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의 나를 돌아보며 미래를 계획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지난 MBA 웨비나 세션을 들으며, 인상깊었던 연사의 말씀 -
나의 과거의 흔적을 돌아보며, 가까운 미래를 그려보라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그 날 세션을 듣고, 노트 하나를 펴서, 나의 흔적을 그려보았다. 나의 지난 날들, 그리고 지금 현재, 앞으로 내가 그리는 날들. 글로 적어두지 않으면, 그 간절함과 애틋함이 사라질 수 있으니 짧게 나의 날들을 나열하고, 오래 되새겨보고자 한다.
그 당시에는 전혀 관련없어보이던 일들은, 훗 날, 경험을 돌아보니 모두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한 중요한 디딤돌이었다. 이를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바라는 꿈을 기록할 수 있으리.
인구 20만도 안되는 작은 도시에서 나는 19년의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런 나의 오랜 꿈은 한 가지. 대학에 오면,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다. 내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나라들을 여행하고, 그 중심에서 세상을 알아가는 일. 트렌드를 누구보다 빠르게 경험하고, 그 정보를 전달하고, 공유하고 소통하는 걸, 막연히 꿈꿔왔던 나는, 신문방송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이런 막연한 소망이 있던 나에게, 블로그를 운영하는 일은 당연했다.
그렇게 서울로 대학을 왔다. 지방에서만 19년의 유년시절을 보냈던 내가, 서울이라는 곳에서 경험할 수 있는 폭과 깊이는 더 커져갔으며,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자연스럽게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블로그를 통해 다양한 소재의 정보를 전달하고 공유할 수 있었다.
블로그를 하면서 내가 가장 재밌어하는 시간은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의 데이터를 보는 일이었다.
나의 블로그에 어떤 키워드로 유입이 많이 되는지, 썸네일을 변경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나는 나의 이 작은 블로그 안에서 다양한 실험을 추구했다. 흔히들 말하는 A/B테스트를 나는 이 작은 블로그 안에서 끊임없이 실험했던 것이다. 블로그의 데이터를 보는 일은, 테크 산업에 대한 관심과 결합되어, 자연스럽게 더 많은 데이터를 경험하고 싶다는 나의 막연한 소망을 만들기 충분했다.
그렇게 나의 첫 유급 인턴십은 애드테크 업계에서 시작되었다.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한 애드테크 스타트업에서 첫 인턴십을 진행했다. 그 곳에서 내가 담당한 클라이언트는 게임사와 커머스였다. 고객의 전체 구매 여정에서 퍼널별로 데이터를 분석하여, 더 많은 Roas를 끌어내는게 당시 나의 주 KPI였다. 그 중에서 내가 더 관심있게 보았던 건 바로 커머스 업계였다. 퍼널별 타겟에 맞는 광고를 집행하며 그에 따른 다양한 전략이 필요한 이 업계가 신기했다. 또한 커머스 플랫폼은 셀러들로부터 받는 수수료만큼이나, 다양한 캠페인 프로모션과 내부 광고인벤터리를 통해 벌어들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온라인 커머스의 서드파티 광고 사업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그 후 나의 관심사는 테크 + 커머스가 되었다.
인턴십을 마치고 내가 처음 정규직으로 들어간 외국 회사는 핀테크 회사였다. 그 중에서도 이커머스 사업자를 돕기 위한 핀테크 서비스 사업개발 일을 하게 되었다. 이커머스 플랫폼들과 함께 협업하면서 글로벌 이커머스/자사몰 사업자를 위한 PG 서비스와 페이먼트 서비스를 이해하게 되었고, SME 광고 시장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대륙별 이커머스 산업에 대해 찾아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났고, 핀테크 쪽 스타트업을 창업하여 운영하던 남자친구와 함께 공부하며, 금융/핀테크에 대한 산업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관심을 갖게 된 지역이 바로 동남아였다. 자연스럽게 작년 하반기부터 동남아 시장에 대한 공부도 주말마다 틈틈히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다음 커리어가 정해졌다.
동남아 + 이커머스 = 즉 동남아시아 이커머스 플랫폼이었다.
무한히 커져가는 이 시장의 고객을 이해함과 동시에, 아직은 완전히 완성되지 않은 이 시장에 나도 한 획이 되고 싶었다.
아직도 인터뷰 때 들었던 이야기를 잊지 못한다. 아직 한국발 동남아행 역직구 시장을 이해하는 전문가가 많지 않아요. 지금 이 시기에, 동남아 이커머스에서 한국 마켓을 디벨롭하는 일은, 적어도 그 분야에 있어서는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그 확신을 의심치 않아요.
그렇게 나는 싱가포르에 왔다.
신문방송학 - 애드테크 - 핀테크 - 이커머스 이렇게만 보면 도대체 어디서 연관성을 찾아야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의 관심과 흔적을 하나 하나 펼쳐보니, 지금 나의 길은, 과거와 전혀 무관하다 말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정리하는 과정에서 내가 원하는 미래의 모습도 정리해 볼 수 있었다.
