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프랑스 요리를 전공한 요리사다. 삼청동에서 프렌치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를 남편으로 둔 것을 부러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물론 좋다. 그의 요리는 창조적이고 맛있기 때문에 요리사로서의 그가 매력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질문은 참 난감하다.
“남편이 셰프니까, 맛있는 요리 매일 해주겠네요?”
결혼 후 수십 번은 들었던 말. 그러나 개그맨이 집에서 아내를 웃겨주지 않듯이 셰프라고 집에서 매일 요리를 하진 않는다. 오히려 요리와 설거지가 일상이다 보니, 집에서 만큼은 쉬면서 와이프가 해주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한다. 특히 식당의 운영과 요리를 동시에 해야 하는 오너셰프는 가족들과 여유자적한 시간을 보내기엔 너무 바쁘다. 솔직히 요리사와 결혼하면서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결혼 전부터 레스토랑 주방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을 충분히 지켜봤기 때문에 큰 기대는 접게 되었다.
보는 즐거움과 먹는 즐거움 모두를 만족시킨다는 프랑스요리! 그 요리를 하는 당사자들은 제때 끼니를 먹지도 못할뿐더러 소스 하나를 만드는 준비과정도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결혼 전에는 양도 적은 양식이 왜 이렇게 비싸냐고 구시렁댄 적도 있는데, 준비 과정과 서비스, 손님이 나간 이후의 정리과정에 들어가는 시간과 품이 모두 포함된 가격이라고 생각하면 그리 비싼 것도 아니다.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남편은 아이의 이유식은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 아이는 국내 최고의 입맛을 지닌 장금이가 될 거라는 농담도 했다. 물론 그 공약을 제대로 실천하진 않았다. 이유식에 필요한 재료를 손질해다가 주거나 스프를 만들어다 준 적은 있지만, 이유식 만들기는 엄마인 나의 몫이었다.
육아에 지쳐 힘들 때마다 괜히 남편 타박을 했었다. 시댁, 친정의 도움을 받는 것도 아니고 가까이 사는 형제자매가 있는 것도 아니고, 육아스트레스를 풀 대상이 남편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미안한 일이지만 당시의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폭발 직전의 감정들을 귀신한테 풀 수도 없고, 같이 사는 남편한테 하소연을 안 하면 누구한테 하란 말인지?
가끔 나의 히스테리가 폭발할 때면 남편은 나를 레스토랑으로 불렀다. 손님이 없을 때라는 조건이 붙었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건 확실히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 남편이 아이를 봐주는 동안 프랑스 코스요리를 먹고 디저트로 커피를 마실 때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분이 풀리는 거다. 음식엔 그런 힘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 챙기며 내 끼니도 제대로 못 챙겨먹는 날들이 많다보니 남편의 사정을 등안시 했던 것 같다. 아무리 자신이 선택한 직업이라고 해도 남을 위한 요리를 만들기 바빠서 정작 자신의 끼니는 제대로 못 챙겨 먹는 요리사라는 직업을 나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 피폐해져 가는 와이프에게 맛있는 것 좀 해주면 안 되냐고 타박하고는 이내 후회했다. 정작 잘 먹어야 하는 사람은 하루종일 서서 일하는 남편인데 왜 구박을 했을까? 모두 당시의 육아스트레스 때문이다.
아이의 이유식을 책임지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남편의 과거가 생각날 때면, 요리사여도 이유식을 책임지기란 참 쉽지 않음을 상기하게 된다. 그리고 10년쯤 지나니 부모가 이유식에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유식을 엄청 잘 먹던 우리 아들은 지금 입 짧은 아이가 되었고, 이유식 거부하던 다른 집 아이는 폭풍 성장하여 건강하게 자라고 있으니 말이다. 이유식에 공을 들인 것과 아이의 식성이나 성장은 대세에 큰 지장이 없다는 게 세월이 지난 후의 개인적인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