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풀과 울버린> 리뷰
지난 2010년대 ‘마블 스튜디오’는 영화 시장을 주도했다. 인기 시리즈 ‘어벤저스’를 비롯해 수많은 히어로 영화들이 영화계에 쏟아졌고 결국 ‘마블 스튜디오’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영화 제작사가 되고야 말았다. 하지만 해가 지지 않는 하늘은 없다. 언젠가는 해가 지는 법. 마블과 그 영화 시리즈는 <어벤저스 : 엔드게임> 이후에 그 화제성과 인기를 차츰 잃어가고 있다. 그 이후로 나온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사람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해 사람들의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던 중 20세기 폭스의 인기 시리즈 <데드풀>이 디즈니(마블 스튜디오 측)의 20세기 폭스 인수로 마블 세계관에 합류하게 되었다. 닥터 스트레인지도, 토르도 하지 못한 마블의 구원투수. 과연 데드풀은 그의 대사처럼 “마블 지저스”가 될 수 있었을까.
나의 개인적인 감상평을 말하자면 나는 재밌게 봤다. ‘데드풀’ 자체에 대한 호감도 있었고 ‘울버린’에 대한 반가움도 있었다. ‘휴잭맨’이 다시 연기하는 ‘울버린’에 대한 위상은 그의 전작 영화들을 모두 보지는 않았음에도 충분히 실감했다. 하지만 ‘데드풀’이 말한 대로 위기에 빠진 ‘마블’을 구할 구세주라는 표현에는 나 역시도 동의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나의 이런 평가와는 별개로 이 영화는 개봉 후 극심한 호불호를 겪고 있다고 한다.
<데드풀과 울버린>을 보면서 나의 취향에 대해 새롭게 알아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잘 몰입해서 봤고 등장인물들이 치는 개그의 100프로를 알아듣지는 못했어도 어느 정도 눈치로 유추했고 재미를 느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 시청한 다른 리뷰 영상들이나 읽은 글들에서 정말 재미없다고 한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많이 놀랐다. 재미없다는 그들의 의견에 놀란 것이 아니라 그들이 비판한 내용에 나도 다수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나는 첫인상이 좋으면 웬만하면 그 콘텐츠를 재밌게 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첫 오프닝 시퀀스를 뽑을 것이다. NSYNC의 <Bye Bye Bye>에 맞춰 <로건>에서 퇴장한 ‘울버린’의 묘를 파묘하고 그 뼈로 싸우는 장면에서 ‘데드풀’이 어떤 캐릭터인지 확실하게 보여주었고 나는 이미 이 영화에 빠져버린 셈이다.
이번 <데드풀과 울버린>은 진입장벽이 상당히 높다. <데드풀 > 시리즈의 3번째 영화인 동시에 <엑스맨>부터 등장한 ‘울버린’이 등장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10편이 넘는 영화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고 새롭게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데드풀’이 편입되는 것이므로 관련 드라마도 포함하면 진입장벽이 확실히 높다. 사실 나는 <데드풀과 울버린>을 보기 전에 다른 <데드풀> 시리즈를 보지 않았다. 또한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역인 ‘울버린’이 등장한 영화도 작년 <무빙> 때문에 결제한 디즈니 플러스에서 본 <엑스맨 > 트릴로지가 전부였다. 아마 실제 관객들 중에는 나 같은 경우가 상당히 많았을 것이라 예상된다.
관련 영화가 이렇게 많다는 것은 사실 10년이 넘게 운영된 온 MCU의 숙제라고 생각한다. 비단 이번 영화뿐 아니라 최근에 나온 <닥터스트레인지>나 <토르>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졌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영화 한 편을 감상하기 위해 10편이 넘는 작품들을 왜 봐야 하며 안 본 사람들은 어떡하냐는 사람들의 지적이 있었고 나도 어느 정도 공감이 갔다. 또 한편으로는 이것이 바뀐 ‘마블’의 전략 같기도 했다. 해외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영화관 티켓 가격이 상승된 후로 영화의 판도가 많이 바뀌었다. 남녀노소가 모두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기보다는 확실한 타겟층을 정하고 그들을 공략하는 방식의 영화들이 확실히 늘었다고 생각한다. 이미 <인피니티 워>나 <엔드게임> 때의 영광에서 멀어졌다는 것을 인지하고 다수를 공략하는 영화보다는 확실한 타겟층을 정해 그들이 N회차해서 관람하는 것이 더 흥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번 <데드풀과 울버린>에는 이런 ‘마블’의 전략이 확실하게 드러나 있다고 생각한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닥터스트레인지: 대 혼돈의 멀티버스>, <플래시> 등 최근 들어 다른 차원의 캐릭터가 또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 세계를 구하는 내용의 스토리가 빈번하게 나오고 있다. 초반에는 색다른 버전의 캐릭터나 신선한 콜라보로 꽤나 반가웠지만 지금에서는 오히려 지겹게 느껴지는 것이 이 ‘멀티버스’라는 설정이다. 한편으로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나 DC의 <플래시>처럼 영화 외적인 사정으로 그 이야기를 끝맺지 못한 여러 아이디어들, 그리고 캐릭터들에 대한 리스펙의 수단으로 ‘멀티버스’라는 설정이 사용되기도 한다.
이번 <데드풀과 울버린> 제작 전에 <데드풀> 시리즈로서는 큰 사건이 있었다. 바로 <디즈니>의 <20세기 폭스> 인수였다. 이미 거대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디즈니>의 MCU는 그렇게 새롭게 흡수한 <20세기 폭스>의 영화화된 슈퍼히어로 세계관들을 정리하고 새롭게 리부트 하기로 했다. 이런 식으로 정리되는 세계관은 비단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에 <스파이더맨> 시리즈들이 그랬고 DC에서도 <저스티스리그> 세계관 역시 그런 과정을 겪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상처받는 건 그 시리즈를 사랑했던 팬들이다. 이야기의 끝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어벤저스: 엔드게임> 같은 화려한 퇴장만이 아닌 작더라도 나름대로의 매듭을 팬들은 보고 싶어 할 것이다. 이번 <데드풀과 울버린>에서는 <20세기 폭스>의 세계관이 정리되고 <데드풀> 시리즈를 새롭게 MCU에 편입시키는 영화다. 그 과정 속에 앞서 말한 이런 수많은 세계관들, 혹은 그 캐릭터들을 완벽하게 매듭짓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사라져 갈 많은 세계관들과 캐릭터들을 한 번이라도 더 조명해 준 것이 어딘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브레인스토밍을 하다 보면 많은 아이디어들이 폐기된다. 그중에선 직접 실천에 옮기기까지 한 아이디어들도 있을 것이고 아예 초기에 버려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창의적인 생각은 이런 아이디어들이 쌓이다가 생겨나는 것이다. <데드풀과 울버린>의 세계관 정리는 창작 과정에서 잊혀 간 그리고 잊혀 갈 아이디어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한 영화라는 느낌도 들었다. 미처 끝내지 못한 이야기_ <데드풀과 울버린_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