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2 감상문
2015년이었다. 황정민 배우가 연기한 ‘서도철’ 형사와 그의 수사 팀이 권선징악을 주제로 통쾌한 액션 수사를 펼치는 영화 <베테랑>이 영화계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나 “어이가 없네” 등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었던 많은 명장면과 명대사들을 쏟아냈던 흥행작이었다. 그로부터 9년이 흐른 2024년, 추석을 맞이하여 후속작 <베테랑 2>가 돌아왔다. 그 사이 영화계에서는 <범죄도시> 시리즈와 <극한직업>등 비슷한 결의 영화들이 대히트를 쳤던 만큼 어떤 모습으로 <베테랑 2>가 돌아올지 많은 사람들이 큰 관심을 가졌다.
<베테랑 2>는 전작 <베테랑>과 같은 세계관으로 전작의 사건으로부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의 시점을 배경으로 했다. 기본적으로는 전작의 형사팀들 대부분이 이어서 나오고 여기에 새로운 팀원으로 정해인 배우가 맡은 ‘박선우’라는 인물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공개된 예고편을 보면 영상의 톤 앤 매너가 전작과는 사뭇 다르게 어두운 분위기를 품고 있어서 개봉 전부터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아냈다.
예고편에서도 어느 정도 드러났듯이 이번 <베테랑 2>는 전작 <베테랑>과 많이 달랐다. 전작 <베테랑> 이 쉬운 스토리와 통쾌한 액션 그리고 타율 높은 개그로 승부했다고 하면 이번 영화는 좀 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 비교적 진중한 영화가 되었다. 전편에서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한 주인공 ‘서도철’의 서사와 캐릭터에 집중했고 그 결과 비교적 개그의 비중이 많이 줄어들었다. <베테랑>의 바뀐 분위기는 영화를 기다리던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 결과 개봉 후 이 영화의 호불호가 갈리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베테랑>의 파격적인 변화에 떠오르는 시리즈가 하나 있었다. 바로 마동석 주연의 <범죄도시> 시리즈다.
<범죄도시> 시리즈 또한 1편과 그 후속작의 분위기가 상당히 다른 영화다. 1편이 누아르 물에 어느 정도 잔혹성이 가미되었다면 2편부터는 <범죄도시> 시리즈의 ‘마석두’ 형사의 코미디와 캐릭터를 살려 좀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었다. <범죄도시> 시리즈도 1편의 무거운 분위기를 좋아했던 사람들에겐 아쉬운 소리를 들었지만 어쨌든 그 결과 2,3,4편이 모두 천만을 넘은 엄청난 흥행을 이루어냈다. 반면에 <베테랑> 시리즈는 <범죄도시> 시리즈와는 반대로 갔다. 장점이었던 코미디를 줄이고 오히려 무게감을 키우는 방향을 선택했다. <범죄도시>가 지향했던 가벼운 코미디 영화였음에도 왜 <베테랑> 시리즈는 반대로 진중한 분위기의 영화로 가는 승부수를 띄웠을까?
내가 감히 추측해 보자면 “9년 만의 후속작”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작 <베테랑>의 최대 장점은 코미디였다. 하지만 코미디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휘발성이다. 아무리 웃긴 영화라도 시간이 지나서 다시 개봉한다면 새롭게 유입된 사람들이 똑같이 즐길 수 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물론 기존의 봤던 사람들 중에는 다시 봤을 때도 웃기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수만큼의 사람들이 “다시 보니 유치하네.”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코미디다. 게다가 창작물에서 코미디라는 분야는 쉽게 바꿀 수 없는 부분이다. 제작진의 유머 코드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이제 와서 트렌드에 맞춰 바꾸기에도 쉽지 않다. 결국 9년 만의 후속작에도 기존의 유머코드가 그대로 쓰인다면 대중들에게 먹히지 않을 거라고 분석했을 거라 생각된다.
여기에 <범죄도시> 시리즈와 <극한직업>도 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형사와 범죄를 소재로 다루는 코미디 영화라는 점에서 이 두 시리즈와 <베테랑> 시리즈는 상당히 포지션이 겹친다. 만약 2가 흥행해 3편, 4편 등 지속되는 시리즈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 두 시리즈와 차별성이 있는 <베테랑>만의 새로운 포지션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베테랑> 제작진은 전편과는 다른 분위기를 가져가지 않았을까.
<베테랑 2>는 전작과 차이를 주면서 주인공 ‘서도철’의 서사에 집중했다. 원래 ‘서도철’이라는 인물은 불의를 보면 못 참는 형사정도로만 묘사되었다. 그 덕에 다소 평면적인 열혈 형사 정도로만 느껴졌다. 후속작을 통해 제작진은 ‘서도철’ 형사에 대해 입체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싶어 했다. 이를 위한 장치로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서 대두되고 있는 사회이슈들을 소재로 끌어 가져왔다. 사법기관의 수위 낮은 처벌, 사이버 렉카의 가짜 뉴스 등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얼마든지 접할 수 있는 사회문제들이었다. 특히 두드러졌던 사회 문제는 사적제재였다. 현재 우리의 사법기관이 내리는 처벌이 약하다고 판단하여 한 개인이 무력으로 이들에게 처벌을 가하는 것을 사적 제재라고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서 죄를 저지른 이들에 대한 더 강한 처벌을 원한다는 자극적인 글들에서 파생된 개념으로 현실에선 아직 보기 힘들지만 최근 창작물에서 많이 주목받는 소재다. 대표적으로는 디즈니 플러스 드라마인 <비질란테>나 <국민사형투표> 등이 있다.
사적 제재라는 것은 결국 현재 우리 사회가 합의한 처벌의 수위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는 것이다. 이것이 실현되지 않고 글로 남았을 때는 현재 우리 사회가 약속한 법에 대해 다시 조정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지만 실현되는 순간 또 다른 범죄일 뿐이다. 이런 위험성을 우리 모두 알지만 익명으로 글을 남기다 보면 종종 잊을 때가 많다. 영화는 이런 지점을 집어내어 ‘서도철’의 성장에 소재로 삼았다. 전작 <베테랑>에서는 형사로서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범인을 잡는데만 집중했고 그 과정에서 폭력을 일삼기도 했다. 하지만 사적 제재라는 소재와 일련의 사건들을 만난 ‘서도철’은 정의를 가르치는 형사에서 정의에 대해 고민하는 인간 ‘서도철’이 되었고 그의 이런 모습에 인간미를 느끼게 되었다.
물이 고이면 썩는다. 그렇기에 중간중간 새로운 물이 흐르도록 해야 한다. <베테랑>은 2015년에 천만이 넘는 관객으로 대히트를 쳤다. 그 성공에서 제작진은 <베테랑>만의 흥행공식을 수립했고 그 공식을 적용만 하면 됐다. 하지만 <베테랑 2>는 <베테랑>의 흥행공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전략을 끌고 나왔다. 쉬운 길을 포기하고 후속작으로서 작품의 새로운 매력을 끄집어내려 했던 제작진들의 그 과감함이 정말 멋지게 느껴졌다. 과연 <베테랑 2>의 흥행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훗날 3편이 나와 2편과도 다른 또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9년 만의 후속작, 그냥 돌아올 수는 없었다_<베테랑 2_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