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 새로운 달이다.
하지만, 변한 것 없는 아침이다.
창 밖으로 보이는 시커먼 구름과
이불을 꽁꽁 동여매게 만드는 추위,
철문이 열리기만을 바라는 고정되어 버린 본능,
6월의 마지막과 7월의 첫날을 밖에서,
자유라는 녀석과 한 잔 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한에게 그동안 내가 적은 글들을 전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은 그만 쉬자 했것만 좋은 습관이라
생각하고, 다른 메모지에 적는다.
이번으로 한에게 두 번째 전해지는 글이다.
처음 그가,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을 알게 되어 보여 달라 했을 때, 대학교 다닐 때, 다큐멘터리 교수가 했던 말을 하며 살짝 거절했던 게 생각난다.
"원본을 보여주는 것은 자신의 나체를,
발가벗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미 한은 내 발가벗은 치욕스러운,
두려움에 떨던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고,
그런 내게 아무 대가 없이 도움을 주신 분이다.
글을 보자 말씀하시는 건 당연하고,
한편으로는 나를 돌아볼 수 있음에 고마움마저 느낀다. 하지만, 난 이 말씀을 드린다.
"이건 스케치 일 뿐입니다."
며칠 전부터 TV에서 영화, 터미네이터 4 예고가 끊임없이 나온다. 6월 4일 개봉이라고 한다,
나는 그 다음날 코트(법원)에 간다.
예고편에서, 크리스천 베일의 외침이 울려 퍼지고,
영화 제작 과정의 힘듦이 사뭇 느껴진다.
그래, 영화 만드는 대도 엄청난 시간과 고통과 참을성이 필요하다. 그렇게 생각하자 하며,
크리스천베일의 외침에 내 마음을 덧붙인다.
내일은 하루 종일 LOCK당해, 이 안에서 밥만 받으며 갇혀 있어야 한다. 그리 나쁘지도 좋지도 않다.
밖에 있을 때 습관처럼 내뱉던 말이다.
“어차피 시간은 간다."
폴은 내일 락 당해도 자기는 나간다며 좋아라 말한다. 이곳의 잡일, 식사를 전해주거나
청소를 하거나 하는 일들은 이곳 죄수 중 몇몇이 도맡아 한다. 그들을 '스위퍼(sweeper)'라 부르며
일주일에 몇 불을 더 받는다고 한다. 대부분 장기수로, 돈보다는, 어느 정도 자유를 갖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기에 하는 것이다. 폴은 6개월형 받았고, 보수도 안 받고,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거라고 한다.
"머, 넌 그게 어울려 잘됐어." 하고 축하해 주었다.
오늘은 한에게 내 사랑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이 많으신 분께 더군다나 이런 곳에서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고, 말하는 표현에
나 자신도 조금은 놀랬다.
"아! 그랬구나."
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게 해 주었으니 말이다.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했고, 한편으로는
잘 잊고 있었던 것을 꺼낸 게 아닌가 하며, 또 다른 감정이 자리 잡은 거 아닌가 라는 걱정마저 든다.
"왜? 가슴속 이야기를 말하고 나니 허전해?"라는 말에, "아... 그냥, 담배하나 태워야겠어요."라는 말로
대신한 것처럼, 불처럼 들어와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댄다.
하지만 이 감정,
이런 곳에서의 이 감정이 싫지만은 않다.
이곳이라, 그 감정이 나를 조금 힘들고 아쉽게 하지만, 그래도 내 마음속 한구석이 조금 따듯해 진
기분을 느끼기 때문이다.
애련하다.
이 표현이 참 맘에 든다.
저는 또 잊고 잊어 나름대로 그냥 또 지내요.
그러다 몇 년 후, 그녀에게서 연락이 오면 다시 확 타올라요. 마치 말라비틀어진 장작에 기름이 부어 저,
불꽃이 던져진 것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
확 타올라요. 그녀에 대한 나의 감정이.....
몇 시간쯤 지났을까. 몇 시일까.
나는 이미 저녁을 먹었고 가지고 있던 한국 책도 다 읽었다. TV에 맞춰 놓은 시간을 확인한다.
저녁 6시, 휴....
알아듣지도 못하는 TV소리가 더 이상 귀에 들어
오지도, 듣고 싶지도 않다. 그래, 영어 공부하는 셈 치고 어떻게 해서든 들어보자 다짐했던 마음도
온대 간대 없다. 소리도, 화면도, 알아듣지도 못하겠고, 오히려 내 마음을 더욱 힘들게 한다.
"불 꺼도 되냐?" 폴이 묻는다.
그래, 꺼라. 어두워야 생각이 좀 덜하려나. 밤인 줄 착각하게 만들어 잠이라도 청해볼까. 그렇게 멍하니
어두운 공간에 비치는 브라운관의 불빛에 몸을 억지로 맡긴 채, 한 시간을 소비했을까.
온갖 잡생각들이 다시 내 머릿속을 뒤집어 놓는다.
"내가 왜 여기에 있지? 있어야 하지?"
밖의 내 짐, 내 옷들, 그 옷 한 번도 안 입은 비싼 건대, 잘 챙겼을까? 그 옷 입고 어디 가려고 했는데,
한국에서도 입어야 하는데, 밖에 있었다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영화 보고 있을까? 아니야, 이곳 아닌, 밖에 있으면 나는 그저 그런 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며 별 변화 없이 한국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그렇게 별 변화 없이, 한국에 갔을 거야. 이곳에서 무언가 깊이 느끼고 알게 되어 한국에 돌아가는 게
나에겐 더욱 좋은 것일 거야....
깊이 멀리 보자는 마지막 상념에 젖었지만 그것마저도 지금 내 상태를 위로할 수 없다. 안 되겠다.
안 피는거, 너무나도 독해 어지러워 미치겠는,
담배라도 태워야겠다. 불키기도 싫다. 뒤적뒤적,
어둠을 뚫으려 브라운관 불빛에 의존해 담배를 찾아 만다. 그리고 잠시, 폴은 뭐 하나 하며, 바라본다.
그는 푸른 눈을 껌벅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뭐 하냐.. 뭘 보고 있냐.." 내가 묻자.
"그냥, 생각하고 있다. 자기는 여기 있고, 와이프는 밖에 있다. 무슨 짓을,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
낮에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는다. 어둠에 맡겨 눈을 감고, 잠을 자도, 눈을 뜨면, 다시 이곳이다."
나도 말한다. "생각하기 싫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 온갖 생각들이 나를 괴롭힌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브라운관 불빛에 위로받으려 때로는, 공격받으며 아무 말 없이 담배를
태운다. 연기처럼 날아가 버리고 싶다.
휴~
불을 켠 것이 낫다. 앞의 사물이라도, 이 시멘트 벽이라도, 바로 앞이라도 환하게 볼 수 있으니....
하지만, 불은 꺼지겠고 나는 그렇게,.
어렵게 뒤척이며 잠들겠지, 그리고 운이 좋으면 꿈을 꾸며 자유를 맛보겠지. 그리고 다시 눈을 뜨면 이곳이고 그렇게 반복되는 하루하루의 감옥살이를 하는 거다. 변함없이 똑같은 괴로움의 반복
그렇게 내속은 새카맣게 타들어가겠지.
내 얼굴도 시커메지겠지
한숨 소리만이 이 어둠에 살아있음을 증명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