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호주감옥에서

by unwritten



어제 꿈에 여동생이 나왔다.

잠에서 눈을 뜨니, 10시 30분이었다.

"젠장, 지각이다.. 어떡하지... 지금 가봤자 지각이니, 혼날 테고, 차라리 학교를 가지 말자. 아프다고 하자.

감기 걸려서 아프다고 학교에 말하자."

하고는 동생에게 말했다.

여동생은 "이제서야 아파서 못 간다고 말하면 거짓말인 줄 다 안다. 그냥 지금 학교 가라." 말한다.



"나는 하나님 품에 있는 사람이야.

하나님이 알아서 인도하실 거야."


내 몸이 아파도, 나는 하나님 품에 안겨 있는 사람이야. 가난해도, 눈앞이 캄캄하다 해도,

나는 하나님 품에 안겨서 광야를 지나가는 중이야.

하나님이 모세를 한평생 지키시고 광야 생활에 승리하게 하신 것처럼, 내 인생도 승리하게 해 주실 거야.

내 영혼아 담대하라. 두려워 말고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며,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자. 그게 사는 길이야. 그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야.

내 영혼아 두려워 말라.

너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로다.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다. 새벽의 추위가 언제였냐는 듯, 기분 좋은 햇살이 비쳐지는 콘크리트 바닥,

많은 죄수들이 새벽의 추위에 고생을 하였는지 예전과는 다른 햇빛의 감사함을 찬양이라도 하는 듯,

조용히 태양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좁은 운동장을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사람도,

여기저기서 짧게나마 운동하는 사람도 없이,

그저 태양의 따스함을 행복이라 생각하며

슬픈 표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말 나쁜 짓을 해서 온 사람도 있을 것이요.

사고로 인해, 실수로 인해 온 사람도 있을 것이요.

억울하게 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누가, 자유를 박탈당해 한낮의 태양만이 따스함을 주는 유일한 존재라 생각했겠는가?

모두들 힘들 것이다. 이곳에 있다는 것 자체로...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과 행복이 전해지기를 바란다.


무거운 내 마음을 추스를 수 없다.

그동안의 내 호주 생활....

27에 와서 29를 먹어버리게 만든 호주생활,

고생도 많이 했고, 즐거움도 맛보았고, 한국에 돌아가 풀어놓을 가득 담긴 이야기 보따리와 근사한 계획들이 한순간의 실수로 이렇게 날아가 버리는 것인가?

2년을 참고 참으며 기다려온 순간을

이렇게 날려 버리는 것인가?

8월에 한국에 들어가. 그동안의 기록을 편집해,

완성하여 사회에 멋지게 등장하려 했다. 이 생각들,

이 계획들이 더욱더 내 마음을 찌져 버리고 있다.

해결 방법은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단지 저러한 생각들이 내 몸뚱어리를, 정신을 갉아먹고 있을 뿐이다. 얼마나 더 있어야 하나, 얼마나 더

있어야 하나, 하나님 말씀을 간신히 읽고 간신히 의지하지만, 그 순간일 뿐. 마음 추스르기가 쉽지 않다.

진실로 정신치료를 받고 싶다. 이렇게 분열되어 미쳐가는 것인가. 내가 지금 가는 길이, 이 상태가 나를 점점 없애 버리고, 이상하게 만들어 간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헤어 나올 수가 없다. 이 현실이 눈에 보임에, 내 정신 상태가 눈에 보임에도 어찌할 수가 없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다.여자가 그리워서, 맛있는 음식이 그리워서, 자유가 그리워서가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립다.

"내가 그랬었다면... 이랬었다면..."이라는 생각 자체가 유아적이며 시간낭비라 여겨, 들지도 않던 생각이 오늘 하루 종일 든다. " 그가, 그때, 그랬었다면,

내가, 그때, 이랬었다면..."


'SUMMER TIME (JANIS JOPLIN)'이라는 노래....


진술하면 진술할수록,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꾸 나를 속이는 것 같아 힘들다. 점점, 나는, 나쁜 놈,

죄인이야,라는 생각들이 나를 잡아먹고 있다. 아닌데, "실수인대..." "사고인대..."

처음에 나는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몰라, 힘들었지만,

이제는 얼마나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 몰라 힘들다.

맛있게, 정성껏, 온갖 재료들을 넣어 끊인 라면이 완성되어, 흥겹게 콧노래 부르며 냄비를 집고 탁자로

옮기는 순간, 잘못 헛디디는 발에, 넘어져,

라면이 땅바닥에 내팽겨졌을 때... 그때처럼,

나의 계획과 나의 꿈과 나의 생각들이 사방팔방 흩어져 버렸다. 저 소중한 것들을 버려야 하나....

다시 주워 모아야 하나...

알면서도 계속 주워 모으고 있다.


이것이 내 현실이며, 지금 내 정신 상태다.

주워 모아도, 먹지 못하는 것들.... 씨발.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넘어지는 자요 가시 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기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13장 19~23절.



예수님은 충분히 세례요한의 복수를 할 수 있었다.

헤롯왕에게, 하지만 예수님은 다른 길을 가셨다.

그곳에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고도 남기는 기적을 행하셨다.

즉, 대를 위해 사사로운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다.


전부 개방하는 것은 현명한 게 아닌, 어리석은 것이다. 나 자신을 다스리자.


불을 끄고, 추운 새벽을 위해 양말을 신고,

옷을 몇 개 더 껴 입고, 잠을 청하려 TV를 껐다.

밑에서 자던 셀메이트가 일어나 TV를 켠다.

그리고 불을 켠다.

라이스 쿠커를 닦고, 양파와 소시지를 꺼내 썬다.

나는 묻는다.

“너 지금 요리할 거냐?"

"어, 왜, 뭔 문제 있냐?"

"조금 시간이 늦지 않았냐?"

"몇 시나 됐는데? 지금 몇 신대?"

갑자기 눈을 부라리며 쌍욕을 내게 퍼붓는다.

하나도 긴장되지 않았다. 단지 한, 생각만이 들었다. "시험이다. 참자."

눈을 부라리며 쌍욕으로 모자랏는지, 내 멱살을 잡고 한 손은 주먹을 쥔 채 욕을 섞어가며,

"싫으면 꺼져라. 다른 셀로 옮겨라.

너 같은 새끼 꺼져라"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그랬을까.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웃겼다.

"나는 단지 물어본 거다. 왜 화를 내나?"

녀석도 할 말이 없었는지 그저 욕지거리만 해댄다.

아무렇지도 않고, 오히려 무언가 다시,

한 꺼풀 벗겨진 듯한 자극을 주었다.

어차피 셀은 옮기려 했고,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이 글을 쓰는 사이, 그새 밥도 다 하고, 소시지와 양파도 다 익어, 꾸역꾸역 먹고 있다. 저 녀석 신기한 건,

무엇을 먹을 때, 아무 소리를 내지 않고,

아주 조용히 먹는다는 것이다. 그래, 너도 어린 나이에 이곳에 들어와 얼마나 힘들겠니. 건강히 잘 지내고,

밖에 나가서 잘 살고, 나쁜 짓 하지 마라. 드럭딜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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