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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LOG Mar 12. 2020

해변이 아름다운 크로아티아 자동차 여행

그와의 100일을 맞이하며, 크로아티아와 터키에서의 추억 (1)

언젠간 우리의 여행 이야기가 고이 어여쁜 책으로 나오는 그 날을 꿈꾸며, 2019년 10월에 다녀온 여행기를 남겨본다.


"이번 여행은 어디로 갈까?"

둘 다 많이 지친 상태였다. 피곤과 함께 보낸 일상 속에서 잠깐 도피가 필요했다. 그래서 휴가를 다녀오기로 결정했고, 휴가 여행지를 정하는 과정 중, 교환학생 생활 중 가장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던 크로아티아가 생각이 났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면 더 아름답다는 그 여행지를, 그와 함께 꼭 가보고 싶었다. 더불어, 어렵게 마련된 소중한 시간이었기에 터키도 짧게나마 보고 오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의 휴가가 계획되었다. 크로아티아 자동차 여행 - 그리고 터키 여행이 말이다.

크로아티아 자동차 여행 중 두브로브니크

크로아티아 자동차 여행 코스는 다음과 같았다.

자그레브 (Zagreb) - 플리트비체 (Plitvice) - 자다르 (Zadar) - 프리모슈텐 (Primosten) - 스플리트 (Split) - 흐바르 (Hvar) - 마카르스카 (Makarska) - 두브로브니크 (Dubrovnik) - 챠브타트 Cavtat


그리고 터키로 이동하여 이스탄불과 카파도키아를 여행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정말 최고의 여행이었다. 그 어느 도시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곳이 없었던 -


10월 2일 오전 9시 35분, 인천 국제공항

인천에서 독일 뮌헨으로 가는 첫 번째 비행기를 탔다. 처음 타보는 루프트한자행 비행이었다. 긴 비행을 떠나기 3일 전, 마라톤을 했던지라 심신이 많이 피곤한 상태였다. 피곤함과 동시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아픔이 계속해서 찾아왔다. 

자다가 일어나 보니 기내식을 먹을 시간이었다. 기내식을 먹으며 나는 업이라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줄거리가 참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이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언제나 그렇듯-  그리고 꿈도 생겼다. 언젠간 업에 나오는 베네수엘라에 있는 파라다이스 폭포에 가고 싶다는. 


더불어 여러 생각이 들더라. 낡고 새것의 문제를 넘어 한 공간에 대해 갖는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생각. 누군가에게 업에 나오는 칼 할아버지의 집이, 2배 이상의 가격으로 보상해주면 가질 수 있는 낡은 집으로 보였겠지만, 칼 할아버지에게 그 집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오랜 흔적을 입은 공간 그 이상이라는 것-


돌아보니 그와 나의 유럽 여행도 그랬다. 우리의 여행이 특별했던 이유는 화려한 건물과 유명한 관광지보다도, 그와 내가 함께 보낸 겹겹의 시간들 덕분 일터이니, 잊지 못할 추억으로 그렇게 내내 어여쁘게 남길 바란다. 음식이 예상 밖의 맛이어도, 날씨가 좋지 않아도, 길을 잘못 들어 오래 걸려도, 우연과 실수마저 사랑스웠던 여행이었으니 우리 함께 그 모든 뜻깊은 시간들을 삶에 짙게 남겨두자며-


10월 2일 오후 5시,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 도착

따뜻한 햇살이 서편으로 뉘엿뉘엿 떨어질 때쯤 크로아티아에 도착해있었다우리의 첫 도시는 자그레브였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바로 에어비앤비 자그레브 숙소에 도착했다. 

