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병동의 낮과 밤

by 오명화

제아무리 욕심 많고 이기적인 엄마라도 자식이 아플 때만큼은 아이가 최우선이 된다. 현실에 대해, 아이에 대해 가졌던 욕심과 푸념을 내려놓고 그저 아이가 아프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게 된다.

아들은 태어난 지 5일 만에 황달이 와서 조리원에서 인근 병원으로 황달지수 검사를 하러 갔다. 만약 황달이 심하면 아이를 입원시켜야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병원으로 향하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던지, 온몸이 누렇게 뜬 채 젖도 못 빨던 그 때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던 안타까움과 미안함이란….


그것으로 병원 갈 일이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 생후 10개월쯤 고열로 응급실을 방문하기 수차례…병원에선 그저 열감기 정도로 생각하고 돌려보냈지만, 큰 대학병원에 가니 요관 역류가 원인이었다. 소변을 볼 때마다 요관을 따라 소변이 역류해 신장 쪽에 염증을 일으켜 고열이 나고 아이가 아팠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응급실만 오갔던 우리는 속상함과 미안함이 교차했다.


신우신염으로 1주일간의 입원과 3개월간의 항생제 치료가 계속됐지만 역류 정도가 좋아지질 않아 결국 돌이 지나자마자 수술을 했다. 아직 말도 못하고 걸음마도 못 뗀 아이를 전신마취 할 때의 부모의 심정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 같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됐고 경과가 좋아서 요관 역류는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뻐하던 즈음, 아들의 왼쪽 눈이 심한 원시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때의 암담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왜 자꾸 우리 아이에게 이런 일들이 생기는 것일까? 엄마아빠 나이가 많아서 그런 건가?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이가 자꾸 아프면 부모는 자기 탓을 하게 된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을 생각하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16개월밖에 안된 아이에게 두꺼운 렌즈로 제작된 안경을 씌우고, 한쪽 눈에 가림패치를 붙이는 일은 자꾸 해도 익숙해지기보다 볼 때마다 속상했다. 저 예쁜 눈을 가려야 하다니…, 저렇게 안경을 쓰기 싫다는데 억지로 씌워야만 하는 부모의 심정을 아이는 모를 것이다. 낯모르는 사람들도 '아기가 안경을 썼네?"라며 쳐다보았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당시엔 그런 시선들이 아이에게 상처가 될까봐 신경이 쓰였다.


아들이 아홉 살이 되던 해 6월, 멀쩡히 저녁을 먹고 잘 놀던 아이가 배가 너무 아프다며 방바닥에 드러누웠다. '저녁을 급히 먹어 체했나?' 생각하며 일단 병원에 가보자는 마음으로 응급실에 갔다. 의료진은 맹장염이 의심된다며 엑스레이와 초음파 등을 촬영했다. 체한 줄 알았는데 아홉 살 아이가 맹장염이라니…청천벽력이었다. 당장 수술을 해야 하지만 첫 수술을 받으려면 다음날 아침 8시까지 기다려야한다고 했다. 아니면 다른 병원으로 전원을 해서 수술을 받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그 새벽에 아픈 아이와 제 정신이 아닌 상태인 내가 또 어딘가로 이동하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냥 아이가 누운 응급실 침대에 앉아서 뜬 눈으로 밤을 세고 아침 첫 수술로 아이를 들여보냈다.

1시간쯤 걸린다던 수술은 2시간이 가까워지도록 보호자대기실 모니터엔 수술완료 사인이 뜨지 않았다. 길어지는 시간만큼 나의 불안은 더욱 커졌다. 수술을 마치고 나온 아이는 너무나 아파했고, 다음날까지 금식이 이어졌다. 물을 먹고 싶다고 뭐라도 좀 달라는 아이의 눈물 앞에 내 마음도 따라 진동했다. 아이로 인해 나의 자유와 커리어를 많이 포기한다고 억울해했지만, 아이가 아플 때면 ‘내가 이 아이를 많이 사랑하는구나...’ 절실히 느끼게 된다.


부모가 된 후 경험한 대학병원의 소아병동은 그야말로 낮과 밤의 모습이 전혀 다른 곳이었다. 낮에는 어린 환자들을 찾아온 가족친지들의 방문으로 활기가 돌고 부모들도 애써 밝은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밤이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밤새워 들리는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간간히 들리는 고통스런 비명소리. 잠들지 못하는 아이를 휠체어에 태워 이리저리 서성이는 보호자들의 무거운 발걸음이 밤새 이어진다. 아픈 아이를 간병하는 엄마는 죄인처럼 아이의 온갖 생떼와 고통의 소리를 감내해낸다. 겨우 아이를 진정시킨 엄마들은 화장실에 가서 깊은 한숨을 내쉰다. 소아병동에는 아빠들도 간간히 있었지만 엄마들이 보호자로 있는 경우가 대다수다. 특히 장기입원 환아의 경우 엄마가 병실을 지키는 경우가 압도적이다.


솔직히 말하면, 대학병원의 소아병동은 경험하지 않는 것이 좋다. 누군들 그곳에 입원하고 싶어 왔겠나! 아이가 아픈 것에, 큰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에 속상해하던 마음도 태어나자마자 링거를 꽂고 있는 아이, 평생 치료를 받아야하는 병을 앓는 아이, 사소한 병인 줄 알고 입원했다가 1년이 지나도록 퇴원을 못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노라면 할 말을 잃게 된다.

요즘도 아들이 나를 짜증나게 하거나 속상하게 만들 때면 생각한다. 소아병동에서의 그 밤들을…그때 엄마로써 절실했던 내 마음을. 그러고 나면 화가 조금 누그러진다. 나를 보고 해맑게 웃어주는 아들을 보며, 자기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하게 자라고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이전 08화남이 해주는 밥의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