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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LOG Mar 13. 2020

터키 이스탄불과 카파도키아에서 만난 자연과 문명

동서양 문명이 공존하는 그곳에서 나는 당신과 공존했습니다.

터키 이스탄불, 카파도키아 여정 중 짧은 기록
10월 8일 두브로브니크- 이스탄불로 이동

아침 8시 35분, 우리는 터키 항공을 타고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터키 이스탄불로 왔다.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한 일은, 유심칩을 구매하는 일. 그리곤 공항 게이트로 나와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에서 급히 짐을 풀고,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바로 한식당. 크로아티아에서 그토록 간절했지만 결국 가지 못했던 한식당을, 이스탄불에서는 반드시 가고 말겠다는 의지였다. 그곳에서 우린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주문했다. 밥을 먹는 동안 그는 리라화 폭락과 환율 전쟁, 금융 위기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는 늘 여행할 때마다, 그 나라의 리포트와 경제상황을 공부하는 듯했다. 덕분에 그와 여행할 때면 같이 마음이 풍성해지는 기분이다.

식당에서 나와, 제일 먼저 향한 곳은 파티흐 지역이었다. 이 곳에서 터키의 문화유산을 4시간 가량 돌아보고 나왔다. 터키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아나톨리아 반도에 위치해 있는데, 그런 지리적인 이유로 동서양의 문명이 공존하는 곳이라 꽤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먹은 군옥수수

유난히 이스탄불에는 구운 옥수수를 파는 노점상이 많았다. 우리도 옥수수 하나씩을 손에 들고 이동했다. 터키 아이스크림 쇼는 덤으로- 이태원에서 보던 터키 아저씨들의 아이스크림 쇼를 직접 이스탄불에 와서 보다니, 더 실감이 났다. 거리에는 터키 전통의상을 입고 사진을 남길 수 있는 곳도 있었는데, 시간 여유가 되면 우리도 한 장 남기려 했지만, 결국 남기진 못했다.


이스탄불에 있는 스타벅스에 갔다. 터키는 스타벅스 지수가 세계에서 가장 낮다. 이 말은 즉슨, 다른 나라보다 커피가 저렴하기 때문에, 아메리카노 그란데 사이즈도 한화 2500원이면 즐길 수 있다. 나는 이날, 이스탄불에서만 판다는 시그니처 음료를 시켰는데, 주문할 때 이름을 분명 'Kelly'라고 말했건만, 실제로 받은 컵에는 Helly라고 적혀있었다. Oh my god..


카페에서 밖으로 나와 탁심광장으로 향하는 트램을 찾았다. 트램을 타기 전, 거리에 있는 한 교통요금 충전대에서 카드를 구매해 요금을 결제했다. 처음에 기계 사용하는 법을 몰라 헤매고 있으니, 옆에 있던 한 터키 아주머니가 친절히 도와주셨다. 유난히 터키에서는 친절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기분 좋은 첫 날이다.


오후 내내 이 곳의 날씨는 흐렸다. 그래도 흐리면 흐린 대로, 또 그 나름의 분위기가 있으니, 우리는 날씨에 개의치 않고 일정을 진행했다. 드디어 도착한 탁심광장- 주변에 맛집도 많고 쇼핑몰이나 기념품샵도 많아 관광객이라면 꼭 들리는 곳 중에 하나이다. 탁심광장의 선셋은 잊지 못할 광경 중에 하나였는데, 이슬람 특유의 모스크 뒤편으로 붉은 노을이 지면,  꽤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다.


탁심광장을 쭉 돌아본 후 남쪽으로 걷다 보니 이스트클랄 거리가 나왔다. 이곳은 이스탄불에서 가장 번화가인 곳인데 서울의 명동 거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우린 터키 로컬의 할랄푸드를 손에 들고 열심히 사람들을 구경하였다. 

우리의 커플 머플러

그러다 베이욜로 쪽 세포라에 들어가 터키에서 유명하다는 메이크업 제품을 구경하고, 그 옆에 있던 가게에서 커플 머플러를 맞추기도 했다.

식당 천장에 붙여진 포스트잇 사이에 우리도 기록을 남겼다.