자그레브의 저녁 풍경

저녁을 먹고 환전을 하기 위해 6시 반쯤 숙소에서 짐을 풀고 시내로 나왔다. 환전을 먼저 한 후, 그가 찾아둔 현지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었다. 맛있는 저녁이었지만 한식을 아주 사랑하는 나에게는 다소 아쉬운 저녁이었다. 공원을 한 바퀴 돈 후, 천천히 숙소로 걸어갔다. 그때부터였다. 으슬으슬 춥고, 머리가 어지럽기 시작했으며 열도 나기 시작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져 바로 잠이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는 내가 자고 있는 사이, 급하게 마트에 가서 약과 함께 물을 사 가지고 왔다. 그가 숙소에 도착하자, 나는 중간에 일어나 약을 먹고 다시 잠이 들었다. 그렇게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10월 3일, 자그레브 - 플리츠비체 이동

전날 밤보다는 한결 나아진 몸을 일으켜, 아침 8시에 모든 짐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전날 일찍 잠들어 둘러보지 못한 자그레브 시내를 돌았다. 간단히 커피와 빵으로 아침을 해결했고, 택시를 타고 자동차를 렌트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의 첫 운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운전면허증은 있었지만 운전을 거의 해보지 않았던 터라, 이번 여행만을 위해 여행 전, 30시간 동안 운전연습을 하고 온 그였다. 운전을 험하게 하는 크로아티아 자동차들 사이에서, 그는 최선을 다해 운전했다. 그 모습이 참 어여뻤다.

그렇게 우리는 플리츠비체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가장 기대했던 곳이었기에, 이곳의 에메랄드 색의 일렁이는 물을 볼 생각에 한껏 벅차 있었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문제가 생겼다. 다시 몸이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추운 날씨도 아니었건만, 나는 계속해서 한기를 느끼며 추워했다. 10월 유럽의 날씨를 따뜻한 봄 날씨 정도로 생각했던 터라, 두꺼운 옷이 없던 우리였다. 그래도 어떻게든 여섯 겹의 옷을 껴입고 플리츠비체 국립공원에 내렸다. 


입장하기 전, 매표소 앞에 있는 식당에서 버거와 소세지를 주문했다. 국립공원에 있는 유일한 식당이었던지라, 모든 관광객들은 그곳으로 몰렸다. 긴 줄을 뚫고 40분 만에 음식을 주문하였고 우리는 독일에서 온 한 노부부와 함께 자리하여, 식사를 하였다. 독일에서부터 자동차 여행을 시작한 부부의 이야기는 할머니로부터 옛날이야기라도 듣는 듯, 신기하고 또 아름다웠다. 40년 후 우리도 저렇게 손을 잡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자동차 일주를 다니자며, 기분 좋은 미소를 공유했다.


날이 좋지 않아서 그런지 플리츠비체 국립공원은, 사진에서 보던 만큼의 감동은 아니었다. 몸도 아팠던지라 아름다운 광경을 봐도 쉽게 눈에 들어오진 않더라. 그저 추위에 얼른 다시 차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뿐. 오후 4시, 우리는 플리츠비체 국립공원에서 나와 다음 여행지로 향했다. 자다르였다. 내가 사랑한 도시-


10월 3일 저녁 플리츠비체 - 자다르 이동

자다르에 가는 길은 절벽의 연속이었다. 200으로 쌩쌩 달리는 크로아티아의 무서운 차량들 사이에서 우리는 천천히, 조심하며 운전을 이어갔다. 애드 쉬런의 노래를 연속으로 재생하며 따라 부르다,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기도 했다. 돌아보니 자다르로 가던 길 마주한 그 절벽이 가장 그리운 듯하다. 높은 절벽 아래로는 내내 바다가 너울거렸다. 바다는 저 멀리 아득한 곳까지 뻗어나가선, 조금씩 붉어지는 하늘까지 맞닿았다. 짧은 풀이 무성하게 자라난 너른 구릉에는 거친 환경에도 용케 잎을 틔운 풀도 보이는 듯했다.


그러다 길을 잃었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방향대로 이동했건만, 길이 막혀있던 것이다. 돌아가는 길을 찾아 헤맸고 그렇게 1시간 반이 넘게 지연되었다. 그러던 중 우리는 아주 멋진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자다르로 향하는 길에 보았던 아름다운 석양

정말 아름다운 석양이었다. 하늘에 불이라도 난 듯, 활활 타오르는 붉은 노을은 그 언제 보았던 하늘보다도 아름다웠다. 잃은 길 위에서 만난 선물이었다.  그리곤 7시가 되어 자다르에 도착했다. 에어비앤비 주인을 만나 키를 전달받고 숙소로 들어갔다.

