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 홀로 걷는 길

by 오명화

나이에 따라 고민도 다르다. 요즘의 나는 40대 후반으로 접어든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일과 육아의 균형을 이루며, 건강하게 나이 들어 갈 것인가, 자주 깊이 고민한다. 평균보다 늦은 나이에 결혼해 아이를 낳고 보니, 세상은 싱글로 심플하게 살아가던 때와는 많이 달라보였다. 여행길에 오르면 비로소 오명화라는 한 인간으로 돌아온 느낌을 받지만, 싱글일 때의 나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음을 안다. 온전히 홀로였던 그 시간으로.


니체가 말하길 "하루의 3분의 2를 자기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은 노예"라고 했다. 사실 아이를 낳는 순간, 여자는 아이에게 종속된 노예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엄마는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최소 6세까지는 남의 손에 맡기지 않는 이상, 자기 시간이 거의 없다. 아이가 시간과 스케줄을 좌지우지하고 엄마는 그것들을 해치우느라 급급하다.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하다 못해, 누군가 하루만이라도 아이를 봐준다면 24시간 잠만 자겠다, 훨훨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하게 된다.


육아우울증은 일상에 지나치게 밀착돼있기 때문에 생긴다. 아이 젖 주고 재우고 씻기고 또 먹이고, 제아무리 단순한 거 좋아하는 사람도 지치기 마련이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자존감도 낮아지고, 내가 이러려고 결혼하고 애 낳은 게 아닌데, 라는 우울감이 찾아든다. 이런 심리는 몸과 정신이 극도의 피로감으로 인해 그로기 상태에 빠졌을 때 생기는 일시적인 것이다. 일상과 거리를 두면, 다시 '나'로 돌아와 아이와 삶을 직시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기엄마에게 혼자만의 시간은 사치가 아니라 필수다.

제주 올레길은 홀로이고 싶은 사람에게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오로지 몸에 집중하며 길을 걷다보면, 머릿속에 엉켜있던 수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튀어나왔다가 어딘가로 사라진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불행하다면 그 이유는 뭘까. 어쩌면 스스로 게으르고 용기 없음을 아이를 핑계로 주저 앉아있는 건 아닌가?'

이런 저런 번잡스런 생각을 하다가 인적은 없고, 조용히 펼쳐진 제주의 풍광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때.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있는 지금에 집중하자.”


이상한 것은 홀로 여행에 익숙한 나인데도, 아름답고 좋은 것을 보면 아이와 남편이 생각난다는 사실이다. 몸은 떠나와 있으되 온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제는 싱글일 때의 심플하고 단호한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음을 안다. 아니 인정해야한다. 그럼에도 홀로인 시간은 나를 나답게 만들고, 스스로의 마음 한쪽을 조용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준다.


지금도 해군기지 문제로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 내가 혼자 올레길을 걷던 그때는 조용히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뉴스에 강정의 소식이 전해올 때마다 내 숨소리에 내가 놀라며 걸었던 올레길의 시간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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