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던전밥> 리뷰
쟤는 먹으면 맛있을까?
우리가 ‘동물’이라고 부르는 모든 생명체들은 식사를 한다. 인간, 사자, 개미, 닭 등 예외는 없다. 이들은 다른 생명체를 사냥해서 잡아먹는 동시에 또 다른 생명체의 식사가 되기도 한다. 초원에서 임팔라를 사냥하는 사자, 그리고 늙어 죽은 사자를 뜯어먹는 독수리들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현실에 없는 용과 같은 괴수들은 어떨까? 그들은 무엇을 먹고살까? 그리고 그들도 잡아먹을 순 있지 않을까? 여기 이런 의문에서 시작한 한 애니메이션이 있다.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던전밥>이다.
멋지게 불을 뿜으며 날아다니는 용. ‘쟤는 뭘 먹고살까? 저 덩치를 유지하려면 많이 먹겠지? 쟤는 먹으면 무슨 맛이 날까? ’ 등 한 번쯤은 생각해 보지만 깊게 파고 들어가지는 않는 쓸데없는 질문들. 판타지 장르는 옛날부터 인기가 많던 장르로 수많은 작품들을 쏟아내 왔다. 너무 오랫동안 인기가 있던 탓인가, 판타지물은 더 이상 참신하지 않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괴생명체들이 등장하기보단 늘 보던 용, 늘 보던 고블린, 늘 보던 마법사 등 이제 판타지물은 자기들끼리 차별점을 주기도 힘들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던전밥>은 우리에게 익숙한 중세 판타지 배경 속 괴생명체들을 사냥하고 요리하는 것으로 그 세계관을 다소 독특하게 그려낸 애니메이션이다. 어떤 걸 먹고 사는지부터 나아가서는 이 괴생명체들이 이루는 생태계를 묘사해 레드오션인 판타지 장르에서 자기만의 자리를 잡은 셈이다.
<던전밥>은 던전에서 마물 ‘레드 드래곤’ 레이드에 실패해 던전 밖으로 도망친 ‘라이오스’와 그의 파티원들이 지하던전에서 미처 데리고 오지 못한 동생 ‘파민’을 구하기 위해 다시 던전을 들어가게 되고 살아남기 위해 일반적인 식사가 아닌 마물들을 사냥하면서 벌어지는 모험극이다. 게임이나 판타지 영화에서 주로 다뤘던 세계관을 기반으로 ‘엘프, 드워프, 하프풋’ 등 여러 종족들과 다양한 마물들이 등장해 이들이 보여주는 조합들이 매력이다.
어렸을 때 다큐멘터리를 보면 종종 초식동물들이 사냥당하는 그 적나라한 모습에 초식동물들을 불쌍한 존재 그리고 육식동물을 그런 불쌍한 동물들을 먹어치우는 무시무시한 존재로 여기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 육식동물들이 잔인한 걸까? 그들도 살기 위해 먹는 것인데 악역을 하는 것은 너무한 거 아닐까? <던전밥>은 무언가를 먹는다는 행위에 대해 상당히 경의를 표하고 있다. ‘라이오스’ 파티는 단순히 마물을 사냥하고 조리할 뿐 아니라 마물이 사는 던전의 생태계도 신경 쓰고 항상 식사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고 표현한다.
사실 그렇다 초식동물을 잡아먹는 육식동물을 악당취급하지만 우리도 동물들과 식물들을 잡아먹고 피해자인 초식동물들도 식물들을 잡아먹는다. 그리고 우리 모두 죽어서는 한 줌의 흙이 되어 다음 생명체를 위한 밑거름이 된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순환이고 여기에는 선도 악도 없고 오로지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이 존재할 뿐이다. 먹는다는 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강하고 약하고, 누가 선하고 악한지가 아니라, 살아남았다는 거다. 그리고 이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물이 있던 곳의 생태계를 고려해 개채수를 조절한다던지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생물조차도 생존을 위해 잡아먹며 감사 인사를 잊지 않고 하는 ‘라이오스’ 일행처럼 말이다.