숙소는 정말 예뻤다. 이번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숙소가 두 군데인데, 한 곳은 자다르, 다른 한 곳은 두브로브니크 숙소였다. 문제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으슬으슬한 추위가 다시 느껴지며, 아픔을 호소하기 시작했다는 것. 뒤에도 나오겠지만 그렇게 여행 중, 나는 저녁 5시 반만 되면 아픔을 호소했다. 원인 모를 아픔이 여행 3일 전 달렸던 마라톤 때문인지, 그동안 쌓여있던 피로가 문제였던 건지- 그저 가져온 약들을 하루에 3번씩 먹으며 아픔을 참고자 했다. 그는 그런 나를 위해 곁에서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지켜주었다. 저녁을 먹지 못하고, 약만 먹고 또 바로 잠들어버린 나를 확인하고, 혼자서 마트와 식당에 가서 요깃거리를 잔뜩 사 가지고 온 그였다. 내내 아픔을 호소하는 나 때문에, 그가 여행 중, 저녁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날들이 연속되었다.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 크다. 어쨌든 자다르의 밤도 그렇지 지나갔다.


10월 3일 자다르 여행 

새벽 5시에 일어났다. 한국 시간으로 오전 10시. 휴가를 냈다지만, 담당자가 없었기 때문에, 일부 업무를 챙길 필요가 있었다. 급하게 메일 건과 업무를 아침까지 처리한 후 10시 반이 되어 그를 깨웠다. 아침이 되니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몸도 많이 괜찮아진 듯했다. 

아침에 일어나 같이 간단히 티를 마시고, 자다르 시내에 나갈 준비를 했다. 함께 맞는 이 아침이 참 좋았다. 날씨마저 사랑스러운 그런 날이었다.

자다르 숙소에서 만난 그날의 사랑스러운 날씨

그렇게 우리는 짐을 챙겨 렌터카에 넣어두고, 자다르 시내를 먼저 돌기 시작했다. 전날 밤, 아픔을 호소하며 먼저 잠든 나를 위해 밤새 식당과 마트를 돌아다녔던 그였기에, 이미 자다르의 지리를 잘 알고 있었다. 

자다르의 낮의 모습

어젯밤에 혼자 돌아다녔을 때는 이곳이 이 정도로 사랑스러운 곳인지 몰랐다며, 같이 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한껏 웃음을 날려주던 그이기도-

자다르는 무엇보다 해변이 정말 아름다운 도시이다. 이 날, 날씨도 화창했던지라 그 빛나는 해변을 온몸 가득 느낄 수 있었다. 해변을 쭉 돌아 다리를 건너면 자다르의 올드타운에 도착할 수 있다.

이곳이 바로 그토록 사랑스러운 자다르의 올드타운이다.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거리의 음악을 가만히 서서 들어보기도. 이곳의 낭만과 여유를 온전히 받아들이니, 이만큼 행복할 수가 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곳은 바로 자다르의 Sea Organ이라는 곳이다. 바다가 만들어내는 자연의 소리. 가만히 앉아 바닷소리를 듣다 보면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졌다.

사진 촬영 아이폰 프로
사진 촬영 : 갤럭시 노트 10

그간 이렇게 그의 사진 실력이 늘었다. 물론 화창한 날씨와 아름다운 자다르의 해변이 다하기도 했다. 넘실넘실 출렁이는 파도도 좋았고, 그에 맞춰 한 가닥씩 얼굴로 떨어지는 나의 머리카락들도 좋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해변을 뒤로 한채 우리는 다시 에어비앤비로 돌아왔다. 크로아티아의 라떼와 함께 말이다. 이제 다음 도시는 프리모슈텐이다. 너무 아름다워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10월 4일 자다르 - 프리모슈텐 이동

드디어 프리모슈텐에 도착했다. 이곳은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곳인데, 스플리트 가는 길에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한 신혼부부의 프리모슈텐 후기를 보고는, 꼭 이곳을 데려오고 싶었다는 그. 

