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서울의 봄,성공한 쿠데타는 혁명인가

<서울의 봄> 감상문

by 오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입니까



보안 사령관으로 군 정보를 장악하고 있던 전두환이 이끄는 일부 군인이 군사 반란을 일으켜 군권을 장악하였다.(12.12사태, 1979). 박정희에 이어 다시 등장한 이들 정치군인은 신군부라고 불렸다.’ (미래 엔)


아직까지 버리지 않은 고등학교 때 썼던 역사 교과서에 실린 12.12사태에 대한 설명이다. 수만 자가 쓰여있는 역사 교과서 전체로 보면 너무 짧은 문장들이지만 이 사건의 영향력은 거대하다. 과연 그날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사실 나는 근대 역사 기반 창작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근대 역사가 밝지만은 않았던 시기였는데 원체 잔인한 걸 잘 못 보기도 하지만 그 시대를 다룬 창작물들은 너무 감정적인 것에만 초점을 두다가 영화 속 메시지가 지나치게 강해져 부담스러울 때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작년 개봉한 <서울의 봄>은 12.12사태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이다. 소재 때문에 당연히 안 볼 생각이었지만 개봉 당시 주변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보고 온 사람들이 모두 등장인물에 대해 분노하고, 잘 만들었다고 입을 모아 말했기에 정말 오랜만에 근대를 배경을 한 영화를 감상했다.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서울의 봄>

<서울의 봄>에는 정말 많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한다. ‘김성수’ 감독은 이 영화를 위해 ‘전두환’, ‘노태우’, ‘장태완’을 모티브로 삼은 ‘전두광’, ‘노태건‘, ’ 이태신‘부터 하나회 간부들, 육군 참모총장, 그 외 군인 간부들까지 68명에 달하는 인물들을 캐스팅했다. 배우들로 보면 ‘황정민’, ‘박해준’, ‘정우성’, ‘이성민’ 주연에 ‘김성균’, ‘정만식’, ‘안내상’, ‘염동현’ 등 얼굴만 봐도 아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2시간 남짓 되는 시간 동안 제작진은 이 배우들을 적재적소에 넣어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대개 역사나 실화를 기반으로 둔 창작물들은 관객들의 감성적인 부분을 건드려고 한다. 선과 악을 뚜렷하게 그리고 신파요소를 덕지덕지 붙여 정의에 대한 심판을 갈구한다. 사실 그런 요소들이 사실 기반으로 한 영화를 보는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요소들을 싫어한다. 극 중 등장인물들이 평면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창작자가 정의에 대해 강요하는 프로파간다 같은 느낌도 들기 때문이다.

이태신 소장(정우성),공수혁 소장(정만식), 정상호 대장(이성민), 오진호 소령 (정해인), 김준엽 준장(김성균)


다양한 군상의 인간

<서울의 봄>은 12.12사태라는 우리나라의 아주 슬픈 역사를 매우 담백하게 그려냈다. 68명에 이르는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보여주며 반역 상황 속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공을 들였다. 악역으로 등장한 ‘전두광’조차 상당히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권력에 대한 탐욕을 확실히 드러내고는 있지만 순수악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위기 상황 속 하나회의 이인자 ‘노태건’과의 대화에서 힘을 실어달라는 요구 같은 걸 보면 그 역시도 상당히 긴장하고 겁도 먹은 하나의 인간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또 한편으론 하나회의 선배들과 후배 군인들을 휘어잡는 그의 카리스마를 보여주면서 ‘전두광’이라는 인물을 다각도로 보여주었고 결과적으로 극의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시켰다.


