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해주는 밥의 위로

by 오명화

방송작가협회에서는 회원들을 대상으로 매년 건강검진을 한다. 출산한 해 건강검진을 받고 결과지가 메일로 도착했을 때,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큰 문제가 발견돼서가 아니라 영양불균형 상태라는 내용이 포함돼있었기 때문이다.

먹고 또 먹어도 허기가 차는 기분을 아이를 낳고 모유수유를 하며 알았다. 남들이 보면 밥도 못 먹고 사는 사람처럼 왜 저렇게 음식에 집착할까 싶겠지만, 아이 키우는 엄마는 늘 기운이 달린다. 특히 나 같은 고령산모는 그 정도가 심하다. 모유수유 할 때의 그 허기.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프고, 뭔가가 쑥쑥 빠져나간 듯 헛헛한 기분. 그땐 맛있는 음식은 둘째 치고, 누군가 매끼 식사를 좀 차려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최근 몇 년 사이 호캉스 바람이 불면서 엄마들이 아이와 호텔에 가서 하룻밤 묵는 데는 일상에 작은 변화를 갖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하루쯤은 남이 차려주는 밥을 먹으며 마음의 호사를 누려보고 싶은 심리도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은 남이 해주는 밥’이라는 엄마들의 표현은 진심이다.


나도 임신 5개월쯤 됐을 때 엄마가 담근 열무김치가 너무 너무 먹고 싶었다. 친정엄마는 음식 솜씨가 좋은 데다 손까지 크셔서, 음식을 늘 넉넉히 해서 나눠주곤 하신다. 특히 때마다 김치를 담가서 객지에 나가 사는 자식들에게 택배로 보내주신다. 엄마표 김치 중 가장 좋아하는 김치는 단연 열무김치. 익어서 먹어도 맛있지만 갓 담근 열무김치에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고 밥과 함께 비며 먹으면, 그 맛이 또 일품이다. 지금은 돌아가신 아빠도 익기 전의 김치를 좋아하셔서 열무김치를 새로 담근 날에는 밥 한 그릇이 뚝딱이었다.


나이 마흔이 되도록 내 손으로 김치 한번 담가본 적이 없던 나. 미안한 마음은 제쳐두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대형 김치통 몇 개에 나눠 담아야 할 만큼 많은 양의 열무김치를 담가 보내주셨다. 그걸로 국수도 말아먹고, 밥도 비벼 먹고, 찌개도 해 먹었다. 세상에서 가장 익숙한 맛. 그러나 어디서도 돈 주고 사 먹을 수 없는 맛. 그것이 바로 엄마표 음식이 아닐까?


얼마 전 김치가 똑 떨어져 마트에 주문을 했다. 배추 한 포기를 반으로 갈라 담근 김치가 만 원이 넘었다. 그동안 엄마에게 받아먹은 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도대체 얼마일까? 살림을 해보니 알겠다. 철마다 김치를 담가 자식들에게 보내는 일이 고된 노동인데, 엄마의 바지런함이 우리를 살뜰히 보살펴온 것이다. 감사하다는 말 한번 제대로 안 하고 넙죽넙죽 잘만 받아먹었는데, 내가 살림을 하며 새삼 깨달았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 마음의 크기를 말이다.


아이를 키우며 일과 살림을 함께 하다 보니, 누군가의 밥을 해 먹이는 일이 얼마나 귀찮고 고단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수십 년을 여덟 식구의 삼시세끼를 챙기는 일이 우리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말로는 사서 고생하지 말라면서 엄마의 가사노동을 너무나 당연하게 누려왔던 지난날들에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제는 남이 해주는 밥의 위로를 바라지만 말고, 내가 나이 든 엄마에게 자주 해드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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