그가 운전 경력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처음 우리는 크로아티아 버스 여행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가 데려오고 싶어 했던 이 곳은 버스로는 올 수 없었기에, 이곳을 꼭 보여주고 싶어, 운전연습을 그토록이나 열심히 했다고-

프리모슈텐의 물 색깔이 이렇게 예쁘다. 에메랄드 빛 해변이 바로 여기 있었다. 동네가 크진 않기 때문에 도보로 2시간 이내면 다 둘러볼 수 있는데, 우리도 이 어여쁜 바다를 거닐며 아름다운 상상에 젖었다.


10월 4일 저녁 프리모슈텐 - 스플리트 이동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 리스트를 연속으로 틀어놓고, 다시 드라이브가 시작되었다. 다음 여정은 스플리트였다. 5시 반쯤 되어서야 우리는 스플리트에 도착했다. 에어비앤비 집주인에게 키를 받아 숙소에 들어갔다. 저녁이 되니 문제는 또 이어졌다. 다시 으슬으슬 춥고 열이 나고 아프기 시작했다. (이렇게 보니 여행 이야기가 아픈 이야기밖에 없는 것 같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아픔을 호소하며 또 그와 저녁을 함께 하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그런 그는 또 아픈 나를 위해. 집 앞 근처 마트와 식당에서 음식을 포장해왔다. 

나는 밤 11시쯤 되어 다시 일어났다. 5시간을 그새 잔 것이다. 내 옆에는 곤히 잠든 그가 있었다. 나의 인기척에 그도 금세 깨어났다. 그리곤, 내가 잠든 사이 사온 간단한 요깃거리를 꺼내왔다. 그래도 다행히 한결 자고 나니 몸이 많이 나아진 듯했다. 계속 밤마다 아프기만 하니,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장 컸다. 여행이 계속되도록 저녁만 되면 아픔을 호소하는 나로 인해, 계획했던 여행이 되지 못했을까 봐-


그다음 날도 같은 아픔을 호소하면 한국에 일찍 돌아가거나, 병원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아직 우리의 여행이 반도 진행되지 않았지만, 이렇게 약만 먹다가는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어, 괜히 무서웠다. 작은 조언이라도 얻고자, 우리가 둘 다 아는 의사 선생님께 늦은 시간에 전화를 드렸다. 한국은 이제 막 아침이었다. 오빠는 내 상황을 설명하며 조언을 구했다. 선생님은 친절하게 조언을 주었고, 오히려 걱정이 많은 나를 위로하고자, 웃긴 이야기를 수화기 너머 전했다. 아주 친절하신 우리 선생님이다. 한국 가면 오빠랑 같이 방문하겠다고 웃으며 전화를 끊고 다시 잠이 들었다.


10월 5일 스플리트 - 흐바르 - 스플리트 일정

아침이 되었다. 일어나자마자 같이 마트로 향했다. 쌀을 너무 먹고 싶었던지라 쌀과 함께 고기를 샀다. 이때였다. 갑자기 복통이 심하게 오기 시작했다. 가장 아팠던 날이다. 그는 먼저 집에 들어가 있으라며 나를 집에 데려다주더니, 혼자 밖에 나가 스플리트의 약국을 다 뒤지기 시작했다. 어제 의사 선생님이 말씀해주셨던 약을 구해선, 얼른 집으로 달려왔다. 나는 약을 먹고 다시 누웠다. 1시간 반 정도 잠이 들었을까? 약효가 올라온 건지 다시 아픔이 많이 가라앉았다. 옆에서 내내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었던 그의 덕도 컸을 것이다. 

이 날은 일정을 늦게 시작하더라도 우선 오전은 푹 쉬기로 했다. 그와 음악을 들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12시가 되어서야 점심을 차렸다. 냄비에 쌀을 불려 냄비밥을 만들었고, 모처럼 고기도 구웠다. 배가 많이 고팠던 지라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2시가 넘어서야 천천히 스플리트 시내로 나왔다. 가장 먼저 우리가 들린 곳은 스플리트의 올드타운이었다. 크로아티아는 돌아보면 주로 오래된 것들 투성이인 나라였다. 어느 도시에 가든 항상 올드타운이 있었고 100년은 훨씬 넘어 보이는 건물들에는 제각각의 간판들이 붙어있었다. 


