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CKSON HAS DIE."
일을 하러 일터에 나가 소일거리를 하는, 그곳,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마이클 잭슨이 죽었다.
잭슨은 죽고, 나는 B클래스이기에 더 이상 일도 못하고, 유진이 형과 같이 3 윙으로 가지도 못한다.
“유진이 형은 신났다.”
오늘 오전에, 교도소 오기 전에 다닌, 교회 사람들이 면회를 왔기에, 샤워도 하고, 머리에 젤도 바르고,
[교도소에서 머리에 바르라고, 헤어 젤을 팔지는 않는다. 남자들만 바글바글 거리는 교도소지만, 이곳에는 각 윙마다 콘돔박스가 있다. 그 콘돔에 들어있는 윤활제? 같은 미끄덩 거리는 액체를 젤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한껏 멋을 내고, 신나게 들뜬 마음으로 면회를 다녀와서. 아주 신났다.
"크런치 먹고, 초콜릿 먹고, 매콤한 칩도 먹고, 콜라도 마셨다!"
지구를 돌리기 위해 시간을 돌리기 위해, 빙글빙글 돌며 그리 자랑하는 유진이 형.
"쯧쯧쯧, 형, 뽕빨, 도졌네요."
"뽕뽕 뽕뽕, 뽕이 왔어요." 뽕 이야기만 꺼내면, 과거 뽕에 얽힌 이야기가 주구장창 쏟아져 나온다.
그러면서, "오, 하나님 용서해 주시옵소서. 야, 너 뽕이야기 하지 마. 간신히 잊어버리고
하나님 말씀으로 이겨 내었는데..."
"아, 형 전 그냥 뽕하고 말할 뿐, 형이 그냥 주르르 나오잖아요."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났다. 형식적으로 내일 유진이 형과의 마지막 날이다.
참 많이도 받았다. 유진이 형에게, 고마워요. 형.
한 선생님께 보낼 편지도 전부 편지지에 옮겨 적었고, 세수도 했다. 이제 저녁 락을 당했고,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났다.
시간은 빨리 흐르고, 나의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계시고, 나의 머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고 기억하려
한다. 내 손은 글을 쓰고, 내 발은 지구를 회전시킨다. 내 눈은 사물을, 사건을 정확히 보려 떠져있고,
내 믿음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요. 뜻이라 확고하게 믿는다.
다시금 집주인에게 전화를 했다. 사실하기 싫었다. 하기 싫어, 또다시 합리화를 시키며 나를 괴롭혔었다. 집주인과 그 상대방은 간단히 끝날 줄 알았다고 한다. "최고 25년이에요."라는 말에 놀라며 잘 말해주겠다는 응답을 듣고는, "교회 다니세요? 기도해 주세요." 하며,
삐삐 소리와 함께 나 홀로 몇 십 초간 떠들고 있었다.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 잠언 28장 26절.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할 때,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망설임이 찾아왔을 때, 무엇이 나를 위한 선택인가.
어떤 마음이 나를 위한 마음인가 하며 고민했었다. 결국 택한 것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어두운 느낌의 본능이었고, 그때마다, "그래, 한번뿐인 인생, 그리고 지금 아니면 못한다. 안 하고 후회하지 말고, 해보고 판단하자. 지금 아니면 못한다. 할 때 하자." 하며 나를 타이르며,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는
육체의 쾌락을 위한 행위를 서슴없이, 거침없이 해오고, 찾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 옳은 판단이 아니요. 절대, 나 자신에게 좋은 판단이 아니요. 절대, 그것은 후회하지 않는 행위가 아닌, 최악의 길, 죄악의 길로 나를 이끄는 어리석고 악한, 엉터리 생각과 행동이었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로마서 14장 22절.
교만하고, 어리석은 나 자신의 생각으로 선택하지 않겠다. 모든 선택과 결정을 하나님의 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해나가겠다. 나는 정말 어리석은 존재였다.
마늘을 쓸고 햄을 쓸고 저녁 준비에 바쁘다. 오늘 저녁 메뉴는 베이컨 양파 소시지 볶음밥. 이런 유진이 형 덕에 오늘에서야 똥 다운 똥을 쌌다. 교도소 안에 독한 마늘 냄새와 함께 나의 고약한 똥냄새가 풍겼다.
똥냄새가 독할수록 내 육신과 마음은 안정을 찾는 것이다.
