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에세이 외에도 아이들 책을 꽤 여러 권 썼다. 물론 단행본이 아닌 전집 형태로 출간되어 서점을 통해 널리 읽히지 않겠지만, 오랜 세월 어린이 책을 만들어온 출판사를 통해 독자들과 만났다.
아이들을 위한 책 작업이 즐거운 이유는 나도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잘못된 정보가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내가 익히 알고 있다고 믿었던 사실이나 지식도 재차 확인하게 된다. 또 어려운 문장을 이해하기 힘든 아이들을 위해서 최대한 쉬운 문장으로 표현해야 한다.
방송작가라는 직업이 다소 소모적인 글쓰기 작업인데 비해서, 책 작업은 느리지만 완성도가 느껴져 만족감이 컸다. 아이를 가진 후 출산까지 4권의 동화책 작업을 했다. 아이들을 위한 위인전과 여행시리즈였는데 쓰는 동안도 즐거웠고, 나중에 내 아이가 크면 읽어주고 싶다는 욕심 때문인지 작업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출산 후 데일리 방송프로그램을 그만두고 육아만 하다 보니 우울감이 더 컸다. 방송작가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한번 프로그램을 놓으면 언제 다시 데일리 프로그램을 맡게 될지 모른다. 다른 작가가 그 프로그램을 맡아서 잘 할 경우, 내가 다시 일을 하고 싶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갈 확률이 매우 낮다. 무엇보다 개편시즌이 아니면 일을 다시 맡기가 어렵다.
일과 자존감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내 경우엔 그렇다. 10년 넘게 해온 일을 하루아침에 못 하게 됐다는 건, 내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인데도 왠지 모르게 울적한 기분이 들게 했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게 더 열등한 게 아닌데도 왜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출산 후 호르몬 불균형으로 인한 우울증 탓일 수도 있고, 전업주부에 대한 사회적인 시각과 대우가 매우 낮았기 때문에 그런 대접을 받고 싶지 않다는 속마음이 있었던 것도 같다. 또 한편으론 다시 일을 잡지 못할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혀있었다.
출산 후 29개월 만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다시 일을 하러 방송국으로 출근하던 날의 감정은 참 복잡했다. 정말로 다시는 복직을 못 할 줄 알았는데, 감사하게도 다시 일을 하게 됐다는 마음과 아직 만 세 살도 안 된 아이를 떼어놓고 내 일을 하겠다고 달려가는 내가 이기적인가? 라는 이중적인 마음이 들었다. 그 후에도 아이가 아프거나 방송일 때문에 스케줄이 꼬여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일’과 ‘육아’ 사이에서 갈등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육아 10년 차가 되는 지금도 그 갈등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아직은 엄마의 손을 필요로 하는 초등학교 저학년이기 때문에, '엄마는 왜 학교 행사에 참여하는 일이 적은지' 아들이 물을 때면 딱히 답할 말이 없다. 엄마는 너를 사랑하지만 나 자신의 일도 소중하다는 걸 말로 이해시키는 데 한계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열심히 방송원고를 쓰고 책을 내는 이유는 아이가 컸을 때, 내가 쓴 동화책을 읽고 좋아해 주기를, 엄마가 쓴 책을 읽고 이해할 나이가 되면, 엄마의 일도 존중하게 될 거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