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다오, 우리가 소녀였을 때

by 오명화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다. 지금은 모두 아이가 하나, 둘씩 있는 엄마들이 되었지만, 가끔 그녀들을 만날 때면 그 시절 그때로 돌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고등학교 시절 방과 후 함께 떡볶이를 먹으러 다니던 다섯 명의 친한 친구들 가운데 두 명이 현재 외국에 살고 있다. 한 명은 중국 칭다오, 한 명은 일본 도쿄에서 각자의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녀들과 카톡을 주고받던 와중에 아이들과 함께 만나자는 제안을 하게 됐고, 일사천리에 칭다오에서의 만남을 갖게 되었다. 일본 도쿄에 사는 친구 I는 딸 둘과 칭다오로 날아오고, 나는 아들과 인천공항을 통해 칭다오로 향했다. 칭다오 공항에 도착하니, 친구 Y가 딸을 데리고 마중을 나와 있었다. 우리는 흥분한 나머지 공항에서 꽤 큰 소리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화통하게 웃었다.


칭다오에 살고 있는 친구 Y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커피와 식사메뉴, 맥주까지 마실 수 있는 곳이었다. 오랜만의 만남을 기념할 맥주와 배고플 아이들을 위한 감자튀김과 음식들을 시키고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우리가 교정을 함께 누비던 고교 시절로부터 30년이 흘렀다. 아이들은 우리의 학창시절을 모르겠지만, 엄마들이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금세 친구가 되었다. 아이다운 친밀감으로 3개국에서 온 4명의 아이들은 놀 거리를 찾아가며 쉴 새 없이 놀았고, 덕분에 우리는 긴 시간의 회포를 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칭다오에 사는 친구 Y는 우리를 위해 5성급 호텔을 미리 예약해두고, 카페를 운영해야 하는 바쁜 상황에서도 바다로, 시장으로, 관광지로 우리를 태우고 다녔다. 칭다오 여행은 처음이었기에 낯선 문화와 풍경들도 좋았지만, 각자의 소녀 시절을 명징하게 기억하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 보니, 기분이 좀 묘했다.

누군가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그때의 우리는 30년 후 각자의 아이들을 데리고, 외국에서 만나게 될 줄 몰랐다. 3박 4일간의 여행을 통해 멋진 추억과 함께 각자의 삶을 응원했고, 내년엔 도쿄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실제로 그 다음 해에 우린 도쿄 디즈니랜드에서 재회했다.)


각자 사는 나라와 환경은 다르지만, 엄마 역할을 하고 있는 여자로서, 일하는 여성으로서 공감대를 형성하며 소통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참 감사했다. 앞으로도 서로의 흰머리가 늘어가는 모습, 각자의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함께 확인하면서 늙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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