누구나 알다시피, 오래된 것은 주로 투박하기 마련이다. 자그레브에서 마주한 숙소의 문이 그랬듯, 삐걱대는 문이 불편하다거나, 낡은 현지 식당의 좁은 테이블 간격으로 여유롭게 음식을 즐기기 어렵다 건가.  첫날, 자그레브 숙소에서는 한 번 문을 따는 대만 한참을 끙끙 대었다. 구식 엘리베이터도 없어 캐리어를 낑낑 들고선,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보니 그런 오래된 건물들은 그 나름의 고즈넉함이 있는 듯하다. 허세 대신에 정성이 있다고나 할까? 자다르에서도 그랬듯, 그 오래된 건물 골목골목마다 동네 음악가들이 재즈를 연주했고 지나가는 관광객들은 한 마음으로 리듬을 타며, 박수를 남기곤 했다. 그렇게 크로아티아를 여행하며, 종종 여행지에서 마주한 투박함에서 풍겨지는 세월의 깊이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래된 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크로아티아 사람들의 일상에 젖는 여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간식으로 올드타운에서 타코를 먹었다. 그와 함께 먹는 세계 음식 투어! 이미 늦은 오후였지만, 흐바르를 정말 가고 싶었던 우리는 어렵게 페리 티켓을 구했다. 갈지 말지 오래 고민했었는데 결론적으로는 안 갔으면 정말 후회할 뻔했다. 자다르에 이어 2번째로 아름다운 석양을 봤던 날이기에-

스플리트에서 흐바르까지는 페리를 타고 이동했다. 페리를 타고 흐바르로 향하는 길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아직도 그 햇살을 잊지 못한다. 페리에서 내려 흐바르까지는 동행을 구해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해가 지는 모습을 볼 때까지 성곽 벤치에 누워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그 아름다운 석양이 눈 앞에 들어왔다. 세상에 누가 크로아티아 하늘에 불장난이라도 피운 건지- 노을의 그 붉은 출렁임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태양의 울부짖음일까 넘실거리는 하늘이 사랑에 빠진 걸까. 오래오래 담아두기 위해 많은 사진을 남겼다.

밤이 되니 흐바르의 하늘은 더 짙어져만 갔다. 우리는 콧노래를 부르며 다시 흐바르의 시내로 내려왔다. 라벤더로 유명한 흐바르섬- 그래서 봄에 이곳에 오면 그 라벤더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시기상, 우리는 라벤더를 보진 못했지만, 라벤더 향이 가득 담긴 방향제를 몇 개 구매하여 그 향을 마음에 가득 담아두기로 했다.


그러다 문득 하늘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얼마나 하늘을 보고 사는가. 해가 뜨고 지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하늘을 바라보는가,

돌아보면, 적어도 나는 한국에서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곤 늘 여행을 가서야 하늘을 찾았다

그날의 일출과 일몰, 시간에 따라 바뀌는 저녁의 석양의 색은, 모든 걸 다 놓고 떠났을 때야 감사함을 가지고 보고 있었다는 생각-


이젠 평범한 나의 일상에서도 하늘을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사람이 되자며-

반나절 이상 날아온 이곳만큼 평온한 곳이 또 있을까? 낮에 느껴지는 따뜻한 햇살, 피부에 닿는 저녁의 서늘함, 적당히 가라앉은 공기, 코끝을 스치는 청량한 나무 내음과 라벤더 향들은 내게 익숙지 않은 설렘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했다

이 날은 흐바르에서 동네 축제가 있던 날이었다. 우리도 그 옆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스플리트로 다시 돌아오는 페리를 타기 전까지 하늘을 실컷 눈에 담기로 했다.