저녁은 현지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식당으로 갔다. 양꼬치를 파는 곳이었는데 역시 맛있더라. 계산할 때 보니, 식당 천장에는 이곳을 방문한 방문객들의 메시지가 가득했다. 나 역시 우리의 이름들 옆에 나란히, 곧 생일인 그를 위한 축하 메세지를 남겼다. 이후, Obelisk of Theodosius까지 보고 우리는 다시 숙소로 들어왔다. 이스탄불의 첫날은 그렇게 무난히 흘러갔다.


10월 9일 이스탄불 여정

아침 일찍 일어나 조식을 즐겼다. 전 날도 한식을 먹었건만, 여전히 한식을 찾는 나와 달리, 그는 정말 어떤 음식이든 잘 먹었다. 이래서 해외생활을 잘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야무지게 뭐든 맛있게 먹는 그를 보며, 나도 열심히 따라 먹었다. 옆 창문 너머로는 파란 해변을 따라 조깅하는 사람들과 갈매기도 모두 평화로워보였다. 이후 준비를 마치고 톱카피 궁전으로 갔다. 전 날과 다르게 날이 굉장히 좋았다. 여러 문화유산을 볼 수 있었던 곳이다.

그리곤 해변이 훤히 보이는 곳에 자리하여 점심을 즐겼다. 크로아티아에서도 그렇게 해변을 즐겼건만, 이스탄불의 해변을 보니, 또 그 나름대로의 설렘이 우리를 에워쌓다.

뒷 테이블에는 한국에서 오신 어머니들이 앉아계셨다. 영어로 주문하는 것을 어려워하시는 모습을 보고, 그는 또 친절하게 주문을 도와주더라- 못하는 게 없는 멋진 이다. 그리고도 배가 고파, 이스탄불에서 유명한 현지 식당에 가서 로컬 메뉴를 또 먹었다. 대단한 우리다.

돌마바흐체 궁전으로 향하는 페리 안에서

점심을 다 먹고 우리는 시내를 돌아보다 페리를 타고 돌마바흐세 궁전으로 향했다

돌마바흐세 궁전의 한 정원

돌마바흐세 궁전은 오스만 제국의 부흥을 꾀했던 압둘 메지드 1세가 건설한 궁전인데, 이스탄불의 신시가지인 보스포루스 해협에 위치해있다. 

이스탄불의 역사가 깃들어진 곳인만큼, 입구부터 낭만적인 건물들과 내부장식이 줄지어 우리를 반겼다.  궁전 내부는, 각 방 안 컬러에 맞춰 어울리는 빛깔의 가구와 장식품이 단정히 배치되어있었다. 드문드문 놓인 조각상과 그림 작품은 고급스러웠고, 유럽과 아시아에서 공수한 소품들은 호화로워 단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리곤 늦은 오후, 우리는 요즘 이스탄불에서 핫하다는 Balat 지구에 다녀왔다. 카페에서 라떼를 하나 사들곤 Balat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을 찾았는데 눈 앞에 버스를 두고 한참을 헤맸던 기억이 난다.

형형색색의 건물부터 디자인 소품들이 많았던 Balat은, 마치 서울의 홍대와 상수 같은 느낌의 힙한 곳이었다. 독특한 분위기를 뿜는 인테리어의 카페들도 유독 많았다. 


그중 우리의 눈에 들어온 곳은 벽화가 뒤에 가득 펼쳐져있던 한 공터였다. 한 때 댄스동아리에서 춤을 췄던 그는, 마음껏 이곳에서 프리스타일의 춤을 보여주었고, 그 모습이 자유로운 한 마리의 백조 같아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갈라타타워에서 마주한 이스탄불의 야경

버스를 타고 우리는 다시 중심지로 왔다. 갈라타탑에서 야경을 보기 위해서였다. 꽤나 긴 줄을 기다리고 나서야, 마침내 갈라타 지역에서 가장 높은 타워 전망대에 올라가 야경을 즐길 수 있었다.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해협인 보스포러스 해협과 골든혼 그리고 이스탄불 시내 전체를 볼 수 있었던 갈라타 타워에서의 야경- 하지만 이 타워의 본 목적은 오토만 시대에 화재와 적의 침입을 관찰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갈라타 타워에서 내려와 옆쪽으로 나가 걸어내려가니, 예쁜 거리가 있었다. 그 날따라 유난히 사람들이 많아서 봤더니, 드라마 촬영을 하고 있었다. 드라마 촬영 방식이 꽤 아날로그식이었지만 그런 구경마저 새로웠던 시간이었다. 

