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니까

by 오현준

어릴 적 아버지께서 자주 해주시던 말씀이 있다.


"아빠가 자리를 비우면, 네가 엄마와 동생을 챙기고 돌봐야 한다."


아버지가 직장에 나가시거나, 집을 비우시면 나는 아버지의 몫을 해내기 위해 노력했다. 무거운 짐은 내가 나서서 들었고, 무언가 고장 나면 먼저 확인하고 고치려 했다. '남자니까'라는 건 너무나 당연한 내 안의 기준이었다. 사회에 나와서도 마찬가지였다. 힘을 쓰는 일이 있다면 먼저 움직였고, 역할을 나눌 때도 은근히 '성별'을 기준 삼았다. 그게 문제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매너라고 생각했고, 나는 배운 대로 잘 살아가고 있다고 여겼다.


최근 성평등을 주제로 한 연수에 다녀왔다. 강사가 질문을 던졌다.

"지금 앞에 서 있는 저는 남자일까요? 여자일까요?"

무조건 남자 강사님이었다.

"제 신체를 본 적도 없고, 염색체 검사 결과도 모르고, 유전자도 모르시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확신하시나요?"

무언가 잘못된 걸 느꼈다.


요즘은 헤어스타일만으로 성별 구분이 어려운 상황에 종종 처하곤 한다. '남자 분이실까, 여자 분이실까.'

그리곤 제멋대로 단정짓는다. 성별을 구분짓는 게 꼭 필요한 작업도 아닌데 사고회로가 저절로 작동한다. 그리고 그 판단에 따라 '매너랍시고' 상대를 대한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_시몬 드 보부아르

아버지, 이제는 어디 가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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