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생각하며 눈을 감는다.
여전히 밖에서는 빗소리가 들린다.
밖에서 노는 상상을 하고,
즐거운 상상을 한다.
그것을 바라며 꾹꾹 참아 보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내가 이곳에 왜 있는가? 왜 갇혀 있어야 하는가?
벽을 주먹으로 쳐부수어 나가고 싶지만,
그 생각이 들 때마다, 벽을 칠 때마다,
그 벽안으로 흡수되어 버리는,
더욱 깊이 갇혀버리는
내 모습만이 보일 뿐이다.
즐거운 상상만을 하고, 빠져들지 말자.
밖에 나가고 싶다.
자유를 다시 누리고 싶다.
5월 30일, 5월도 이제 내일, 하루 남았다.
5월의 절반 이상을 자유를 뺏긴 채 지낸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역시나 나의 자유는 누군가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다.
6월 5일 법정에 다시 선다.
매일 밤, 생각하려 하지 않아도
변호사 혹은 재판관에게 말해야 하는,
말해야만 하는, 사건의 원인과 나의 뉘우침 같은 그런 것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쇼맨쉽'이 자꾸 떠오른다.
처음 잡혀온 며칠 동안은 최대한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말해주기 위해 몇 번이고 의도적으로
머릿속에서 되새기고 문장을 만들었지만,
이제는 힘들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고, 떠오를 때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말하기 싫다.
'RAGE'라는 TV프로그램에서 뮤직비디오가 흘러나온다. 주말 아침마다 나오는 음악 프로그램으로
나에게는 감을 잃지 않고, 최신 스타일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참 소중한 프로그램이다.
정신없이 글을 쓰고 있었더니, 오랜만에 음악다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TV에 귀를 세우고, 정신없이 글을 쓰고 있었더니, 잠시 내 신분을 망각했나 보다. 어느 순간 요란스럽게 울리던 죄수들의 소음이 사라지고, 적막한 것이다. 무슨 일인가 하고 밖을 보니 아무도 없고, 폴 혼자 걸레질을 하고 있다. 무슨 일인가?
다들 어딨나? 물으니 빨리 셀안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잠시 뒤였을까 교도관들이 들어와 셀안을 뒤지는 것이다. 그리고는 여기에 있으라더니 밖으로 나간다. 잠시 후 다시 폴이 들어오더니 지금 소지품
검사한다고 한다. 모두들 밖에 있나 보다. 어찌 되었건 이렇게 멍하니 혼자 있는 것은 안 좋다.
다시 밖이 시끄러워지기만을 기다린다.
와이프의 방문으로 면회를 다녀온 한이 'BAD NEWS'라며 나를 보며 말한다.
밖에 있는, 내 짐들이 걱정되었는데, 한이 마침 면회에 가게 되어, 내가 아는 사람에게 연락을 주겠다고
먼저 제안을 했었다. 나는 전화번호와 메시지를 종이에 적어 한에게 주었고, 면회 전 소지품 검사에서
그 종이가 발각되어 와이프에게 전하지 못한 것이다. 공중전화를 사용할 수 있는 한이지만 모든 통화
내용이 감청되기에, 마약으로 잡혀온 그 이기에, 다른 번호가 통화상 유출되면 또 다른 불이익이 올까
하여 전화상으로는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러한 방법을 사용했것만 발각된 것이다.
한은 나에 대한 이야기를 와이프에게 했고, 그들만의 암호로 전화번호를 전화상으로 전해 줄 테니
걱정 말라고 내게 말해주었다.
※ 라이언 : 전에 옷과 짐들 집세를 챙겨, 받아달라 부탁했는데 잘되었는지 궁금함.
※ 어머니 : 이 사실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그것이 제일 중요함. 만일 아신다면 잘 있으니 아무 걱정, 아무것도 나를 위해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정말 괜찮고 잘 있다 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만일 모르신다면 어찌 되었건 제가 직접 말씀드리고 싶으니, 그냥, 부모님께 전화 한번 드렸다 민석이가 마지막으로 무전여행을 떠나 연락이 안 될 수 있어 부모님 걱정하실까 봐 전화했다. 전해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TV에서, 오아시스(oasis)의 원더월(wonder wall)이 나온다.
"I DON'T BELIEVE THAT ANYBODY."
점심시간 LOCK 당한 철문 앞을 초조하게 왔다 갔다 한다. 그러기를 마치고, 내가 침대에 걸터앉으면,
폴이 일어나 철문 앞을, 내가 했던 것과 똑같이 밖을 바라보며 움직인다. 그러기를 몇십 분 교도관이
문을 열고 폴에게 뭔가, 보따리를 준다. 수요일에 신청했던 물품들을 받은 것이다.
나는 축하한다라는 말을 하고는 내 차례가 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린다.
시원하게 샤워하고, 깨끗하게 면도하고,
로션 바르고 싶다.