이 곳에서 그를 잡고 또 춤을 보여달라 했더니, 멋쩍은 미소와 함께 춤을 보여준다. 이곳에서까지 사랑스러운 그다. (위 영상이 바로 갈라타 타워 앞 그의 춤 영상이다. 컨셉은 게릴라데이트)

갈라타타워가 그려진 패브릭 액자는 우리의 소중한 인테리어 소품이 되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많은 기념품샵이 있다. 이스탄불의 마지막 밤을 기억하자며 우리도 이스탄불이 크게 새겨진 마그네틱과 함께, 전구가 달린 패브릭 액자 하나를 구매했다. 갈라타 타워가 그려진 액자였다. 액자를 계산하는 동안, 우리는 상인으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재작년 리라화의 폭락으로 그의 아내가 쿠웨이트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어 지금은 멀리 떨어 지낸다는 이야기부터, 이곳에서의 삶의 이야기까지 - 그곳의 시간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물건이 지금 우리의 공간에 있다는 건 참으로도 낭만적인 일이다. 손바닥 크기의 자석들과 액자는 터키에서 어떤 시간과 이야기를 가졌을까.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 숙소 주변에 있는 한 과일가게에서 잔뜩 과일을 사 가지고 와선, Daniem Rice의 노래를 방안 가득 틀곤, 마지막 이스탄불에서의 밤을 마무리했다.


10월 10일 이스탄불 - 카파도키아로 이동

이스탄불을 떠나는 아침이 되었다. 조식은 두브로브니크에서 가져온 라면을 계란 2개와 함께 끓여먹었다. 체크아웃을 하고 밖으로 나가니, 그 날은 날씨가 좋지 않았다. 하늘은 더 어두워졌고 설상가상으로 빗방울도 떨어졌다. 여행을 하며, 우리는 꽤나 날씨에 대한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구름인지 안개인지 시야를 뿌옇게 가려 신비롭게 보일 때쯤, 우린 이른 택시를 타고 이스탄불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호텔 픽업 서비스를 기다렸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가이드가 오지 않았다. 다른 서비스를 이용하려고 알아보던 차에, 우리 가이드가 그의 이름을 잘못 알고 다른 이름을 종이에 써서 들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아무튼 다행히 우리는 숙소에 도착했다.


카파도키아의 숙소는 내가 터키 여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기도 하다. 다른 이들의 여행기를 찾아보니 대부분 카파도키아 여행 시, 괴레메에 머물렀던데. 우리는 로컬 분위기를 더 느끼고싶어 우치사에 숙서를 두어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트립어드바이저에서 우치사를 검색하면, 제일 먼저 나오는 숙소였다. 도착하자마자 인포에 있던 스텝과 투어들부터 예약했다. 다른 투어들은 여차저차 다 예약했지만,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유명한 볼룬투어는 바로 예약이 어렵다고 했다.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던 스텝은, 그래도 최선을 다해 자리를 잡아주겠다며 약속했다.

우리가 마주한 고라메 네셔널 파크의 선셋

밥을 먹기 전 우리는 2시간 동안 택시를 빌려, 멋진 선셋을 볼 수 있다는 고라메 네셔널 파크에 다녀왔다. 택시 기사분께서는 영어를 하나도 못 하셨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편하게 택시를 타고 국립공원에 도착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다. 

마침 우리가 도착했을 때 해가 지고 있었다. 광활한 자연을 바라보며, 우리의 모든 고민과 걱정을 털어버렸다. 고민이 멀리 날아가는 듯했다.

카파도키아 와인과 함께한 우리의 저녁

돌아오자마자 우리는 숙소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 숙소는 우치사에서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도 같이 운영하고 있었다. 숙박객이었던 우리는 매일 그곳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었지만, 실제로는 사전 예약 없이는 방문도 어려운 곳이었다. 식전 빵부터 모든 디쉬가 다 맛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먹었던 로컬 음식 중 가장 한식 같은 요리이기도 했다. 이런 기분을 놓쳐버리기 아쉬워, 우리는 스파클링 와인을 한병 시켰다. 이름은 'KAPADOKYA (카파도키아)'였다. 역시나.. 각자 한 모금씩만 마시고, 다시 넣어두었다. 