흐바르는 수상 스포츠로도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흐바르에서의 일정이 여유롭지 못해 오래 이곳에 머물진 못했지만 말이야. 우린 또 올 거야. 그땐 오래 이곳에 머물자- 그때도 신선한 바람만이 우리를 반겨주는 곳이면 좋겠다. 그지?


이 날 저녁에도 또 아픔이 찾아올까 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이다. 이 날부터는 언제 아팠냐는 듯이 말끔히 몸이 나았다. 모두 다 그의 덕분이다.


10월 6일 스플리트 - 마카르스카 이동

스플리트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우리는 자동차를 타고 마카르스카로 이동했다. 마카르스카는 파아란 해변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한데, 이곳도 한국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다 보니 우리만의 시간을 보내기에도 충분했다. 

크로아티아 자동차 여행을 하게 된다면 마카르스카는 꼭 한번 들려보기를 추천한다. 하얀 모래사장이 아름다운, 누드비치였다. 아주 투명한 에메랄드빛 물과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근사한 해변이랄까? 누군가는 가벼운 차림으로 조깅을 즐기기도, 양지바른 곳에 나란히 누워 태닝을 즐기기도, 와인이나 맥주 한 병을 들고 낭만을 즐기기도-


사람들은 그렇게 듬성듬성 하얀 모래사장에 앉아 해변을 즐겼다- 우리도 그중 한 명이었다. 따사로운 햇살과 미풍 아래, 물이 일렁이면 그 물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도 장관 그 자체였다. 그 당시 가장 최신 폰이었던 갤럭시노트10과 아이폰 프로를 들고 떠난 여행이었다만, 제아무리 성능 좋은 카메라도 눈에 담은 그대로를 담을 수는 없었다. 언젠가 나에게 한달살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이곳에서 한 달 살이를 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는 수영복을 꺼내 해변에서 귀여운 물장난을 치고, 나는 고운 모래에 누워 그런 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를 따라 해변에 첨벙 뛰어들고 싶은 욕구가 수만 번도 넘게 들었다만, 컨디션이 완전하진 않았기에 참고 참고 또 참아, 손만 가볍게 담갔다. 그래도 찰나의 자연 냄새와 촉감이 참 좋아 고스란히 마음속에 저장해두었다. 그래도 설렜던 이 내 기분과 순간을 널리 알릴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표현할 텐데. 내가 아는 단어가 한정적이라 아름답고 행복했다는 단어 외엔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우린 자동차를 타고 마카르스카에서 두브로브니크로 다시 이동했다. 귀에는 신나는 음악이 함께 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평소 장난이 많은 나는 그의 옆에 앉아 시시콜콜, 해맑은 소리들을 하기 바빴다. 그는 영국에서 초등학생들 9명을 인솔하고 다녀왔던 때가 생각난다고 했다. 그저께까지 내내 아팠던 내가, 언제 아팠냐는 듯, 수다쟁이처럼 떠들기 바쁜 시간이었다. 모든 여행지마다 우리를 기준으로 전방 1m는 항상 우리의 웃음소리로 꽉 채워졌음이 분명하다.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길에는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의 국경을 지나야 한다. 국경을 지나고 나면 보수석 쪽으로 아리아 이해 연안이 쭉 펼쳐진다. 햇빛에 비춰 일렁이는 그 해변을 보고 있자니 이게 바로 행복인가 싶다. 그는 아직도 그 해변을 보며 행복해하는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10월 6일 오후 마카르스카 - 두브로브니크 이동