나는 좋은 것들을 공유하고 같이 나눌 수 있는, 지식 공유의 장이자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 먼 미래의 꿈은 이런 나의 소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을 여는 일이지만, 그를 위한 나의 첫 걸음은 온라인이었고, 구체적으로는 블로그였다고 생각한다. 브런치, 최근 트렌드를 전하는 오픈 카카오톡 열었던 목적도 이와 같았다. 먼 훗날 꿈을 위한 작은 디딤돌로 여러 채널을 경험하는 일-
불로소득 (不勞所得, unearned income) : 노동의 대가로 얻는 임금이나 보수 이외의 소득
작년 하반기부터 경제에 관한 유튜브를 찾아보는데,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야기가, 어릴 때 부터 불로소득을 작게라도 경험해보라는 이야기다. 기본 근로소득 외에 새롭게 돈을 버는 경험/채널을 확대하는 일. 대학교 때 부터 그런 방법에 대해서 오래 고민하면서, 큰 돈은 아니지만 다양한 채널을 통해 불로소득을 경험하였고, 내가 노동하지 않아도 돈이 돈을 만드는 과정을 경험하였다.
출근하지 않아도, 때로는 여가시간을 활용하여 내가 가진 다른 역량으로 돈을 버는 일. 대학생 때부터 일이 아닌 취미로 (MC, 발표, 컨텐츠 제작, 기록) 작은 돈을 조금씩 경험하기 위해 노력했다. 정기적으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주말에 조금의 시간만 투자하여도 내가 가진 다른 역량이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작게나마 불로소득을 경험하면서 돈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고,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준비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서 일할 때는, 정기적으로 일을 하며 버는 월급의 최소 80%를 저축했다. (싱가포르에 오니 물가가 장난아니라, 아마 한국에서만큼은 저축이 어려울 것 같다. ) 정기적으로 번 돈은 나의 땀이 담긴 소중한 돈이기에 돈을 쓰는 일이 어렵더라. 거의 다 적금이나 해외 투자로 바로 빠져나가도록 모아두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개인적인 역량으로 버는 돈은 아끼지 않고, 전부 소비하는 편이다. 보통 이 돈은 생활비와, 일 외적인 시간에 나의 행복을 영위하기 위한 비용으로 소비된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때때로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은 공간에서 좋은 문화를 나누며 좋은 음식을 즐기고 좋은 경험을 하기 위해서 아끼지 않는 편이다. 일을 하며 버는 돈을 잘 관리하고 저축하는 만큼, 그 외의 돈은 여유롭게 소비하며, 내 행복을 존중해주기 위한 방식이다.
돈을 잘 관리하면서도 때로는 돈을 여유롭게 소비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여유에서부터, 다시 일을 잘 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준다는 것에 동의하는 편이다.
내가 돈을 주로 소비하는 행태는 크게 두 가지, 바로 전자기기와 여행이다.
1) 전자기기 : 일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전자기기는 아끼지 않는 편이다.
작게는 키보드, 마우스와 같은 컴퓨터 용품부터- 휴대폰, 태블릿, 노트북 까지, 주기적으로 바꾸는 편이다. 새로운 테크 제품에 관심이 많은 이유도 있지만, 내가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나에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돈 버는 기계에는 돈 아끼는 거 아니다." 전자기기를 하나씩 구매할 때 마다 위로하기 위해 하는 말이다..!
2) 여행 : 나는 여행에는 정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순간이 오면, 망설이지 않고 여행을 떠나는 편이다. 어릴적부터, 어른이 되면 세계 여행을 다니고 말겠다는 나의 유년시절의 소망을, 지켜주고 싶은 이유도 있지만, 지금 다녀야 느낄 수 있고, 할 수 있는 경험의 가능성을 믿기 때문이다. 옷과 화중품에 더 많은 소비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미식에 돈을 많이 쓰는 사람이 있듯이, 나는 전자기기와 여행에 더 많이 투자하는 편이다.
물론, 가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전자기기 또는 여행에 조금 덜 소비했더라면?
음,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모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행복했을까? 지금 이 감사한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한 가지 확실한건, 그랬더라면 아마 지금의 내 모습은 달라져있었을 것이다. 24살때까지 32개국을 다니지 못했더라면, 세 나라에서 해외 생활을 해보지 못했을 것이며, 단순하게 싱가포르에서 일하는 경험도 얻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 외에는 저축을 (열심히 하려고 노력) 한다. 올해 상반기까지 5000만원이라는 씨드머니를 모으는게 목표였으나, 싱가포르에 오면서, 생각보다 많이 들었던 초기비용으로 인해, 올해 9월까지로 목표를 수정하였다. 그 후에는 2년 안에 그 돈을 2배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돈을 모으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목표가 필요했다.
이른 결혼을 생각하는 나로서는 결혼 자금을 직접 마련하는 꿈이, 돈을 모을 수 있었던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나는 싱가포르에서, 그는 한국에서 열심히 준비 중이다. 앞으로 4년 후, 30살에는 공부를 하고 싶다는 꿈이 결혼자금 이후, 두 번째 돈을 모을 수 있는 큰 동기가 되었다.
30대, 40대, 그리고 그 이후에도 - 한국 또는 그 어딘가의 다른 나라에서 우리는 언제든 여행하며 떠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그와 이야기하는 우리의 미래는, 꾸준히 여행할 수 있는 삶이 되길 바란다.
돈이 많은 부자가 되어야겠단 욕심은 없으나 경험부자가 되고 싶은 욕심은 굉장히 크다. 내가 가진 경험과 즐거운 삶의 이야기들을 전해줄 수 있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싶다. 궁극적으로는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일을 하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확실한 건, 지금처럼 나의 일과 일이 아닌 모든 순간을 균형있게 사랑하다보면, 내 삶이 더 풍성해질 거란걸 안다.
마지막으로, 이스트코스트파크를 달리며 남겼던 어느 5월의 일기를 남긴다.
60대에는 꿈꿔온 오프라인 공간으로 가치를 공유할 수 있었음 좋겠다. 책방 할머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