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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 강동원, 그리고 그들이 진정 바랐던 것

<전, 란 > 감상문

by 오윤

몇 년 전 현재는 유튜버 침착맨이 된 이말년 작가의 <이말년 시리즈>라는 작품을 봤을 때였다. <조선쌍놈>이라는 에피소드였는데 잘생긴 노비와 못생긴 양반의 이야기였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양반이라고 항상 품위 있고 노비라고 못생길 필요가 있나?”


그리고 현재, 나의 이 작은 생각을 자기 작품에 넣은 감독이 있었다. 바로 <전, 란>의 감독 ‘김상만’이었다.


<전, 란>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영화로 조선 최고 무인집안의 아들 ‘종려(박정민)’와 그의 몸종 ‘천영(강동원)’이 중심이 되어 전개된다. 주로 조선시대의 신분으로 인한 사회계층의 갈등을 주제로 삼는 가운데 임진왜란으로 인해 친구였던 두 인물이 어떻게 변하고 대립하게 되는지가 주요 관람 포인트다. 재밌는 점은 ‘김상만’ 감독이 강동원 배우를 양반이 아닌 몸종인 ‘천영’ 역에 캐스팅을 했다는 것이었고 이 과정에 실제로 이말년 작가의 <조선쌍놈>이 영향을 미쳤다는 인터뷰가 있었다는 것이다.

양반 박정민과 노비 강동원

화려한 액션씬

노비 강동원이라는 자극적인 키워드에 이끌려 영화를 봤지만 <전, 란>의 액션에 감탄했다. 물론 작중 주요 등장인물이 최고 무인 집안이라는 설정에 배경이 임진왜란이라고 들었을 때 액션씬에 대한 어느 정도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전, 란> 영화는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것뿐 아니라 고봉밥을 주었다. 과장을 좀 보태면 영화 내내 쌈박질만 한다. <군도>에서 이미 검증이 된 강동원의 검술 액션은 물론이고 박정민과 일본군을 연기한 정성일의 검술 액션도 훌륭했다. 특히 일본군 ‘깃카와 겐신’을 연기하면서 일본도를 사용한 정성일 배우는 일본 검술 특유의 자세들을 잘 살려 보는 재미가 다채롭게 했다.


다양한 무기들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임진왜란을 배경을 한 영화라 의병군들도 등장했는데 의병 군은 양반뿐 아니라 일반 백성, 천민 등 다양한 사람들이 소속되어 그 쓰는 무기가 다양했다. 사극 단골손님 활은 기본이고 우리에겐 익숙하진 않은 범동의 편곤, 막내의 돌팔매 등 캐릭터들마다 개성을 살린 무기들이 등장해 좋았다.

다양한 무기들로 채워진 액션 신들

그 시대 천민들이 진짜 바랐던 것

영화 내적으로 보면 청의검신 천영붉은 소매 종려의 신분을 뛰어넘는 인연도 인상 깊었지만 나는 그보다 신분제에 대한 이야기가 더 눈에 밟혔다. 영화 <전, 란>은 평상시 신분제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하던 천민들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주인들에게 복수하면서 시작한다. 왕이 피난을 갈 정도라면 신분제를 유지하던 시스템이 흔들린다는 뜻, 그 계산을 마친 천민들이 양반들에게 반기를 든 것이다. 하지만 복수를 마친 천민들은 자기들끼리만 뭉친 것이 아니라 희한하게도 양반인 김자령 장군이나 책사양반에 휘하에 들어가 의병활동을 했다. 어째서였을까?


나는 <전, 란> 속 다른 주제가 리더십이라고 생각한다. <전, 란>에서는 여러 리더들이 존재한다. 크게는 임진왜란 당시의 왕, 선조(차승원)가 있고, 의병들의 리더였던 김자령(진선규) 장군이 등장한다. 작게는 여러 식솔들을 거느린 양반들도 존재한다. 임진왜란이라는 위기가 닥치자 백성을 버리고 도망치는 선조를 습격하는 백성들의 모습, 자신들을 핍박했던 이들과 같은 신분이지만 의병 대장인 김자령을 존경하는 백성들의 모습, 영화는 두 리더와 관련해서 다른 묘사를 했다. 만약 이 영화의 주제가 단순히 신분제에 대한 비판이었다면 김자령 장군의 비중은 거의 사라졌을 것이다. 그 대신 영화는 같은 상위 계층의 사람이지만 다른 리더십을 보인 두 사람을 대비시켜 ‘리더십’과 신분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리더 김자령 장군(진선규)

리더 자리에 오르는 것은 항상 피나는 노력이 동반되지는 않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우연히, 혹은 다른 외부의 도움으로 그 자리에 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권위를 앞세워 사람들을 힘으로만 누른다면 그 힘이 흔들리는 순간 바로 그 자리를 위협받는다. 반면 자신의 능력을 항상 입증하고 사람들에게 의지할 수 있는 면모를 보여준 리더는 진심으로 사람들이 따른다. 피난길에 공격받는 선조와 천민들에게 지지를 받는 김자령의 대비는 이런 주제의식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사실 양반들에게 복수했던 천민들이 원하는 것은 그들이 지배계층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생존만을 바라며 지배계층이 리더다운 모습을 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양반과 노비면서 서로 친구인 종려와 천영의 관계, 부패한 양반들만 처단하는 의병들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처럼 영화는 단순히 신분제 나쁘니까 양반도 나빠하고 비판하는 것보다 신분제 속에서 혜택을 받은 자들이 보여줘야 할 리더십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로 선택했다. 이는 신분제에 대한 비판을 다루는 더 세련된 방식이다.

백성들에게 피난길에 공격받는 리더 선조(차승원)

신분제라는 개념을 교과서에서 글로만 배웠다. 내가 그 시대에 직접 살지 않았기에 궁금한 점이 몇 가지 있었다. 신분에 대한 순응은 어느 정도였을까? 혜택을 받은 양반들은 무조건 나쁘거나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봐야 하나? 21세기는 신분제도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계층 간의 갈등은 여전히 존재한다. 사극에서 천민들과 대비되는 양반을 보고 종종 우리는 양반은 나쁘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쩌면 21세기의 우리는 누군가에게 제도의 혜택을 받은 양반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선조김자령의 이야기처럼 우월감도 죄책감도 가지지 않고 내가 마땅히 가져야 할 내 위치의 리더십을 길러야 하진 않을까? 처음엔 노비 강동원이라는 자극적인 키워드에 이끌려 영화를 봤지만 끝내는 사회 갈등과 리더십까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노비 강동원, 그리고 그들이 진정 바랐던 것 _전, 란 감상문_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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