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흑백 요리사> 감상문
<피지컬 100>, <더 인플루언서> 등 최근 넷플릭스에서 제작하는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들이 연이어 히트를 치고 있다. 2010년대에 독설과 정치질 등으로 거친 맛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시대가 지나 존중과 인성 그리고 실력 등을 갖춘 참가자들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번에 9월 들어 새롭게 출시한 서바이벌 예능은 <흑백요리사>다. 2010년대 방송계의 큰 트렌드였으나 점차 화제성이 떨어져 간 ‘요리’라는 카테고리가 넷플릭스와 서바이벌을 만나 어떤 조화를 이룰지가 관람 포인트였다.
<흑백요리사>는 외식사업의 대부 ‘백종원’과 국내 유일의 미슐랭 3 스타 셰프인 ‘안성재’를 심사위원으로 삼고 100명의 요리사들을 초청해 서바이벌을 벌이는 프로그램이다. 100인의 셰프들은 대중들에게 이미 알려진 20명의 스타 셰프인 ‘백수저’와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실력은 보장된 ‘흑수저’로 나뉘어서 경쟁한다.
<흑백요리사>가 큰 흥행을 거두고 있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다. 그중에서 첫 번째는 단연코 화려한 ’ 백수저‘ 라인업이다. 중식의 대가 ’ 여경래‘ 셰프부터 대통령들이 사랑한 셰프 ’ 안유성‘ 명장, 미국 아이언 셰프 우승자 ’ 에드워드 리‘, <냉장고를 부탁해> 등의 요리 프로그램으로 유명해진 ’ 최현석‘ 셰프 등 어디 가서 심사위원을 해야 할 사람들이 플레이어로서 요리 경연에 참가한다는 것이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인간의 역사상 가장 흥분되는 주제 중 하나인 가장 강한 자가 누구인가가 눈앞에서 펼쳐질 순간이다.
이들은 사실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큰 사람들일 수도 있다. 이 프로그램이 잘돼서 본인의 식당을 어필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괜히 경연에서 탈락해 본인의 명예도 잃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각자 여러 가지의 이유로 이 경연에 참가했다. 아직 플레이어로서 뛸 수 있다는 본인의 가치를 보여주고 싶은 사람도 있고, 또 후진 양성을 위해 그들에게 동기부여를 주고 싶어 나온 사람도 있다. 그들의 이런 도전이 멋있었고 이를 존중하고 대우해 주는 제작진의 노력이 많은 호응을 얻을 수 있게 했다고 생각한다.
이번 <흑백요리사>를 통해 미식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전에는 사실 미식이란 호불호의 영역이며 비싸기만 한 고급 요리와 이를 만드는 요리사들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대중적인 요리보다 뛰어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타깃을 명확히 공략해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는 대중적인 요리가 더 대단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흑백요리사>에 나오는 100인의 요리사들의 갈고닦은 테크닉들과 열정을 보니 그동안 내가 놓친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심사위원 중에 ‘안성재’ 셰프는 심사 시 요리사의 의도를 물어본다. 처음엔 아니 예술도 아닌데 의도가 중요할까 싶었다. ‘안성재’ 셰프는 요리사라면 의도는 명확해야 하고 요리사라면 그 의도를 정확하게 손님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이 머리를 한 대 친 것 같았다. 미식은 취향의 영역이 맞다. 하지만 요리사들이 갈고닦는 실력이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는 것뿐 아니라 정확히 자기가 원하는 맛을 내는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1에서 10까지 맛이 있을 때 내가 언제든지 어떤 숫자의 맛을 낼지 컨트롤할 수 있다면 대중의 입맛 또한 충분히 맞춰 나갈 수 있다. 깨닫고 나니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인데 그동안 왜 몰랐을까 하는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대중적으로 이미 유명한 ‘백종원’ 심사위원과 더불어 ‘안성재’ 셰프가 심사위원으로 뽑힌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식극의 소마>라는 일본 만화에는 ‘식극’이란 대결이 있다. ‘식극’이란 요리사들끼리 자신의 요리를 가지고 상대 요리사와 대결을 펼치는 걸 말한다. 만화 속에서는 이름값 높고 포스 넘치는 인물들이 요리대결을 펼쳐 흥미로웠다. <흑백요리사>는 이런 만화의 ‘식극’을 현실로 구현해 냈고 그에 걸맞은 화려한 요리들을 선보였다.
사실 요리 경연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쉽지 않다. 매체의 특성상 그 요리의 냄새와 맛은 시청자에게 전달해 줄 수 없다. 거기다 맛이라는 것은 상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이를 평가하고 그 결과를 대중에게 납득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 <흑백요리사>는 위의 어려움을 ‘백수저’의 화려한 라인업과 ‘흑수저’의 고수들의 퍼포먼스로 해결해 나갔고 이들의 흥미진진한 ‘식극’으로 화제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 박수받을만하다.
<100명의 요리사 근데 이제 식극을 곁들인_ 흑백요리사 감상문_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