<던전밥>의 주인공 일행의 식사 장면을 보다 보면 요리 만화라 그런지 편식을 지양하는 장면들이 자주 나온다. 파티원 중 한 명인 ‘이즈츠미’가 처음 마물 식을 접할 때 편식을 해 음식을 버리는 장면이 나왔는데 이를 두고 ‘센시’와 ‘마르실’이 마물식이라도 편식하면 안 된다는 훈계를 하기도 했다. 사실 편식이란 것은 일종의 편견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사정상 마물 고기를 먹게 된 ‘라이오스’와 일행들도 작중 시점 이전에는 마물 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다. 그 세계관에서는 마물 식은 꺼려지는 개념이었고 그렇기에 동료들에게 마물 식을 권한 ‘라이오스’ 조차 섣불리 먹어보려는 시도조차 못한 것이다. 하지만 마물 식을 이미 하던 ‘센시’를 만나 그가 해준 마물 요리를 먹게 되면서 마물 식이 신체에 딱히 유별난 부작용이 없고 일반 음식들과 다를 바 없다는 걸 깨닫고서는 마물 식은 ‘라이오스’ 일행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던전밥>에서 다루는 편식, 즉 편견에 대한 이야기는 비단 음식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이 이야기는 점차 확장되어 전반적으로 우리 머릿속에 스며든 편견에 대한 이야기로 진화하게 된다. <던전밥>은 여타 다른 판타지 장르처럼 다양한 인종들이 등장한다. 현실세계의 우리와 비슷한 ‘톨맨’, 난쟁이 ‘드워프’, 요정 ‘엘프’, 그리고 <반지의 제왕>의 ‘호빗’에 해당하는 ‘하프풋’ 등 다양한 인종들이 서로 어우러져 살고 있다. 이들은 키부터 생활문화까지 모든 요소들이 다르다. 그렇기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편견을 가진다. 하지만 이 서로 다른 종족들이 모두 하나가 되는 순간이 있다. 바로 식사를 할 때다. 어느 종족이든 간에 처음에는 ‘마물 식’을 꺼리지만 막상 ‘마물 식’을 먹게 된 후에는 모두 이 엉뚱한 ‘마물 식’에 매료되어 하나가 되고 나아가서는 종족 간에 갖고 있던 묵은 편견을 해소해 간다. ‘마물 식’이 위험하다는 것은 편견이었듯이 종족 간의 가지고 있던 생각들도 편견에 불과하다는 걸 이야기함으로써 현실의 편견 문제가 연상되어 이 작품이 얼마나 깊이가 있는지 잘 알게 되었다.
우리가 편식하는 것 중에는 <던전밥>의 마물 요리처럼 아직 우리가 먹어보지도 않은 것이 많다. 나 같은 경우에는 브로콜리가 그랬다. 채소에다가 나무를 연상케 하는 비주얼 탓에 맛이 없을 거라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 한 번도 먹지도 않고는 편식해 버렸다. 얼마 전 큰 용기를 내고 브로콜리에 도전했는데, 나의 예상과는 달리 먹을 만했다. 쓴 맛이 강하고 식감이 불쾌할 것이라 예상했으나 잘 익혀진 브로콜리의 경험은 무난했다. 성인이 될 때까지 음식을 선입견을 가지고 편식해 왔던 순간들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이렇듯 우리는 일상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편견을 가지고 있다. 편견을 가지고 미리 무언가를 판단해 버려 한 발자국 앞에 놓인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 편견을 깨고 ‘마물 식’에 눈을 뜬 ‘라이오스’와 그 일행들처럼 내가 그동안 당연시 여겼던 것도 편견이지 않을까 한번 더 생각해 보고 도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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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밥, 편식도 편견의 일종_4.0 _애니메이션 던전밥 감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