고마워 유진이 형. 고맙습니다 한 선생님, 감사드리며 영광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나는 그런 아이였다.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지저분해서가 아닌, 그저 부끄러워 똥을 못 싸는, 그런 아이였다. 가족과 여행 후 똥이 마렵지만, 모르는 곳에서 똥 누는 게 그렇게 부끄러워, 참고참고참고, 집으로 뛰어가며, 결국 집 앞에서 똥을 싸버리고 울던, 유치원 시절의 그런, 나는 그런 아이였다.]
어두운 방안, 한 남자가 침대에 누워있다. 그 남자의 눈이 크게 화면에 잡힘과 동시 인상을 쓰는 그의 미간이 보인다. 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와 보이는 시계, 컴퓨터의 웅웅 거림과 보이는 컴퓨터, 바르게
누워있던 자세에서 다리를 오므리며 옆으로 돌아 눕는 남자의 신경질적인 움직임 소리.
다시금, 인상 쓰이는 미간과 마른 입술을 신경질적으로 적시는 혀, 감겨 있지만 자꾸만 움직이는 눈동자. 잠은 깨었고, 더 자고 싶고, 무언가 망설이는 듯한 표정, 좌변기와 오줌 누는 시원한 소리,
다시금, 신경질적으로 재빠르게 반대 방향으로 돌아 눕는 남자, 그의 뒷모습에서 서서히 뒤로 빠지는,
카메라.
이 남자는 고민한다. 이 따듯한 이불 안에서 빠져나가, 오줌을 누고 다시 올 것인지,
"나가기 싫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짜증 난다. 차가운 공기가 자신의 몸에 깃들게 되어, 간신히 붙잡고 있는, 잠이라는 것이 도망가버리게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고통스럽다. 팽창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신장이, 간신히 붙잡고 있는 잠이라는 것을 서서히, 내쫓아 버리고 있다. 다시, 미간에 힘을 주고, 마른 입술에 침을 묻히며, 그 고통을 잊어 보려 애쓴다.
어느 순간 그 고통은 잊혀지고 다시금 잠이라는 녀석을 달래어 데려온다 싶은 안심이 들 때, 살짝
움직여지는 다리의 미동 혹은 내, 내장의 규칙적이며 간헐적인 움직임에 약간의 자극으로 다시 느껴지는 이 터질 듯 한 신장의 절규, 잠을 버리고, 이 이물질을 내버리기 위해, 간신히 따듯한 침대 이불을 박차고, 차디찬 공기를 몸으로 마시며 걸어 나갈 것인가? 고통을 잊어버리려 애써 자기 최면하며, 그렇게 이도저도 아닌, 단지 따듯함만을 보존할 것인가? 이 양갈래에 서있는 고민 끝의 선택과 그 선택에 따른, 다른
결과들, 추위를 맞닥뜨려 잠이라는, 녀석은 도망쳤지만, 귀찮아 눈도 뜨지 않은 채, 발사되는 오줌은
내 신장의 고통을 없애주고, 상쾌한 마음으로 다시금 침대에 눕게 해 준다. 하지만 당연지사, 잠은
오지 않고 차가운 기운이 온몸에 맴돌아 그다지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하지만 나를 괴롭히던 아랫배의
불쾌함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저, 자기 최면에 고통을 잠시 잊어본다. 이 고통과 따듯함 그리고 살짝살짝 다가오는,
달콤한 잠이라는 녀석을 맛본다. 하지만, 이 상태는 불안하다. 잠이라는 녀석은 아랫배의 고통에 들쑥날쑥하며, 그 고통은 나를 아주 불쾌하게 하며 정신을 번쩍번쩍 들게 만든다. 하지만 그래도 내 몸에는 이
따스하디 따스한 공기들이 내 피부를 부드럽게 감싸 주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은 커지고
따스함마저 짜증으로 변한다. 결국엔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아무것도 지키지 못한 채,
고통만을 버리는 것으로 만족한 듯 배출한다.
고통이 접근했을 때는 바로 그 고통을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순간의 달콤함에 망설이거나 지체할
경우 그것은 너에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시간의 낭비만을 제공하고 결과적으로 더 큰 고통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고통이 다가오면 재빨리 해결한 후,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금 따스함이, 다시금 달콤함이, 오기를 편안히 기다려라. 그것이 다시 온다는 것은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모두들 알고 있는 것이다.
순간의 즐거움, 순간의 망설임으로 지나온 길을 다시 가지 말자.
빨리 파악하고, 빨리 결정하는 것이 너에게 좋은 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