카파도키아에는 작은 아기 고양이들이 많았는데, 특히 우리가 밥을 먹을 때면 옆에 누워, 발을 간지럽히곤 했다. 또, 이곳에서 만난 식당 직원도 기억에 남는다. 유일하게 아는 한국어가 '말랑말랑'과 '찐득찐득'이라며 우리를 보면 늘 반가운 목소리로, 말랑말랑 이렇게 인사를 건네곤 했다.


10월 10일 카파도키아 여정 - 그린투어

카파도키아에서의 아침은 일찍 시작되었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세수만 간단히 하고, 숙소 주변에 있는 우치사 동굴에 갔다. 일출을 보기 위해서였다. 새벽 6시에 도착했건만, 이미 많은 이들이 해가 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씩 어두운 하늘에 붉은빛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 위론 열기구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치사에서 마주한 일출

보통 사람들이 카파도키아에 오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열기구를 보기 위함인데, 사실은 나도 그랬다.그러나 하루에 뜰 수 있는 열기구가 한정되어있다 보니, 예약 없이는 이용이 어려웠다. 그래서 실제로 이 열기구를 타보지 못하고 여행을 마치는 사람들도 꽤 많다고 한다. 이 곳의 볼룬 투어의 경우 카파도키아의 한 회사가 다 독점하고 있다던데- 그래서 가격이 매일 제각각이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온 이상, 내일은 꼭 열기구를 탈 수 있길 바라며- 하늘 위 둥둥 떠다니는 형형색색의 열기구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일출을 보면서 우리는 옆에 있던, 5명의 네덜란드 RSM MBA 친구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모두 다른 나라 출신의 5명은, 학교를 다니기 전 해왔던 직업과 앞으로 하고 싶은 사업에 대해 소개해주었다. 이어 오빠도 그들에게 우리를 핀테크 커플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곤 가까운 미래에 우리도 함께 너희처럼 외국으로 공부하러 나갈 거라고 소개했다 :) 대화하면서 알고 보니, 이들의 숙소도 우리와 같은 곳이라길래, 점심 약속을 잡았다. 나도 해외에 나가면 한 친화력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처음 본 사람들에게도 먼저 다가가 대화를 시도했고, 재밌는 유머로 웃음을 전하는 이였다. 그렇게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금세 하늘엔 해가 떠있었다.


조식을 먹기 위해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역시 우치사 제일의 맛집이란 사실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조식도 맛있었다. 현지 음식은 물론, 신선한 샐러드와 7가지 종류의 치즈, 4가지 맛의 쨈과 빵을 직접 만들어 하나씩 가져다주었다. 나는 그 중에서도 이곳의 로즈 잼을 잊지 못한다. 기회가 된다면 로즈잼을 올린 그 빵을 또 먹어보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데린쿠유 지하도시 내부

그리고는 바로 그린투어를 떠났다. 그린투어는 오전 10시반부터 오후 5시까지 풀로 진행되었다. 스머프 마을의 배경지가 되기도 했다는 괴레메가 바로 그린 투어의 코스이다. 처음 도착한 곳은 바로 지하 85m, 지하 8층 규모의 데린쿠유 지하도시이다. 로마제국의 종교박해를 피해 온 초기 그리스교도인들이 숨어 지낸 곳인데 이 지하에 예배당, 침실 부엌 등 다양한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다음은 우리가 가장 신이 났던 으흘랄라벨리 트래킹이었다. 오른쪽으로 흐르는 물과 함께, 그와 손을 잡고 걸었던 이 길. 물속 카페에 앉아 지인의 성대모사를 따라 하며 시시콜콜 웃어대기 바빴던 시간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들만큼 행복했다. 그렇게 우리의 그린투어의 시간이 끝났다. 그린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인포에 있던 스텝분이, 다음 날, 우리의 볼룬투어 일정이 잡혔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우리가 구매한 이용권은 210불 이었다)


저녁을 먹기 전, 시내를 바쁘게 돌아다닐 수도 있었지만, 우리는 여유롭게 숙소에서 만난 친구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곤 숙소 근처에 있는 우치사성에 들렸다. 이곳에서 선셋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 곳에서 그는 두 번째 귀여운 춤 영상을 남겼다- 언제 봐도 행복해지는 그의 움직임은 여행 중 나의 가장 큰 활력소였다. 선셋까지 다 본 우리는 같은 식당에서 새로운 메뉴로 저녁을 즐겼다.


