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생긴 후 외식에 대한 바람이 참 소박해졌다. 아이가 유아기일 땐 남편에게 ‘나가서 고기 실컷 구워먹고 싶다’는 말을 여러 번 했던 것 같다. 구운 삼겹살을 상추에 싸서 우걱우걱 먹고 싶은 충동과, 거기에 소주 한잔 원 없이 걸치고 싶은 바람은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미뤄야했다.
온가족이 외식을 하려면 조건은 더욱 까다로워진다. 아이가 어릴 땐 유모차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이어야 하고, 아이가 식당에서 약간 보채거나 울어도 널리 양해해 줄만한 주인이어야 한다. 또한 아이를 쉴 새 없이 잡아둬야 하는 좌식보다는 아기의자가 마련된 식당이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들을 모두 충족하는 식당이, 우리가 원하는 메뉴일 확률은? 별로 없다. 그래서 괜찮은 조건의 식당에서 메뉴를 포기하고 느긋한 식사를 하거나, 진짜 먹고 싶은 음식인데 조건이 안 될 땐 포장을 해 와서 먹곤 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정말 아이가 생기니 별 걸 다 못하는구나. 진정 남들도 다 이러고 산단 말이야?”
조금, 아니 많이 우울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편이 레스토랑을 한다는 것. 손님들 있는 시간을 피해 유모차를 끌고 가서 내가 식사를 하는 동안 남편이 아이를 봐주는 식으로 몇 번의 코스요리를 먹었다. 그럴 때면 외식에 대한 욕구가 조금은 누그러들었지만, 사실 우리가 외식을 하는 이유는 집을 벗어난 낯선 공간, 새로운 음식이 주는 즐거움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닐까.
어린아이가 있는 집은 거의 비슷하겠지만, 아이가 어릴 땐 외식을 위해 준비해야하는 많은 것들이 귀찮아서 그냥 적당히 끼니를 때우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문득, 이건 아니다. 엄마가 잘 먹고 기운 차려야 아이도 잘 돌보고, 남편한테 바가지도 덜 긁지 않겠어? 라는 깨달음(?)이 밀려왔다.
싱글일 때도 맛있다는 집, 꼭 먹어보고 싶은 음식은 혼자서도 잘 먹으러 다녔던 사람인지라 외부에 일이 있을 때면 리스트에 올린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곤 했다. 그리고 슬며시 웃으며 식당을 나서곤 했다. 끼니는 소중하다. 그래서 밥벌이로 하는 일은 결코 무시해선 안 된다고 노희경 작가도 말했었지. 아이를 돌보며 대충대충, 그냥 쉬고만 싶은 마음에 인스턴트나 빵쪼가리로 연명하다보면 정신도 황폐해지고, 몸도 축난다. 내가 바로 경험자다. 아이를 낳고 몇 년간 건강검진에서 영향불균형 판정을 받기도 했으니까.
육아우울증이 왜 올까? 먹고 싶은 거 마음대로 못 먹고, 가고 싶은데 마음대로 못가고, 아이에게 매어있기 때문이다. 아이엄마가 먹는 거라도 제대로 먹을 수 있게 주변 사람들이 챙겨줘야 한다. 물론 스스로 잘 챙겨먹는 것은 기본이다.
카페에 아이들을 데리고 온 엄마들을 흉보며 ‘맘충’이라는 단어를 붙인 걸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어떻게 엄마와 벌레 ‘충’자를 같이 붙일 생각을 했을까? 엄마도 사람이다. 커피 한잔 마시고 싶은 마음, 사람들과 섞여 살아가고 싶은 생각이 아이엄마가 된다고 사라질까? 물론 개념 없이 행동한 엄마들을 향한 단어라고 해도 ‘맘충’이라는 말은 들어도 들어도 상처 그 자체다. 엄마들에 이어 ‘노키즈존’으로 점철된 명백한 아이혐오까지 공공연한 대한민국에서 아이와 외식하기란 참 눈치 보이는 일이다.
이제 우리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어 어릴 때보다는 외식이 조금 수월해졌지만, 카페에 가거나 식당에 갈 때면, 아이 단속하느라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귀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는 상황은 여전하다. 그래서인지 외국에 나가면 오히려 편하다.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기다리면, 아이가 있든 없든 동등한 손님으로 인정해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아이가 무료해할까 봐 어른들끼리 온 좌석보다 더 신경써주는 것이 눈에 보인다. ‘노키즈존’은 명백한 아이혐오이고 차별이다. 어른들의 고상한 시간을 위해 아이들을 제외시키는 곳은 어디든 다시 보게 된다. 그리고 가능하면 이용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아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른이 된 사람이 있나? 그리고 카페에서 자주 작업하는 사람 입장에서 말하자면, 어른들이 훨씬 더 시끄럽고 매너 없다. 아이들은 잠깐이지만 어른들은 주구장창, 옆 좌석 눈치 같은 거 전혀 안보고 목청을 높이며 수다를 떤다. 이상한 행동으로 신경을 거스르는 사람도 어른들이 대다수다. 나에게 방해되는 사람을 제외하는 방식으로 ‘00존’을 설정한다면, 아이들보다는 성인 쪽이 될 확률이 월등히 높다. 아이와 동반한 가족들이 마음 편히 외식할 수 있는 환경과 사회분위기를 만드는 건, 특정 대상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