전두광’에 맞서 싸우는 ‘이태신’이라는 인물도 단순히 정의로운 사람이라기 보단 때론 차갑고 냉철하게 때로는 뜨겁게 불같은 성질을 보여주는 입체적인 인물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태신’의 모티브가 되는 실존인물인 ‘장태완’ 장군은 실제로는 불같은 성격을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감독은 불같은 카리스마의 ‘전두광’과의 대비를 위해 ‘이태신’의 차가운 면모를 좀 더 부각했다고 한다. 어찌 보면 감독의 이 선택이 12.12사태를 담백하게 묘사하는 데에 더 어울리는 선택 같기도 하다. 그가 뜨겁고 감정적인 캐릭터였다면 영화의 분위기가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대립하는 전두광(왼쪽)과 이태신 (오른쪽)

친절한 영화

<서울의 봄>의 배경은 모두가 다 아는 12.12사태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젊은 세대들은 이 사건을 교과서에서 달랑 몇 줄로만 배웠다. 그렇기에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이 벌어졌고 어떤 배경이 있었는지는 잘 알지 못했다. 이 영화는 이런 젊은 세대들이나 관객들을 위해 상당히 친절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먼저 빠르게 전개되는 사건들에 자막을 달아줬다. 몇 시간 동안 여러 사건들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일반 관객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군대 용어들이 간간히 등장하면서 자칫하면 산만해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급박하게 돌아가는 전개를 간결한 자막과 지도로 정리해 줘 관객들에게 친절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연출과 다양한 편집 등을 사용해 설명을 돕기도 한다. <서울의 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실화를 모티브로 삼고 있다. 하지만 사실 ‘전두환’과 ‘노태우’ 정도만 알지, 그들을 추종했던 다른 하나회 간부들이나 그들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군인들의 이름들은 잘 모른다. ‘전두환’과 대척점에 선 ‘장태완’ 장군조차도 이 영화를 소개해주는 영상들에서 처음 이름을 접했을 뿐이다. <서울의 봄>에서는 군인들이 전사할 때마다 그들의 계급과 성명을 자막과 연출로 숭고하게 표현한다. 영화 자체가 박진감이 넘치고 서스펜스 요소가 가득하기에 관객들은 종종 이 영화가 실화라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럴 때 이런 장면 하나하나 들이 다시금 이 영화는 ‘실화 기반이라는 것’을 관객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지도와 자막으로 관객들의 이해를 돕는 <서울의 봄>

<서울의 봄>은 정말 재밌게 잘 본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절대 재밌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이 영화에 나온 이야기는 실화를 기반으로 하였고 그것조차도 불과 약 40년 전의 일이다. 찝찝하다. 상당히 찝찝하고 씁쓸하다. 우리나라에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동시에 내가 저기에 등장하는 육군 장군 중 한 명이었다면 나는 어느 편에 섰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연 내가 당당하게 진압군에 쪽에 서있을 수 있었을까? 하나회가 몇 년 뒤에 와해되고 심판받는다는 걸 모른다면 목숨이 귀한 와중에 반란군 쪽에 가담하거나 항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역사 속에서 수많은 지배자들이 반란을 통해 권력을 얻었다. 가깝게는 조선의 이성계, 고려의 왕건도 쿠데타를 일으켜 나라를 세웠다. 하지만 실패한 반역도 많다. 정상을 목표로 반란을 일으켰다 그 가문의 삼대가 멸하는 일은 역사 속에서는 비일비재하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이라는 말도 이런 사례들 덕에 등장한 것 같다. 그렇다면 12.12사태는 어떨까. 이 사건은 성공했으니 과연 혁명인 걸까? 대답은 ‘아니요’다.


앞서 언급한 성공한 반역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민중들의 지지다. 반역자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설령 거짓이든 위선이었든 간에 그들은 당대의 민중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기에 민중들이 지지했고 그들이 새로운 혁명을 원했다. 하지만 12.12사태의 반란군들은 십여 년의 집권기간 동안 민중들의 마음을 돌리는 데 실패했고 그들은 결국 법의, 그리고 민중의 심판을 받았다. 그리고 영원히 그들은 역사 속에서 비겁한 반역자들이라고 손가락질을 받게 되었다. 그런 자신들의 미래를 모르고 ‘하나회 기념사진‘이나 찍는 걸 보면 참 웃프다.

.

.

.

.

.

<서울의 봄, 성공한 쿠데타는 혁명인가_ 4.0_서울의 봄 감상문>








keyword
작가의 이전글던전밥, 편식도 편견의 일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