이스탄불에 이은 카파도키아의 여행도 어느덧 중반부를 넘어섰다. 화산이 만들어놓은 자연들을 보며, 카파도키아는 나날이 신비로웠지만 쌓여가는 여독을 어찌할 도리가 없어 체력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카파도키아의 마지막 밤은 9시쯤, 잠이 들기로 했다. 


10월 11일, 카파도키아 여정 - 볼룬투어, 러브 밸리 ATV 투어
새벽 6시, 열기구를 올리기 전, 준비 단계

대망의 열기구 투어 (볼룬투어)를 하는 새벽이 되었다. 아침 일찍부터 머플러까지 단단히 둘러 입고, 우리를 픽업하러 온 봉고차를 타고 열기구를 타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른 새벽부터 많은 사람들이 우리처럼 열기구 투어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간단한 다과를 먹으며, 열기구 투어에 대한 주의사항을 들었다.

춥고 졸려 연속 하품하기 바빴던 나를, 그는 열심히 담았다.

춥고 졸렸지만, 내 손을 잡아주며 이 차가운 공기마저 따뜻하게 해주는 그 덕분에, 행복한 새벽을 맞이할 수 있었다. 우리는 RSM 친구들과 같은 열기구를 타게 되었다. 출발 직전, 파이팅하는 사진을 남기자마자 열기구는 하늘을 향해 높이 올라갔다. 

열기구는 쉬익 쉬익 소리를 내며, 천천히 저 위로 올라갔다. 피존밸리부터 시작해 조금씩 대자연의 모습이 내 눈에 펼쳐졌다. 전날 보았던 기암괴석들이 한눈에 들어오던 순간이었다. 연속으로 우와를 외치며 행복해하는 내 옆에는, 그런 나를 환히 쳐다보는 그가 있었다. 그렇게 열기구 투어는 1시간가량 진행되었다. 

열기구 투어를 함께 했던 RSM MBA 친구들

그리곤 무사히 열기구가 땅으로 착륙했다. 높은 하늘 위에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었던 시간- 우리는 이 시간을 오래 기억하자며 샴페인과 함께 아침을 시작했다.

우리의 ATV와 함께

조식을 먹고 우린 ATV 투어를 다녀왔다. 그 날 저녁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였기 때문에, 다른 투어를 신청하기에는 시간이 애매했다. 그래서 우리는 가고 싶었던 로즈밸리의 몇 개의 장소들을 선정해, ATV투어로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나를 뒤에 태우고 그가 저 모래를 달린다. 모래가 자꾸 눈에 들어가 눈을 뜰 수 없었지만, 어렴풋이 보이는 기암괴석과 이 자연이 대략 어떤 모습일지는 느낄 수 있었다. 국립공원에서 마지막 그의 세 번째 춤 영상을 남기고, 우리는 레드 로즈 벨리를 끝으로 우린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터키의 영롱한 하늘과

이제 진짜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우리는 터키에서 좋은 친구들도 만났고,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도 가졌다. 어렴풋하게나마 터키 사람들의 삶의 단편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그 순간이 아쉬워 이제 곧, 이 곳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싶었다. 그렇게 다음을 기약하며 우린, 모든 짐을 챙겨 카파도키아 공항으로 갔다.  


10월 13일, 한국 도착
이스탄불 공항 전경

이스탄불 공항에서 환승하여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리곤 10월 13일 저녁, 우린 한국에 도착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들린 곳은 인천 국제공항의 한식당. 한식 먹고 싶다고 10일 여행기간 동안, 노래를 불렀던 나였다. 

한식을 보자마자 여태껏 음식을 보며 지었던 표정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행복한 미소를 보이니 그가 마구 사진을 찍는다. 그리곤, 나의 건강에 조언을 주었던 의사 선생님께 내 사진을 보내더라. 의사 선생님의 여자 친구도 나처럼 해외 여행을 가면 한식만 찾는다며, 다음 여행을 갈 땐, 꼭 한국 음식 잔뜩 챙겨가라고 조언을 주었다. 그 덕분에 12월, 우리의 아프리카 여행 때는 아낌없이 한식을 먹을 수 있었다 - 

여행을 마치며

이번 여행은 우리의 첫 해외여행이었다. 여행을 가기 전, 우린 여행 메이트로서 서로가 잘 맞을까, 고민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그도 어떻게 일정을 짜야 내가 좋아하고, 재밌어할지에 대해 매일을 걱정했다고 했다. 

