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비싼 자유의 맛

by 오명화


"나 꼭 신데렐라 같다."

외출에서 돌아와 허겁지겁 남편과 아이 돌보기를 교대할 때면 자주 했던 말이다. 밤 12시가 되면 집을 향해 전력질주하는 신데렐라처럼, 아이를 두고 일을 하러 가거나 외출을 할 때면 아이돌봄 선생님이나 남편과의 교대시간을 지키기 위해 늘 헐레벌떡 집에 돌아와야 했다.

나처럼 시댁이나 친정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엄마들은 상황이 비슷할 것이다. 일을 하러가든, 개인적인 외출이든, 혼자 나가려면 아이를 봐줄 사람을 부르기 위해 돈을 써야한다. 그뿐인가! 내 돈 내고 사람을 불렀는데도 약속한 시간에 늦기라도 하면 죄송함에 고개부터 숙여야 하는 처지, 그게 바로 아기엄마의 입장이다.

아이가 좀 자라면 사정이 달라질 줄 알았으나, 어린이집, 유치원에 가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들은 일을 하든 모임을 하든 아이가 하원 하는 시간에 맞춰 자리를 파하고, 늦지 않기 위해 헐레벌떡 뛰어가곤 한다. 오죽하면 ‘애데렐라’나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을까.


미혼일 땐 당연히 누렸던 혼자만의 자유시간이 이토록 사무치게 간절해질 줄 누가 알았단 말인가? 전에는 글을 쓰다 잘 안 풀리거나 머리가 아플 때면 그냥 밖으로 나가 무작정 걷거나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 마시며 노닥이다보면 머릿속이 정리되곤 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은 후엔 이 방법이 예전처럼 먹히지 않았다. 아들에게 점심을 먹인 후 돌보미 분께 맡긴 후 도서관이나 카페로 이동해 작업을 시작해보지만, 6시까지 돌아가야 한다는 마지노선 때문인지 시계를 들여다보는 횟수가 늘어났고, 늘 쫓기듯 작업을 하다 보니 써놓은 성과물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지금도 마찬가지다. 학교 돌봄교실에 맡겨 놓고도 늘 시간에 쫓긴다.

일하러 갈 땐 그나마 목적이 분명하니 값비싼 외출에 명분이 서지만, 지인을 만나거나 그냥 가슴이 답답해 사람을 만나거나 혼자 돌아다니고 싶을 땐 남편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자영업을 하느라 일주일에 평균 하루 정도 쉬는 남편에게 쉬는 날 아이를 보라는 건 그의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겠지만, 나는 진심으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역마살 많은 내가 하루종일 집안에서 아이와 씨름하다 보면 몸은 녹초가 되고 마음은 황폐해졌으니까.


남편은 나의 성향과 직업적 특성을 이해했고, 가능한 아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의 평균 귀가 시간은 밤 10시였고, 레스토랑이 바쁜 시즌에는 일요일조차 쉴 수 없는 처지였다. 분명 남편 또한 아이의 양육자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맡기고 외출했다 돌아온 후엔 묘한 미안함이 마음을 짓눌렀고, 아이가 잠들 때까지 아이를 돌보는 역할은 내 몫이 됐다. 차라리 돈을 주고 사람을 부르는 편이 마음 편했지만, 아이돌봄 선생님도 미리 신청하지 않으면 갑자기 올 수가 없으니, 남편과의 조율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파트 단지에서 몰려다니는 아줌마 군단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아이를 낳고 그 심정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들도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육아스트레스를 어떻게든 풀어야 할 것이고, 여자들의 스트레스 해소에 수다만큼 좋은 게 없을 테니까.


요즘에는 병원 소아과에 가면 엄마, 아빠와 온 아이들보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온 아이들이 더 많다. 그만큼 일하는 엄마들이 많다는 이야기. 솔직히 시댁이든 친정이든 도움을 받을 곳이 있는 엄마들이 부러웠다. 물론 어르신들 입장에선 또 너무 안됐다. 자식 키우느라 고생했는데 나이 들어 노쇠한 몸으로 손자까지 봐야 하니 속으로 한숨이 나올 법도 하다. 신문기사를 보니까 손주들 봐주느라 노년우울증에 시달리는 노인들이 많다는데, 엄마들이라고 그걸 왜 모르겠는가? 아기를 부모님께 맡기는 엄마들도 우울증지수가 높기는 마찬가지라고 한다.

부모님이 고생할 거 뻔히 알면서도 아이를 맡기는 이유는 비슷할 것이다. 급하게 아이를 맡겨야 할 때, 낯선 사람을 부르지 않아도 된다는 점, 결혼기념일이나 생일 같이 특별한 날 남편과 단둘이 외출해도 이해해줄 부모님이기 때문이다.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미안함 때문에 월급봉투의 일부를 용돈으로 드리지만, 받는 부모님도 봉투를 내미는 딸이나 며느리도 속으로 한숨을 쉬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연세 드신 부모님은 ‘내가 나이 들어서 뭐하는 건가’싶고, 엄마들은 ‘이렇게 아등바등 직장생활하면 뭐하나? 부모님께 용돈 팍팍 드리지도 못하고 아이한테 충실하지 못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데....’라는 후회가 찾아든다.

결국, 이러나저러나 아이 있는 여자가 자유를 누리려면 경제적이든 정신적이든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이야기. 값비싼 자유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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