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퍼스트 슬램덩크> 감상문
일본 소년만화 중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품을 꼽자면, <드래곤볼>과 <슬램덩크>가 단연 대표적이다. <드래곤볼>은 수많은 소년만화 장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슬램덩크>는 스포츠 만화의 범위를 넘어 우리나라에 농구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약 30년 전 연재되었기에, 오늘날의 많은 이들에게는 그 감동을 온전히 느끼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러던 중, 2022년(우리나라는 2023년 1월) 몇십 년 만에 극장판으로 돌아온 <슬램덩크>가 기성 세대의 추억은 물론, 새로운 세대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과연 그 비결은 무엇일까?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원작 <슬램덩크>의 마지막 에피소드 <산왕전>을 배경으로 한다. ‘강백호’와 팀 북산이 전국대회에서 우승 후보인 산왕과 맞붙는 일생일대의 승부를 그리며, 수십 년 만에 선보인 후속작답게 원작의 명장면들을 충실히 재현한다. 게다가 원작에서 다루지 못한 ‘송태섭’의 이야기를 추가해 새로운 매력을 더했다.
많은 스토리 만화들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고, 이를 기반으로 극장판을 만들 때 여러 가지 고민거리가 있다. 원작의 스토리가 있지만, 극장판만 봐도 관객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반대로 원작 팬들을 위해 스토리나 설정에 충돌이 없어야 한다. 또한, 팬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들이 극장판에 등장하는지도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이런 이유로 TVA 애니메이션의 극장판들은 때때로 부진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하나의 새로운 옵션을 제시한다. 바로 원작의 이야기를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슬램덩크> IP의 강점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친숙한 캐릭터들과 명장면에 있다. “왼손은 거들뿐”, “전 지금입니다” 등의 명대사는 원작을 보지 않은 이들에게도 익숙하다. 그러나 단순히 원작의 명장면을 재현하는 것만으로는, 이미 원작을 경험한 팬들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선사하기 어렵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영화의 서술자 시점을 전환한다. 원작이 강백호를 중심으로, 그가 농구에 빠져드는 과정을 그렸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송태섭’의 시각에서 산왕전이 가지는 의미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이 영리한 선택은 원작을 보지 않은 관객에게는 익숙한 명장면의 배경을 제공하고, 원작 팬에게는 새로운 해석과 볼거리를 선사한다. 앞으로 나올 다른 TVA 애니메이션 기반 극장판들에게도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송태섭’의 성장 서사를 중심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다. 원작 슬램덩크는 ‘강백호’가 북산 고등학교 농구부에 들어오면서 다섯 명의 주축 멤버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원작에서는 다섯 명 중 유독 ‘송태섭’의 동기나 내면이 자세히 그려지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이번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그러한 빈자리를 채우며, ‘북산의 마지막 조각’이라 할 수 있는 ‘송태섭’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리고 그의 성장을 향한 싸움이 사실은 가장 먼저 시작된 싸움이었음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온 가족이 의지하던 형의 죽음을 마주하고, 도망치지 않고 극복하려는 ‘송태섭‘의 내면의 싸움이 산왕전 속에 자연스럽게 투영된다.
‘강백호’가 ‘채소연’을 따라 농구부에 들어갔다가 여러 시합을 거치며 점점 농구를 사랑하게 된 이야기, 그리고 고등학교 입학 후 부상으로 방황하다 이를 극복한 ‘정대만’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제목에 ‘더 퍼스트’가 들어간 이유가 더욱 분명해진다. 북산 멤버들이 고등학교 시절 농구부에서 각자의 성장을 시작했다면, ‘송태섭’의 싸움은 형의 죽음과 함께 훨씬 이전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싸움은 ‘가장 처음 시작된 성장의 이야기’라 불릴 자격이 충분하다.
이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됐을 때의 풍경이 아직도 기억난다. 아들과 함께 온 아버지, 연인과 손잡고 온 2030 청년들, 그리고 몇십 년 만에 돌아온 ‘인생작’을 보러 온 팬들이 일행에게 <슬램덩크>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늘어놓던 모습들. 몇몇은 영화가 시작한 뒤에도 이야기를 멈추지 않아 다소 불편하기도 했지만, 영화가 끝난 후에는 아이도, 연인도 모두 그 이야기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세대를 뛰어넘어 이어지는 IP의 힘은 정말 신기했고, 짜릿했다.
지금도 많은 명작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IP를 재해석하며 새로운 세대의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나루토>의 후속작 <보루토>처럼 같은 세계관에 새로운 주인공을 붙이거나, <포켓몬스터> 시리즈처럼 매 시즌 리셋을 통해 새 출발을 하는 방식도 있다. 그런 점에서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보여준 접근 역시 충분히 훌륭한 하나의 선택지다. IP를 활용하는 방법에 정답이란 없지 않을까? 중요한 건, 세대와 시간을 넘어 새로운 이야기로 다시 살아나는 그 순간의 짜릿함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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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퍼스트 슬램덩크 :가장 처음 시작된 성장 이야기:_3.5_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감상문>