겉으로 봤을 때, 나는 이미 또래에 비해 많은 곳을 다녀왔기도 했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찾아가서 먹었을 것 같았다고- 나에게 새로운 것, 재밌는 것,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보여주고 싶은데 이미 다해봤을 것 같아 걱정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여행을 마치고 돌아보니, 고민이 눈 녹듯이 사라질 만큼, 행복에 겨운 여행이었다. 그의 표현이 참 예뻤다. 그가 다시 알게 된 나의 모습은, 화려한 것을 보거나 맛있는 것을 먹는 것보단,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항상 같이 좋아해 주는 사람이라 표현했다. 그가 어떤 풍경을 보고 좋아하면, 그 옆에서 2배로 더 좋아해 주는 내가 있었고, 그가 즐겁다고 느낄 때면 2배로 더 즐거워해 주는 내가 손을 잡고 있었다고- 그러니, 고민 없이 '그가 좋아하는 것'을 내게 보여주면, 나도 좋아할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고 했다.


정확했다. 나는 입이 고급스럽지 않아, 아무리 비싸고 좋은 음식을 먹어도 그 맛을 잘 모른다. 그래서 파인 다이닝보다는, 소소하게 차려져 있어도,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로컬의 맛을 더 사랑한다. 그럼에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정갈하게 차려진 한식이다. 아무리 좋은 술을 마셔도 하루 지나면 그 술의 이름조차 까먹기 때문에, 그저 곁에 있었던 옆 사람과, 함께 하는 순간만을 기억할 뿐이다. 좋은 5성급 호텔보다는 현지를 더 느낄 수 있는 에어비앤비나 호스텔을 선호하며, 화려한 도시보다는 나를 구성하는 자연을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도 그런 사람이었다. 평소에는 소박하게 소비하면서도, 서로의 일과 우리의 행복에 있어서는 적당히 소비할 수 있는 사람- 얼굴과 말투를 넘어, 소비 방식과 여행 방식, 취미마저 닮은 그가 나는 참 좋다.


그는 우리의 행복한 여행을 위해, 구체적인 디테일까지 모두 챙겨주었고, 무척 피곤했을 텐데도 아픈 내 상태를 챙기느라 바빴다.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하는 그는 표 끊기, 주문하기와 같은 귀찮은 일도 도맡아 했으며, 편한 자리와 좋은 순서는 늘 내게 양보하곤 했다. 사실 혼자 여행을 주로 해왔던 나였기에, 혼자 여행이 더 익숙할 거라 생각했다 -공원에서 하염없이 멍을 때려도, 밥을 한 시간씩 먹고 종일 걷기만 해도 아무도 건들지 않는 여행이 주로 내가 하던 여행 이었으니. 그러나 혼자 여행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어느 순간 외로움도 더 잘 타게 된 것 같다- 입이 떡 벌어지는 황홀한 광경을 눈 앞에 두고, 감흥을 공유할 수 있는 이가 있다면 더 행복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여행이 더 의미 있었는지 모른다. 이제 터키에서 마주한 이 멋진 풍경을 오랫동안 함께 기억할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일 테니-  


우리가 다짐했듯, 우린 앞으로 더 많은 여행을 함께 할 거다. 파타고니아, 남극, 캐나다 옐프, 아니면 몽골? 생각만으로도 설레는 밤이다. 



오빠, 다시 여행에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일상에서도 가끔은 여행에서 누렸던 아름다운 일출과 일몰의 순간들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실내에 갇혀있다가도 높고도 넓은 하늘을 보며, 하루를 돌아보고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지치고 힘들 때마다 우리가 마주한 무수히 행복한 날들을 떠올리며 이겨내자. 


나와 함께 해주어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터키 친구의 말을 잠깐 빌려 표현하자면, 당신과 함께 한 여행은 말랑말랑 마음이 따뜻한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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