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일, 호주감옥에서

by unwritten



6월 29일.


아침 일찍 유진이 형이 떠났다.

유진이 형은 내게 많은 것을 주었다.

반면 내가 유진이 형에게 준 것은 하나도 없다.

차디찬 셀안이 더욱더 차게 느껴지며,

그 추위가 내 가슴속으로 아무 여과 없이 다가온다.

아무리 TV소리를 높여봐도 아무리 책을 쳐다봐도 어디에도 유진이 형의 목소리와 모습은 볼 수 없다.

그저, 난 이 감옥에서 다시금 시작해야 한다.

오랜만에 감옥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사실 그전까지는 감옥 같다는 기분을

애써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다시 감옥 안에 갇혔다.



우선 이런 사고를 일으키게 됨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저는 2007년 11월에 호주에 오게 되어.....



아침에 3 윙으로 사람들이 대거 이동 후, 밖에 나왔다. 전날부터 생각했고, 한 선생님의 편지에 힘을 얻어

내 사건에 대한, 진실을 써야겠다는 생각에,

차가운 셀안에서 견딜 수 없음에,

견뎌 보고자 글을 쓴다.

문이 열려 밖에 나와 글을 마쳤다.


역시, 맨 처음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미쳐버리는 나

자신에 대한, 토해내어 방지하기 위한,

단 하나의 목적이었 듯, 이러한 이야기를 글로나마

토해내니 한결 가벼운 마음이 든다.

6 윙의 사람이 3 윙으로 대거 이동했으매, 아무 변화 없는 어제와 같은 오늘이다. 나는 유진이형을 보내어, 그 한 명을 보내어 이리 마음이 우울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일 이기에 다른 사람들은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은 돌아가는 것이다.

오후에 오피서(officer)에게 준태와 같이 방을 쓰고

싶다 말할 것이다. 같은 한국인이기에 좋지만,

더 큰 이유는, 둘이 같이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성경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다시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은 이곳에서 준태를 만나 그가 건네준 조그만 신약성경 때문이었으니,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거다. 아멘.

한결 가벼워진 마음에, 생각보다 금방 나갈 것 같다는 생각이 조금씩 자라난다. 하지만, 나는 애써 밟는다. 그것이 더 큰 아픔으로 내게 올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단지, 하나님을 믿고, 스스로, 최소한의,

최대한의 노력하는 길 밖에 없다. 판단하지 않으리.

판단은 하나님께서 하시니.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를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장 13절.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혼자 있게 되었다. 고린도전서를 마저 읽어 내려갔다. 무언가 기도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콘크리트 바닥에 종이 하나를 깔고는 무릎 꿇고 기도드렸다. 기도를 드리며,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였다. 은혜로웠고, 영광스러웠다. 그 무엇보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뼛속 깊이, 마음속 깊이 사무쳐 눈물이 흘러내렸다. 죄송하고, 죄송하여,

하나님 사랑 앞에 죄송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저 눈물 흘리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렸다. 그리고,

나는 한 선생님께 보낼 편지를 쓴다. 편지 내용은 없다.

성경 '시편 119편'을 자필로 옮겨 보낼 것이다.

그렇게 시작하고 싶다.


'미쉘 페르난도' 변호사 이름이다.

몇 번이고 가는 비디오 링크이지만, 매번 힘들다.

이것이 바로 한 선생님이 말씀하신 '메아리'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철창에 하루 종일 갇혀, 단 몇 분의 변호사와 통화 후, 재판관 앞에서 죄인이 되어

서있는 그 기분, 그 자체가 "나는 죄인이다."라는 것임에 괴로운 것이다. 그것이 힘들어 더 이상 그러한 일을 겪기 싫어, 지쳐버려, 모든 걸 인정하고

그렇게 헤어 나올 수 없는 거래를 하는 것이다.

변호사에게 묻고 싶은 네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그녀의 이름,

둘째는 얼마나 있어야 할 것 같은지,

셋째는 7월 7일 코트에 가는 것인지,

넷째는 어느 시점에서 죄를 인정해야 25% 바겐(bargain)을 받을 수 있는지,

첫 번째 질문은 통역관이 변호사 미쉘 페르난도와 연결되었다 말하여 자동으로 알게 되었고,

네 번째 질문은, 그녀의 계획은 일단 무죄를 주장하다 검찰 측과 협상하여 심각한 죄인, 고의적으로

다치게 하였다는 것을 취소한 후, 사고로 다쳤다는 것을 인정할 생각이라 하였고, 25% 바겐은 로컬 코트(local court) 즉, 지금의 지방법원에 있을 때 인정하면 된다 하였다. 그것이 애초의 내 생각이기에 고맙다는 말로 질문을 마무리하였고, 세 번째 질문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고, 두 번째 질문은 차마 묻지 못하고, 볼펜으로 낙서만 하였다. 그리고는 7월 14일로 재판이 연기되었다. 변호사 미쉘을 비디오링크로 두 번 보았고, 오늘 한번 통역관을 통해 전화 통화를 하였다. 직접보지 못해 머라 말할 수는 없지만, 젊은 여성 변호사로 지기 싫어하는 성격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 그녀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님이 좋은 결과 주시리라 믿는다. 하지만, 노력해야만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이자 최대한인 기도를 드리며 노력하니 당신도 조금의 노력을 해주면 고맙겠다."

이 말을 끝으로 나는 다시 감옥으로 돌아왔다.


비디오링크를 기다리기 위해 구치소에 있는대, 매일 보던 중국인 아저씨가 어두운 표정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감옥에 다시 돌아와, 그 아저씨와 친한 중국인 아저씨에게 "당신 친구를 아까 보았다. 아무래도 다른 교도소로 가나보다." 하였더니, 웃으면서 "그 친구 오늘 집에 가는 날이다. 14년 동안 감옥에 있다가, 오늘 나갔다, 그는 빅드럭 딜러다. " 말한다.


“그런데, 왜, 그렇게 우울한 표정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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