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필수조건, 마인드컨트롤

아이와의 신경전에 대처하는 방법

by 오명화

아이는 정말 예쁘다. 하지만 때론 경악스럽다. 특히 아기 때 잠자는 뽀얀 얼굴은 말할 것도 없고 인형처럼 작은 손과 발을 꼬물꼬물 움직이며 웃을 땐 천사처럼 예쁘다. 그러나 이유 없이 바락바락 울며 나를 골탕 먹일 땐 세상에 이런 원수가 따로 없다. 아이가 어릴 땐 말이 안 통해서 곤란하고, 초등학교 이후가 되면, 자아가 생기면서 부모 특히 엄마와 사사건건 의견 충돌이 생기니 참 곤란하다.


육아 관련 서적을 볼 때마다 등장하는 말이 있는데, 바로 인.내.심.

아이는 부모의 인내심을 먹고 자란다는 말처럼 양육자로써의 필수 덕목은 첫째도 둘째도 인내심이다. 특히 세 살 이하의 아이는 언어 표현력이나 이해력이 부족한 탓에, 대화를 통한 통제가 불가능하다. 같은 말을 수십 번 반복해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콘센트에 손을 집어넣고 더러운 것을 입에 넣고, 불시에 엄마의 몸을 가격하고 머리카락을 움켜쥔다. 아이가 크면 좀 나아지냐고? 절대 아니다. 초등학생인 우리 아들은 요즘 나와 ‘게임시간’ 협상을 놓고, 매일 매일 난항을 겪고 있다.


옛말에 ‘아이 돌보는 일보다 밭에 나가 김을 매는 게 낫다’는 말이 왜 있겠는가? 하루의 절반 이상을 잠으로 채우는 신상아 때를 제외하면, 아이는 한시도 쉬지 않는 시한폭탄이다. 그런 아이와 24시간 같이 붙어있다 보면, 머리 위로 스팀이 오르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참다 참다 버럭! 소리를 치거나 아이를 혼내고 나면 밀려드는 후회…근데 어쩌겠니? 엄마도 사람인데~!


나도 처음에는 감정조절이 잘 안 돼서 아이에게 부르르 성질을 내고 후회한 적도 있고, 참고 참던 화가 아주 사소한 것을 빌미로 터져 부부싸움을 한 적도 있다. 연애시절과 결혼 생활을 통틀어 싸움이라는 걸 하지 않았던 우리 두 사람은 아이를 낳고 크게 싸운 적이 몇 번 있다. 모두 내가 감정조절이 안 돼 남편에게 쏘아붙이며 싸움이 시작되었다.


마인드컨트롤은 인내심과 더불어 부모의 필수 덕목이다. 엄마가 마인드컨트롤에 실패하면, 켜켜이 쌓인 스트레스가 어느 순간 터질 수밖에 없고, 그 화는 함께 사는 아이나 남편에게 갈 수밖에 없다. 결국엔 모두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아이를 재운 후든 남편에게 잠깐 맡기고 산책을 하거나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며 마음의 평화를 되찾을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시간 없이 다시 하루가 시작되면, 하루가 끝나는 느낌이 아니라 계속 돌아가는 쳇바퀴처럼 느껴지고 갈수록 힘들어진다.


내가 했던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아이가 없는 집 밖으로 나가 걷는 것이다. 걷다가 향긋한 커피도 한잔 마시고, 단 한 시간이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요가나 명상도 좋다. 아침은 늘 아이가 나보다 먼저 깨니 아이가 잠든 후 밤에 좌선을 하며 명상을 한다. 오늘 하루 아이에게 했던 행동들을 돌아보고, 잘못한 것은 반성하고 잘했던 것은 스스로 칭찬했다. 그러니 조금 나아졌다.


아이 돌본 공은 없다는 말이 있다. 여자가 아이 키우는 일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데, 그 당연한 일이 얼마나 힘든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집에서 애나 키우지'라는 말! 정말 함부로 하면 안 된다. 3인 가족이 많은 현대사회에서 부부 둘이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부부가 서로 칭찬하고, 의미부여를 하지 않으면 지혜롭게 넘어가기 힘든 산이다. 네 탓 내 탓을 하며, 육아의 분량을 서로 미루려고 하면 더욱 힘들어진다.


많은 엄마들이 남편의 피곤함을 배려하느라, 혼자 독박육아를 감당하며 속으로는 마음의 병이 들거나 남편을 원망하는 마음을 키우는 경우도 있는데,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차라리 자신의 입장과 힘듦을 입 밖으로 꺼내어 남편이 알도록 자꾸 자꾸 말하는 것이 상황을 나아지게 만든다.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이 말하지 않았던가! 아기를 갖는 것은 사랑과 섹스, 모두를 위태롭게 만든다고…. 그러나 아이는 죄가 없다. 아이를 낳은 부모가 감당해야할 책임인 거고, 그 책임은 부부가 함께 해야 한다. ‘아이는 여자가 더 잘 키우잖아?’라는 말로 자신의 육아 책임을 떠넘기는 남자들은 나중에 아이가 사춘기가 돼서 뒤늦게 후회한다.


“난 아이와 친해지고 싶은데, 애가 나를 쳐다보지도 않아. 엄마만 좋아해.”


부모와 자식이라고 해서 저절로 친밀함이 생기는 건 아니다. 어려서부터 서로 시간을 공유하고, 교감을 해야 서서히 쌓이는 것이 친밀함이고 부모자식간의 신뢰가 아닐까. 부부 공동육아는 ‘아내의 짐을 덜어주는 일’이 아니라 ‘아이 키우는 고락을 함께하는 것’이다. 부부라면 마땅히 그리해야 한다. 핑계는 그저 회피이고 무책임함을 드러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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