두브로브니크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에어비앤비 숙소에 짐을 풀고, 자동차를 반납하러 갔다. 두브로브니크가 우리의 크로아티아 여행의 마지막 여행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두브로브니크의 중심지로 이동했다. 도착하자마자 걸어서 방문한 곳은 한식당이었다. 딩동, 그런데 이 식당이 일요일에는 5시 영업 마감이라니.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5시 40분이었다.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터라, 우리는 당장이라도 먹을 것이 필요했다. 우선 간단한 요깃거리와 함께 한 한인민박에 찾아갔다. 이 곳에서 김치볶음밥을 먹을 수 있다는 수소문 끝에 찾아간 곳이었다.  김치볶음밥 먹을 생각에 계단을 껑충껑충 뛰어올라, 케이블카 초입부에 도착!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똑똑 문을 두드렸는데 아니 이럴 수가! 이 한인민박에서 라이센스가 정지되어, 한인 음식을 판매할 수 없다고. 당분간 조식도 한식이 아닌 시리얼로 제공된다고 한다. 부탁드려 남은 신라면과 볶음김치를 사 와서 끓여 먹었다. 여기서도 맛있는 음식을 그토록 많이 먹었건만, 역시 가장 그리운 음식은 한국의 라면이었다. 두브로브니크의 올드타운을 산책 삼아 돌아보고 마트에서 간단한 주전부리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해 질 녘이 참 아름다웠다


우리의 마지막 크로아티아 여정이었던 두브로브니크 숙소는 사진처럼 굉장히 예쁜 곳이었다. 

창문 너머로 해변이 보이고, 그 강물이 유유히 흘렀으며, 저 멀리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의 구시가지 전경도 언뜻 보이는 그런 곳. 질서 정연하게 늘어선 파스텔톤의 건물과 탁 트인 광장도 일부 보이는 곳이었다. 돌아오는 택시의 창문 너머 보이는 해 질 녘은 참 아름다웠다.


스플리트에 머물렀던 날까진, 아픔을 호소하며, 저녁 7시에 잠이 들어 새벽 5시에 깼던 나는, 이제 그 방에선 (아주 건강히) 해가 지는 것도 뜨는 것도 모두 볼 수 있었다- 여기서 바라본 풍경을 과연 어떤 미사여구로 표현할 수 있을까? 자신 없는 고백이다. 아무튼 그날은, 긴 시간 동안 운전을 했던 그와 피곤을 달래며 일찍 편안한 잠이 들었던 날이었다.


10월 7일 두브로브니크 여정
사진은 맛없어 보이지만 실제론 진짜 맛있었다 - 그리운 한식이라 그런가

두브로브니크 둘째 날의 아침은 직접 김치 삼겹살을 만들어 먹었다. 아침을 먹으며, 아침 일찍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일도 꽤 재미있었다 그리고 오후 늦게 두브로브니크 시내를 둘러보기 위해 숙소를 나왔다. 

두브로브니크는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였다. 그래서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다. 그래서 오히려 나의 기억 속에는 가장 평범했던 도시였다. 그보다 사람이 적고, 해변이 아름다운 도시들이 나는 더 좋았다.

 그 유명하다는 두브로브니크의 성곽투어를 마치고 우리는 차브타트로 향했다.


두브로브니크에서 30분 버스를 타고 이동한 곳, 차브타트


워낙 예쁜 동네를 많이 본 지라, 차브타트에 대한 색다른 특별함은 없었다. 크로아티아의 여느 동네와 마찬가지로, 평온한 햇살과 작은 해변이 반짝반짝 빛나는 곳이었다. 


우린 하얀 비치의자에 나란히 누워 노래를 틀었다. 내가 6살 때 처음 웅변학원에서 재롱잔치 때 췄던 율동 노래, 이브의 경고부터, 싸이와 이재훈이 부른 낙원 등등, 추억의 옛 노래들을 플레이리스트에서 꺼내 들었다. 추억의 노래들이 앞으로 평생 기억에 남을 이 도시에 퍼지다니! 앞으로 이 노래들을 들을 때면, 이날 오후의 차브타트에서의 찬란한 햇살이 떠오를 것이다.


바다가 있는 곳은 여행자의 로망을 만들어주기엔 이미 충분하다.

