 그때 병원에 오면 된다고 했는데, 8분이었다가 5분이었다가 들쭉날쭉이었다. ‘이러다 양수 터지는 거 아니야?’ 덜컥 겁이 났다. 자다 깨서 ‘괜찮아?’ 하고는 다시 잠이 드는 남편을 야속하게 바라볼 여유도 없이 반복되는 진통을 견뎌냈다. 그리고 아침 6시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갔다.
‘집에서 최대한 참다가 오세요.’
출산교육을 담당했던 강사의 말이 피부에 와 닿았다. 종합병원 수준을 갖춘 여성전문병원의 분만 준비실은 아수라장이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그날따라 산모가 많았다는데, 알량한 커튼 하나로 가려진 침대 너머에선 산모들의 처절한 비명과 절규가 들려왔다. 출산이 엄청 겁나진 않았는데, 막상 분만 준비실 침대에 누워 진통을 하다 보니,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불안감이 커졌다.
극심한 진통이 느껴질 때마다 남편의 손을 잡고 눈을 질끈 감았다. 진통할 때 엄마가 비명을 너무 지르면 아기가 스트레스 받는다는 말이 생각나서, 최대한 밖으로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복식호흡에 집중했다. 하지만 옆 침대 산모의 욕설과 비명은 여전히 내 귓가에 울렸다. 아! 이런 거구나…아기를 낳는다는 게 바로 이런 거였구나, 관장까지 해서 기운도 없고 뭔가 비현실적인 분위기 속에 아래로 힘이 쏠리면서 아기의 머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비싼 돈을 주고 신청한 무통주사의 효력이 나타나기도 전에 난 급하게 분만실로 옮겨졌고, 2.95kg의 남자아이를 품에 안았다.
자연분만의 좋은 점은 출산 후 3일 동안은 몸이 날아갈 듯 가볍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고 회복실로 옮겨지고 얼마 후 미역국이 포함된 식사가 나왔다. 밤새 진통을 하고 관장까지 한 터라 나는 몹시 배가 고팠고,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몰골로 미역국을 떠먹었다. 그때 남편이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원래 애 낳고 이렇게 잘 먹는 건가?”
“뭐....?”
첫 번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두 번째 강타가 날아왔다.
“다른 여자들은 힘들게 낳는다던데, 그래도 자기는 쉽게 낳은 것 같애?”
“헐~!”
정말 헐~이었다. 내가 지금 어떤 과정을 거친 후 이 밥을 먹고 있는데, 남편이라는 사람이 고생했다는 말은 못할망정 밥 잘 먹는다는 소리를 첫 마디로 던진단 말인가? 내가 지난 밤 견딘 12시간의 진통은 뭐지? 그때의 울화가 두고두고 내 가슴에 남았고, 지금까지도 아이 낳을 때 얘기가 나오면, 남편을 째려보며 어쩜 그럴 수가 있느냐고 구박하곤 한다.
세상의 남편들이여~! 제발 출산 후 아내에게 감동적인 멘트는 못하더라도 평생 욕먹을 말은 하지 말자. 그 순간에 듣는 말은 뇌 속에 깊이 각인돼 평생토록 남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