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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영 Feb 26. 2020

뮤지컬 폴, 어둠이 무서운 밤

반짝임과 어둠이 만나는 그날


뮤지컬 폴은 아르코-한예종 뮤지컬 창작 아카데미에서 개발되어  2017 쇼케이스를 통해 선보인 , 아쉽게도 번번이 공연을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던 작품이었다. 그러다 2018 텀블벅 후원을 통해 관객들을 만날  있는 기회를 얻었고,   2020, 올해 1월부터 2월까지  달간 콘텐츠 그라운드에서 재연까지   있었던, 작품 자체가 드라마 같은 서사를 가지고 있는 극이다.


호평이 많았던 작품이었기에, 나도 공연을 보기  기대를 많이 했었다. 마침 시간이  맞아, 운이 좋게도 관객과의 대화가 있는  극을 관람했다. 공연을 보면서는, 사실 조금 실망했다. 매우 슬프고 아픈 내용이지만 예쁘게 연출하려고  부분들이 많이 보여서, 처절한 비극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에는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폴의 삼연이 오기를 고대한다.  작품은 분명히 상처를 치유해주는 따뜻함이 있는 극이다.


*이어지는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기쁨과 분노, 행복과 외로움, 편안과 두려움
2020. 01. 30. 뮤지컬 폴 캐스팅보드


폴의 기본적인 스토리는 이렇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학대를 받아온 소년이, 어둠을 이겨내기 위해 친구들을 만들어 다중인격자가 되었고, 그 친구들과 집에서 도망쳐 나와 도시와 멀리 떨어진 외딴곳의 폐허에서 지내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낸 지 1년째 되던 날, 그들처럼 도시에서 떠나온 사람이 그 집에 찾아오고, 소년을 만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폴의 인격인 루시, 기욤, 니콜라이는, 모두 폴이 피하고 싶어 하는 것들로부터 폴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루시는 어둠, 기욤 두려움, 니콜라이는 외로움으로부터 폴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한다. 대장인 루시는 항상 강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폴을 감싸주고, 기욤은 폴을 지키기 위해 화를 내고 자신들을 방해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해친다. 그리고 니콜라이는 고독할 때 춤을 춘다는 웃음이 나는 설정이지만, 오랜 시간 외로웠던 폴에게 그걸 견디는 법을 알려주는 캐릭터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극의 후반부에서 그 역시 하나의 인격이었음이 밝혀지는 폴은, 그 모든 것으로부터 존을 지키기 위해, 존이 아무것도 모르는 채 살 수 있도록 만들어진 대역이었다.


존이 슬픔, 분노, 두려움, 외로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모두 받아들이고, 자신이 그런 감정들을 느낄 수 있기에 행복, 기쁨, 편안함의 소중함 또한 알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모든 인격들이 떠나게 된다고 생각했다. 이제 존은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으니, 그것들로부터 존을 지켜주던 인격들이 가방을 가지고 떠나는 것이라고. 허연정 연출의 말에 따르면, 모두가 버릴 수 없는 인생의 짐을 들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나도 외로움에 지쳤던 적이 있다. 지쳐 쓰러지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바로 서고, 또 달리려고 했던 적이 있다. 그때의 나는, 내가 한 명 더 있어서, 나를 안아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아무도 나를 안아줄 수 없으니 내가 두 명이라도 되었으면 했던 그 바람이 어느 선을 넘게 되면, 폴과 같이 극단적인 해리장애까지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폴과 루시, 기욤, 니콜라이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루시가 해준 말에 더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지금보다 우린 더 행복할 거야


좋은 작품이었지만, 대본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공연을 보았다. 사실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개연성이 조금 부족해도, 서사가 탄탄하지 않더라도, 연출이 좋고 넘버가 좋으면 모두 다 무시하고 만족하며 볼 수 있는 장르이기는 하다. 작품에서 설명해주지 않는 부분은 배우들의 연기를 보며 관객들이 상상해서 채워 넣을 때도 많다. 그러나 이 작품 속의 '왓슨'이라는 캐릭터는, 그렇게 상상으로 채울 수조차 없을 정도로 서사가 없고 장면이 뚝뚝 끊긴다.


그가 아이를 어떻게 잃게 된 건지, 어둠을 왜 그렇게 무서워하게 된 건지, 어디에서 그렇게 도망친 건지, 포춘쿠키에는 어쩌다 그렇게 집착하게 된 건지, 그 집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폴의 어떤 면을 보고 자신의 아이를 떠올렸는지, 왓슨에 대해 궁금한 점이 이렇게나 많은데 무엇 하나 제대로 대답을 해주는 장면도 넘버도 없다. 아무런 설명 없이 나왔다 들어갔다 웃었다 울었다를 반복하니, 자칫하면 그저 우스꽝스럽게만 보일 수 있는, 이 작품에서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캐릭터라고 생각된다.


물론 믿고 보는 이현진 배우가 너무나 잘해주어 폴을 보며 하는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와 닿았지만, 대본이 왓슨을 표현하기에 너무 부족했다. 이렇게 훌륭한 캐릭터를 만들고서, 왜 활용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계속 들었다. 좋은 여성 캐릭터가 드문 공연계에서, 왓슨이 그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더 아쉬운 마음이다. 삼연에서는 왓슨을 조금 더 다듬어서 와준다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하나 더, 사실은 폴도 하나의 인격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는 장면의 임팩트가 너무 약했다. 이 작품 전체에서 가장 힘이 들어가야 하는 씬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너무 쉽게 넘어가서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극적인 요소를 저렇게 잔잔하게 풀어내다니, 더 세게 가도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아쉬웠다. 동화라고 생각해달라는 연출진과 배우들에게 미안하게도 내가 너무 상업적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극의 셀링 포인트를 확실하게 주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아픔이 스며들지 않게, 조금 더 단단하게


이렇게 아쉬운 생각을 가지고 극을 보다가, 공연의 마지막에서 인격들이 사라지며 하는 대사에 이 아쉬움들이 다 잊힐 만큼 마음이 따뜻해졌다. 화내고 싶으면 화내도 돼. 너무 슬플 땐, 소리 내서 울어버려. 이 대사에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특히 그 대사를 하는 루시 역의 송영미 배우가, 객석의 관객들 한 명 한 명의 눈을 맞추며 말하는데, 진심을 다한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들어서 더 울컥했다.


공연이 끝나고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송영미 배우가 평소에는 그런 말을 못 하는데, 공연을 하면서 관객들에게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모두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관객들의 눈을 맞추며 그 대사를 한다고 이야기를 해주어 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리고 본인은 장녀라서, 장녀 콤플렉스 때문에 평소에 강한 척을 하며 사는 게 루시랑 비슷한 것 같다는 이야기도 개인적으로 너무나 공감이 되었다. 나 역시 그녀와 같은 대한민국의 장녀이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하며 울먹거리는 송영미 배우에게, 내가 그 말을 해주고 싶었다. 너무 슬플 땐, 참지 말고 소리 내서 울어버리라고.


아쉬움도 많은 작품이었지만, 보고 나면 마음이 정말 따뜻해지고 위로를 받고 나온 기분이 들어 다시 보고 싶은 극이다. 무대에 한가득 적힌 이름들이 의미하는 것처럼, 평범한 모두를 위한 뮤지컬 폴을 한번 더 볼 수 있는 평범한 관객이 되고 싶다. 어둠을 무서워하는 폴에게, 다시 한번 객석에서 눈을 반짝이며 빛이 되어주고 싶다. 꼭 다시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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