특별한 액티비티를 하지 않아도, 그저 좋아하는 사람과 해변에 나란히 앉아 같은 노래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보니,  바다는 여행자의 신분을 확실하게 느끼게 해주는 장소이자 로망이 아닐까? 생각과 고민이 참 많은 나도, 바다 앞에선 모두 다 해제되는 걸 보니 바다는 참 신비로운 장소임이 틀림없다. 그러다 언젠가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잠시 설렘을 가져다주는 곳이기도-


그렇게 누워있다 일어나 바다 방향으로 마을을 쭉 둘러보기로 했다. 작고 소박한 정원이 있는 집들이 아기자기 모여있었다- 소박하고 편안한 느낌으로 진한 매력을 뿜어내는 곳이었다. 가는 길에는 공동묘지도 보였다. 경건한 마음으로 조용히 둘러보다 다시 동네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곤 두브로브니크로 향하는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많은 이들이 스쳐갔겠지만 오래 머무르지는 않을 이 정류장- 정해진 시간에 맞춰 사람들을 싣고 나가고 들어오는 버스들. 우리도 그중 한 사람이겠지. 아쉬움을 뒤로 한채 두브로브니크로 다시 향했다. 그리곤 시내로 돌아와 저녁을 먹으러 갔다.

사랑스러운 이는 사실 우리 여행이 시작되기 일주일 전 꼭 데려가고 싶어 예약한 곳이 있다며, 그 레스토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크로아티아의 마지막 밤에 더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주고 싶다며- 두브로브니크의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그런 곳이었다. 


아쉬운 건, 이렇게 좋은 날, 와인과 함께하지 못한 것.(다들 크로아티아 가서 그렇게 와인을 많이 마시던데 말이야) 술을 거의 못 마시는 그와 반모금씩만 먹다 남기고 왔다.  이렇게 말하면 와인 매니아라도 된 줄 알겠지만 절대 아니다. 사실 와인을 좋아하게 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원체 술을 입에 댄 게 1년 반 밖에 되지 않았으니, 좋은 와인을 식별하고 심오한 맛을 표현하기까지는 당연히 절대적으로 부족한 수준이다. 다만 대략 어떤 와인이 내 입에 맞을지는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여행 중 내내 아픔을 호소했던 나이기에, 혹시 알코올이 들어가면 다시 문제가 생길까 걱정하다, 크로아티아에서 마지막 밤이 돼서야 한 모금 마시고 테이블에 고이 올려두었다. 고작 그 한 입 마셔놓고는, 살짝 발그레해진 우리의 두 볼. 아이구, 아마 다른 이들이 봤다면 꽤 귀여웠을 것이다

뭐야, 쟤네 겨우 와인 한 잔에 저렇게 된다고, 뭐 이렇게 비웃을 수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다른 이들의 여행기를 보면서, 크로아티아에서 낮에도 해변에 앉아 와인, 매 끼 식사 시에 와인, 잠들기 전 가볍게 와인 한잔을 상상했건만, 그건 이루지 못해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여행은 건강이 우선이다.

두브로브니크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사랑하는 이와 저녁을 먹고 달을 보니 한 시가 생각났다. 바로 김용택 시인의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라는 시였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 김용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 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그렇게 크로아티아에서의 따뜻한 밤이 흘러갔다. 쉽게 잠들기 어려워, 옆에서 곤히 잠든 그를 두고 새벽 3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이제 우린 오전 8시 반 비행기를 타고 터키 이스탄불로 갈 것이다.


돌아보니, 크로아티아는 그런 곳이었다. 누구라도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 같은 사랑스러우며, 낭만 지수가 급상승하는 곳- 숙소마다 걸려있던 흰 그림액자마저도 모두 그리울 것이다. 


바다의 여유도 많이 그리워지겠지. 거리에 늘어선 노천카페에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도, 모래사장에서 아빠와 비치발리볼을 하는 꼬마들도, 술래잡기를 하는 한 연인의 모습도, 물장구치는 그를 보며 수건을 깔고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보았던 나도, 모두 다- 동적이거나 정적이거나, 그 순간의 일렁이는 바다의 모습이 어쨌든, 우리가 만난 해변은 자유 그 자체였다


잠깐 쉬어가는 시간은 필요한 듯하여, 손글씨로 적고 무질서하게 흩어놓았던 여행 중의 기록들을 한껏 모아 정리해본다. 터키에서의 기록은 다음 편에 소개하겠다.


우리의 12월 기록도 궁금하다면, 아래 킬리만자로 트래킹 글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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