"돈이 없어 못 받는가?" 폴에게 묻는다.
"내 생각에는 너 로션 받을 수 있을 거 같다."
"나 돈 없는대, "
"걱정 마라 1주일에 몇 불치는 살 수 있다."
다시 문이 열리고, 로션하나 달랑 들어있는 봉지를 내게 건넨다.
아, 너무나도 반갑다. 시원하게 샤워하고,
몇 십일만에 면도할 수 있다.
아, 샤워를 마치고 면도를 마치고 철문이 열리고 밖으로 걸어가는 내 발걸음과 내 얼굴 표정에서 거침없이 기쁨이 나타난다. 창피함에 조금 억누르려 해도 거침없이 내뿜어지는 이 행복함에 조금은 부끄럽다.
셀을 나와 한에게 걸어가는데 무언가 이상하다. 한이 그의 셀 앞, 2층 난간에서 내가 있는 셀을 바라보며 누군가와 심각하게 대화를 나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고개만 돌려 내가 있던 셀을 바라본다.
덩치 큰 아일랜더 두 명과 폴이 우리의 셀안으로 같이 들어간다. 문이 닫히고,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다.
문이 열리고 두 아일랜더는 기쁜 표정으로 자신의 옷가지에 무언가를 감추며 나온다.
그때 락한다는 말에 나는 다시 셀안으로 돌어갔다. 무언가 이상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새로 받은
담배니 물건으로 기뻐하던 폴의 표정은 사라지고 '뻑'을 연발하며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
무슨 일이냐 왜 그러냐 물어도 아무 이야기 안 한다.
아무래도 그 두 명이 폴의 담배와 성냥을 협박하여
빼앗아간게 분명하다.
그때 한이 말해준 이야기가 생각났다. 얼마 전 린치사건으로 애보리지널 몇 명이 다른 곳으로 수감되고, 계속해서 아일랜더들만 들어온다. 세력이 그쪽으로 너무 치중되어 다른 인종들이 힘을 못쓴다.
예전에 다른 교도소에 있을 때도 이런 경우가, 한쪽 인종으로 치중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애보리지널이나 레바니스들이 들어오면 반은 죽어나가고, 반은 머리통이 터져 실려나갔다고 한다.
희한하게도 밤새, 어떻게, 누가 들어오는 것을 알고는, 아침 문이 열리자마자 상대 인종을 집단으로
린치를 가한다고 했던 말이다.
이 이야기를 오늘 아침에 들었고, 나는 화장품을 받았고, 잠시 나갔다가 다시 셀에 들어온 건 대,
바로, 폴이 지금, 그렇게 당한 것이다.
휴.. 조심하자.. 항상 조심하자..
이곳 MRRC에 처음 들어왔을 때, 데이비드가 말했듯
“말 많이 하지 말고, 듣기만 하고, 나타내 보이지
않고, 가만히만 있으면 아무 일 없다. 명심해라.”
이 말을 상기하자.
예전에 한이 이야기해 준, 교도소의 네 세력은 아시안, 애보리지널, 아일랜더, 레바니스다.
밖에 널려있는 백인들, '오지(호주)'세력은 없어 한에게 물었었다.
"오지들은 덩치도 크고 혼자서는 무게 잡고 강하게 보이지만 모래알 같은 놈들이다.
무슨 일이 생기거나 그러면 뭉치지를 않는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나 좆밥 된 거야? 나 부하 된 거야? 내가, 이 폴이...“
이 말이, 시무룩한 폴에게서 느껴진다. 휴,...
오늘 저녁 식사는 치킨 카레 파스타다. 와우, 카레치킨이다. 식기 전에 먹어야지, 와우, 맛도 좋다.
여기 와서 지금까지 매일 다른 음식이다. 천천히 꼭꼭 씹어 먹고 있는 대, 폴이 말을 건다.
"칼 있냐, 칼 있으면 좀 줘봐 그 새끼들 팍 찔러 버릴 거다."
만족한다는 표정으로 치킨을 맛있게 먹던 내 얼굴을 살짝 바꿔, ‘난 네 편이야’라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한다. "뭔 일인대, 누가 그랬는데?"
"내 담배를 가져갔다. 개새끼들...."
"왜?"
"여기는 감옥이니까!"
밤 사이에 마리화나가 들어왔나 보다. 정확히 말해, 어제 낮에 면회를 다녀온 죄수들이 가져왔나 보다.
냄새가 난다.
들여오는 방법은 면회 온, 애인의 입으로 키스를 하며 전해주고, 그것을 삼킨 후 계속해서 토해낸다고
한다. 한의 셀메이트도 다른 죄수의 협박으로 대신 면회에 가서 이 방법으로 마리화나를 삼켜 낮에
계속 토해냈다고 한다. 상당히 많은 양이 반입된 것으로 한은 추측하고 있다.
이 안에서도 마약을 한다는 게 신기한 일이고, 한편으로는 애처롭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